현대식 강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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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기간 동안 제철소는 밤낮없이 돌아갔지만, 아직 완전한 강철 제련 기술을 완성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100년 전 꿈꿨던 아이디어가 다시 한번 혁명을 불러왔다. 궁극적으로, 세계 철강 왕국이라는 타이틀을 미국으로부터 뺏어오는 결과를 낳았다.
1847년 독일의 과학자이자 유리 기술자였던 윌리엄 지멘스는 잘 갖춰진 특허법을 활용하기 위해 영국에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용광로에서 방출된 열을 재활용하면 용광로의 최고 온도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지멘스는 이 생각을 반영해 새로운 유리용 용광로를 제작했다. 용광로 안에서 밖으로 통하도록 한 내화벽돌 관을 촘촘히 설치해, 내부에서 발생한 고온의 기체를 이 관들을 통해 밖으로 배출시켜 외부 공기와 혼합시킨 다음, 다시 안으로 집어넣는 방식이었다.
지멘스의 유리용 용광로가 야금에 사용되기까지 거의 20년이나 걸렸다. 1860년대 피에르-에밀 마르탱이란 프랑스 기술자가 지멘스의 설계 방식을 익힌 후, 강철 제련용 용광로로 제작했다. 용광로의 열을 재활용하자 기존 베세머 공정에서보다 더 오래 철을 액체 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고, 작업자들은 탄소 함유 철 합금을 더 정확하게 계량해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추가의 열로 인해 고철도 다시 녹일 수 있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전환되면서, 평로법이라고도 불리는 지멘스-마르탱 공정이 전 세계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염기성 산소 제련 공장)
본격적인 20세기가 시작되자, 로버트 듀러라는 스위스 기술자가 더 좋은 방법을 발겼다. 듀러는 나치 독일에서 야금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다시 스위스로 돌아와 베세머 공정을 실험했다. 그는 (산소 함량이 20%뿐인 공기 대신) 순수한 산소를 용광로에 뿜어 넣었다. 그 결과 녹아 있던 철에서 탄소가 더 효과적으로 제거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듀러는 공기를 하부에서 주입하던 베세머 전로와는 달리, 산소를 용광로 상부에 주입하면, 불량 강철을 선철로 녹여 재련 과정에서 재사용할 수 있음도 발견했다.
이 “염기성 산소 제강법”은 철과 함께 존재하던 모든 인을 제거할 수 있었다. 베세머 전로와 지멘스-마르탱 용광로의 장점만을 취합한 방법이었다. 듀러의 혁신으로 인해, 엄청난 양의 강철을 전보다 더 싸게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은 즉시 염기성 산소 제강법을 도입했지만, 당시에도 여전히 업계 최고를 달리던 미국 철강 업계는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지멘스-마르탱 제강법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렇게 세계 철강 산업은 뜻하지 않게 경쟁의 문이 열리게 된다.
스테인리스강과 미국 철강 산업의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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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해리 브레알리라는 영국 야금학자가 소총 총신 수명을 늘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강철에 크롬을 넘어 합금을 만들어 본 결과 크롬이 들어간 강철이 특히 산 및 풍화에 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브레알리는 이 강철-크롬 합금을 금속상을 하던 친구에게 “녹슬지 않는 강철”이란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다. 기술자답게 지은 이름이었다. 추후 칼 장사를 하던 친구 어니스트 스튜어트가 더 그렇듯 한 이름을 지었다. 바로 스테인리스강이었다.
빅토리아라는 회사는 스위스 육군에 군용 대검을 납품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녹슬지 않는 금속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한 회사는 대검의 소재를 즉시 이 금속으로 바꾸었다.
이후 회사 이름을 빅토리아에서 빅토리녹스(Victorinox)로 변경했다. 스테인리스의 프랑스어 이녹시다블르( Victorinox)의 뒷글자 이녹스(inox)를 따서 붙인 것이었다. 지금도 빅토리녹스의 주머니칼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스테인리스강은 급속도로 전 세계에 퍼졌다. 이 녹이 슬지 않고 깨끗한 금속이 수술 도구와 가정 용품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크라이슬러 빌딩 꼭대기에 설치된 자동차 휠캡도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져, 태양빛을 받을 때마다 은빛 찬란함으로 내비치곤 한다.
1959년, 노동자들은 세인트루이스에 스테인리스강으로 거대한 게이트웨이 아치를 건설했고, 지금까지 서반구에서 사람 손으로 만든 가장 높은 기념물로 기록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에 세워진 192m 높이의 게이트웨이 아치)
세인트루이스에 서구의 관문을 건설되고 있을 때, 나머지 세계는 미국의 철강 생산을 따라잡고 있었다. 1950년대 해외에서 저임금과 염기성 산소 제강법으로 생산된 강철은 미국산 강철보다 더 저렴했다. 그리로 한 편에선 가정용 제품에 쓰이는 더 싼 알루미늄 합금이 철강 산업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1970년, 70년 동안 세계 최대 철강 회사로 군림해 오던 U.S. 스틸이 그 자리를 일본 철강 회사 니뽄 스틸에게 넘겨준다. 1990년대가 되자 중국 철강 회사가 세계 1위로 올라섰고, 1995년 베들레헴에 있던 제철소의 문을 닫았다.
20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대부분의 미국 철강 회사들이 마침내 염기성 산소 제강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세계 철강 협회에 따르면 2016년 미국은 철강 생산량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철강 산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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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부분의 스테인리스강은 전기로 방식의 소규모 제철소(미니밀)에서 생산된다. 이곳에서는 강철 원재료보다는 재활용 고철을 녹여 사용한다. 미니밀에 있는 가장 일반적인 용광로(전기 아크로, 이 역시 윌리엄 지멘스가 개발했다)는 탄소 전극으로 아크 방전을 일으켜 발생하는 열로 고철을 녹인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니밀의 보급은 고철 재활용으로 나가는 중요한 발걸음이었지만, 철강 산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강철 제련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주요 온실가스 배출 원인이다. 아직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는 염기성 산소 제련법은 거의 100년 전에 개발된 것이다.
당시는 이제 막 학계에서 기후 변화의 파급 효과를 연구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염기성 산소 제련법은 여전히 석탄을 원료로 사용하며, 전기로보다 약 4배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하지만 산소 송풍식 용광로 대신 전기 아크로를 단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해결책이 아니다. 오직 재활용 가능한 고철의 양만 늘려갈 수 있다.
오늘날은 야금학자들은 환경친화적 강철 생산 방법을 개발해 나가는 초기 단계에 있다. MIT 연구진은 전기로 금속을 제련하는 새로운 기술을 시험하고 있다. 이러한 전기 제련 기술을 철 및 강철같이 융점이 높은 금속에 적용할 수 있게 개선된다면,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철강 회사 푀슈탈핀은 석탄을 수소 연료로 대체한 제철소를 건설했다. 중국 정부는 임시변통으로 2015년 말부터 철강 생산량을 감축하기 시작했다. 21세기에 들어서 이해관계가 바뀌고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 도가니, 독일에서 용광로, 미국에서 주물 공장이 돌아가던 시절과 똑같은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어떻게 하면 강철을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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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 6편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료 출처: Popuar Mechanics, “The Entire History of St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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