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왕위 승계 - 자말 카슈끄지 피살에 대한 고찰 1부



사우디아라비아의 유력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가 10월 2일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 들어간 후 종적이 묘연해졌다. 그의 피살이 확실시되면서, 국제적 사건으로 비화되고 있다. 카슈끄지 사건에는 중동의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내포되어 있으며, 맥락적으로 이 지역에 더 큰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카슈끄지 피살의 자세한 내용보다는 그 배경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따라서 1부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왕위 승계 문제로 시작해,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ad bin Salman) 왕세자로 대표되는 세대 간 권력 교체 상황을 살펴보는 한편, 이전 왕위 승계 과정을 복기해 본다.

2부에서는 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경쟁 양상과 더불어, 카슈끄지 피살에 대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대응을 살펴보고,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책 목표와 이 사건의 해결 방언 그리고 시장에 미칠 파급 효과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사우디의 왕위 승계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카리스마 넘쳤던 족장 이븐 사우드(Ibn Saud)에 의해 세워졌다. 이븐 사우드는 군사력과 정략결혼을 통해, 아라비아반도를 서서히 통합해 나갔고, 현대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최소 22명의 왕비에게서 45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중 36명이 살아남아 성인이 되었다. 그는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를 세운 후, 1953년까지 통치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초대 국왕 이븐 사우드)



이렇게 많은 아들을 둔 이븐 사우드는 전통적인 장자 승계가 아니라 형제 승계 계획을 세웠다. 형제 승계로 사우드의 아들들 간에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들 아들 세대가 늙어가면서 위기를 발생시킬 위험 또한 내포하고 있었다.

형제 승계의 문제는 사우드와 이후 자리를 물려받은 왕들의 연령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븐 사우드가 왕위에 올랐을 당시 연령은 57세였다. 그의 장남 사우드는 51세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사우드는 57세의 파이살에게 왕위를 승계했고, 이후 62세의 칼리드가 이어받았다. 다음 왕위는 61세의 파드에게 돌아갔다.

파드 이후, 후임 국왕의 연령대는 훨씬 더 높아졌다. 압둘라 국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나이는 81세였고, 현재 살만 국왕은 79세에 왕위에 올랐다. 이렇게 국왕의 승계 연령이 높아가는 모습에서 1세대 형제 승계 과정은 거의 끝나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국왕의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야기했다.

첫째, 국왕의 연령이 높다 보니 국가 개혁과 다변화를 잘 이룰 수 없었고, 그에 따라 경제 성장 또한 점점 부진해졌다.



위 차트는 1987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연간 실질 GDP(푸른색)을 이 지역의 다른 주요 수니파 국가인 터키(붉은색)와 비교한 것이다. 차트의 처음에서 사우디가 터키보다 GDP가 높았지만, 2005년 에르도안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후 터키의 경제가 사우디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2012년 이후, 터키 경제는 빠르게 확대되었고, 사우디와 격차가 20%나 더 벌어졌다. 아래에서 논의하겠지만, 사우디와 지역 패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터키는 점점 더 경제적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며, 이는 사우디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둘째,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전히 유가에 의존하고 있다. 아래 차트는 사우디의 외화 보유고와 유가 간의 관계를 보여준다.



양자의 상관관계는 82%로 매우 높다. 사우디는 원조와 해외 투자를 통해 권력을 과시해 왔고, 지대추구 국가로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국민을 부양함으로써 국내 안정을 유지해 왔다. 이를 위해 필요한 엄청난 자금은 위 차트에 나타난 것처럼, 유가에서 비롯된 외화 보유고에 기인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 개혁 필요성은 분명하다. 원유 하나에만 의존하는 1차원적 경제는 유가 하락 시 위험해지며, 기후 변화에 따른 각국의 정책 조정이 취약할 수 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구는 아주 젊다. 이 젊은 세대들은 사우드 왕가와 와하브 성직자 연합으로 이뤄진 구세대 통치자들의 종교 제약에 분개해 왔다.



2017년 6월, 살만 국왕은 2세대 왕자들 중 장자로 왕세자였던 나예프를 제거하고, 자기 아들 무함마드 빈 살만을 왕세자에 앉혔다. 새 왕세자는 스스로 개혁가라고 말하면서, 사무직 경찰의 권한을 제한했고, 여성의 자동차 운전을 금했으며, 적극적인 경제 개혁을 진행했다. 국왕은 왕세자에게 막대한 권력을 쥐여줌으로써, 사우디 내부의 경쟁 권력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왕세자는 사회 및 경제 개혁에 서방의 찬사를 받았지만, 반대로 무모한 행동도 그치지 않았다. 예멘과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고 있으며, 계속된 자원 낭비가 이어지고 있다. 1년 전 그는 여러 왕자들과 권력층 인사들을 부패 혐의로 잡아들여 리야드 리츠 칼튼에 가둔 바도 있다.

또한 레바논 총리를 압박해 이란과 헤즈볼라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게 만들었다. 보수적인 성직자들에 대한 탄압도 이어졌고, 걸프 협력 회의 회원국인 카타르의 봉쇄를 실시했다.

지난 8월 사우디아라비아는 캐나다가 자국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자, 캐나다 주재 대사를 소환했고, 자국 내 캐나다 대사를 추방했다. 또한 내부의 비판에 관용을 허용하지 않던 경향은 무함마드 왕세자 치하에서 더 심해졌다. 자말 카슈끄지의 불행한 피살은 이러한 여러 행동 패턴에 부합한다.

(현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지난 몇 년 동안 사우디 왕국은 비록 경직되긴 했어도 비교적 안정을 누렸지만, 이제 성급하고 충동적인 지도자의 손에 흔들리고 있다. 이런 패턴에는 몇 가지 역사가 있다. 이븐 사우드 국왕에서 이어진 왕위 승계 과정은 격동의 세월이었다.

이븐 사우드의 장남인 사우드 국왕은 자기 형제들에 의해 강제로 축출당했다. 그는 변덕스럽고 낭비벽이 심했으며, 이집트 대통령 가말 나세르(Gamal Nasser)의 암살을 시도했고, 1960년대 초반 예멘 내전 동안 이집트에 맞서 대리전을 펼치기도 했다.

결국 사우디의 권력층 왕자들(이후 왕위에 오른 칼리드, 파드 및 압둘라)과 성직자들이 공모해 사우드를 축출했다. 1964년 사우드는 이븐 사우드의 셋째 아들로 행정부 총리 자리에 있던 파이살에게 왕위를 양위했다.

파이살은 존경 받는 국왕이었지만, 조카에게 암살당했다. 사우디 왕국의 지도력은 파드 국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안정되지 못했다. 여기서 형제 승계가 이븐 사우드의 손자대로 이어지면서 발생하게 될 대혼란이 잉태되었다.

(현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위 승계도)



왕위 승계권에 있는 수백 명의 왕자들이 있는 가운데, 이들의 고민은 살만 국왕이 자기 아들들에게 왕위를 물려줌으로써, 자기들이 영원히 왕위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점이다.
왕세자가 무모한 행동을 벌이는 이유 또한 자기가 왕세자에 오름으로써 적대적으로 돌아선 왕족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동시에, 왕세자의 무모한 행동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불안정을 더 키우고 있다. 즉, 왕위 승계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음 주 2부에서는 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경쟁 양상과 더불어, 카슈끄지 피살에 대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대응을 살펴보고,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책 목표와 이 사건의 해결 방언 그리고 시장에 미칠 파급 효과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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