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 워크의 기원



무빙 워크(Moving sidewalks)의 아이디어가 처음 태어난 곳은 19세기 뉴욕이었다. 너무 시대를 앞섰기 때문에 끝내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동 이동 장치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후대에 남겨 주었다.

1871년, 뉴욕에서 와인을 팔던 알프레드 스피어(Alfred Speer)는 발명가이기도 했다. 그러던 그에게 한 가지 혁명적인 방법이 떠올랐다. 길 위에 움직이는 보도를 설치해 사람들이 가만히 있어도 뉴욕을 돌아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움직이는 나무 벨트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차량이 포함되었다.

자금 부족으로 스피어의 무빙 워크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아이디어는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무빙 워크는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서 등장했으며, 비슷한 장치가 1900년 만국 박람회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서 선보인 무빙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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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와 룰러(trottoir roulant)”라는 이름의 파리의 무빙 워크는 박람회장 주변을 돌며 약 700만의 방문자들을 태웠다고 한다. 심지어 한 여성은 무빙 워크에서 출산을 했고, 아이 이름에 트로트와 룰러를 넣었다고도 한다.

(트로트와 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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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뉴욕에서 다시 한 번 무빙 워크 계획이 세워졌지만, 이번에는 다른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에 따르면, 뉴요커들은 출퇴근 시간 브루클린 다리에서 끔찍한 혼잡에 시달리는데 질려있었다. 뉴욕의 교량 국장 구스타브 리덴탈(Gustav Lindenthal)에 따르면, 답은 다리 위에 고속 무빙 워크를 건설하는 것 뿐이 없었다.

이 새로운 계획은 네 개의 무빙 워크가 순환식으로 움직이며, 위에 의자가 놓여있어 사람들이 편안하게 강을 건너게 하는 것이었다. 이 계획을 놓고 각종 신문들은 1년이 넘도록 갑론을박을 벌였다. 뉴욕 타임스 1903년 5월 8일자 보도에 따르면, 실현시키기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1인당 5센트는 운임으로 받아야 하는데, 출퇴근 비용으로는 터무니 없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뉴욕 타임스는 같은 해 10월에 교통국이 너무 성급하게 무빙 워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 계획을 실행되지 못했던 것은 당시 대중 교통을 독점했던 업체 BRT(Brooklyn Rapid Transit Company) 때문이었다.

이후 계속해서 무빙 워크에 대한 계획이 시도되었다. 여기는 1910년 지하철 시스템을 종전 브르클린 브리지 계획의 지하 버전으로 교체하자는 계획과 윌리엄즈버그 브리지와 월스트리트에 철도를 건설하자는 계획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뉴욕에는 무빙 워크가 건설되지 못했다.

오늘날 무빙 워크는 공항이나 지하철 이동 통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100여년 전 아이디어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스피어의 아이디어나 오늘날의 무빙 워크나 목표는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동 중 혼잡을 최소화하고 질서있게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1871년 뉴욕에서 스피어가 생각해 낸 것을 후손들이 이룬 것이다.

(인천 공항의 무빙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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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Peter Ward, “New York City’s Long-Held Fascination With Moving Sidewal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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