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솔레이마니 살해를 보면서 이라크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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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독감으로 고생을 했다. 독감예방주사를 맞지 않아서다. 독감예방주사 맞는 시기를 놓쳐 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독감에 걸렸다. 이제야 겨우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내가 아파도 세상은 돌아간다. 비몽사몽간에도 세상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북한은 예상한대로 미국과 대화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밝혔다. 미국은 이라크에 방문한 이란 군사령관을 드론 폭격으로 살해했다. 한반도와 중동지역이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미국이 이란의 군사령관을 이라크에서 살해한 것은 국가의 주권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공식방문한 이란 군사령관을 이라크 땅에서 살해한 것에 대한 책임문제다. 정상적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이라크 정부의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라크 정부는 미국에게 자국의 주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제는 지금 이라크에는 그런 합리적인 프로세스가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 자체가 사분오열되어 있어서 말로만 국가지 정부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이란 중요인사를 제거했으니, 이란도 이라크에서 미국의 주요인사를 제거하려 할 것이다. 결국은 최소한 지켜야 할 룰을 어겼으며 이는 미국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되어버린지도 모르겠다.

이라크 전쟁이후 이란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가 사라져 버렸다. 이라크를 통합했던 후세인은 팔레비축출이후 신정체제로 돌아선 이란의 확산을 저지했던 방패막이었다. 이라크 후세인이 독재자로 낙인이 찍힌 것은 쿠웨이트 침공문제였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유전문제 때문이었다. 쿠웨이트에서 채굴하는 유전의 상당부분이 이라크 지하에 있었다. 이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있어났다. 당시 후세인은 주이라크 미국대사에게 쿠웨이트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의 동의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불분명한 입장을 표명했으며, 후세인은 이를 동의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쿠웨이트를 공격했다. 그 이후 미국주도로 사막의 폭풍작전이 전개되었다.

사막의 폭풍작전(91년 1월)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미국은 쿠웨이트를 해방시키고 이라크 남부지역에 대한 통제를 확보했다. 아직까지 당시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한다고 동의를 구했을때 왜 미국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당시까지 이라크는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친미국가였다는 것이다.

그 이후 아들 부시가 들어서면서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벌어졌다. 이라크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미국에서는 석유에너지 장악이 중요한 아젠다중의 하나였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고 미국 자체내에서도 텍사스에 기반을 둔 석유자본들이 중동의 석유를 장악하기 위해 이라크를 공격했다는 분석이 꽤 많았다. 물론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표면적인 이유는 대량살상무기 보유혐의였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미국 CIA의 정보분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IA와 국방부 정보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어차피 CIA와 국방부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의 명분을 위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려고 한다고 꾸며댔을 뿐이다.

제1차 및 제2차 이라크 전쟁이 텍사스에 기반을 둔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는 어렵다. 두번의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미국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이라크는 시아와 순니가 기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그 정점에 후세인이 있었다.

91년 걸프전의 여파로 알 카에다가 창궐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의 후과로 ISIS가 창궐했다. 지금 중동은 누가 들어가더라도 질서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사우디아아비아와 특수관계이다. 달러는 오일가격에 페깅이 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오일을 달러로 결제하는 댓가로 사우디왕가는 미국의 보호를 받기로 했다. 문제는 미국에 적대적인 알카에다와 ISIS가 모두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순니계열이라는 것이다.

이라크 전을 위해 미국은 어마어마한 전비를 투하했다. 조사를 해보아야 겠지만 지금 미국의 재정적자는 대부분 이때에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클린턴은 적어도 미국이 다시 출발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균형은 맞추어 놓았다. 끊임없는 이라크 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의 재정적자는 눈덩이 처럼 늘어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전에 투입된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미국이 냉전 종식이후 유일한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지속하기 어렵게 된 것은 바로 두번의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때문일 지도 모른다. 국력을 전쟁에 투입하다보니 미국내 사회문제는 뒷전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미국의 힘이 서서히 빠지고 있는 것은 중국의 상승때문이라기 보다 미국 스스로 정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시 미국이 이라크와 쿠웨이트간 유전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했다면, 지금 쯤 미국은 중동의 완벽한 균형자라는 위치를 장악했을 것이다.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이용하여 이란을 견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시리아도 점차 미국의 영향력에 조금씩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가 평화롭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미국이 대외정책을 수행하면서 외교보다는 군사력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 정책의 또다른 수단이라고 통찰했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전쟁을 정책의 수단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클라우제비츠적 전쟁관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화와 타협보다 군사적인 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미국이 이란문제를 대화와 타엽이 아닌 군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그런 경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것이다. 작용은 반작용을 부른다. 미국이 솔레이마니 이라크 군사령관을 살해한 것은 반작용을 부를 수 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솔레이마니 제거를 승인한 것은 그가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또한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이라크 전에서 대량살상무기 문제처럼 이란에서 전쟁으로 몰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정보도 조작될 수 있다.

한때 중동 국가중 가장 친미국가였던 이라크가 걸프전과 이라크 전을 통해 완전하게 붕괴된 것을 보면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째, 동맹관계라는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국제사회에서 동맹과 우호관계라는 것은 매우 일시적인 현상일뿐이다. 국제사회는 항상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다. 그래서 동맹이나 우호관계도 자신의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두번째, 미국의 힘이 강력한 힘이 지닌 이중성을 잘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는 국민국가내에서의 가치이지 국제사회에서의 가치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정의는 힘의 정의일 뿐이다. 즉 미국의 힘이 강한 만큼 그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하면 이라크처럼 한방에 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원하는 것으로 따라가면 천천히 쫄딱 망하기 십상이다. 그 기묘한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자주파니 동맹파니 하는 말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의 지향방향 모두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얼마나 지혜롭게 주변 정세와 여건을 활용하느냐갸 중요하다.

중동에 전운이 감도는 것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다. 중동은 제국주의 시대부터 열강의 이해가 충돌했던 지역이다. 100년이 넘었지만 중동은 제국주의적 질곡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동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때까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중동문제는 우리가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부분이 많다.

독감으로 정신이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이란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 사건을 보면서 미국이 전쟁보다 외교로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힘을 사용하면 할 수록 세계적 패권유지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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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아침, 선택적 정의 그리고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가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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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새해아침이 밝았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았다. 새로운 출발이다. 새로운 출발에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 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아침에 여기저기서 카톡이 들어왔다. 울산시장 선거부정과 관련한 핵심 관계자 송병기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고 한다.

또 명재권 판사다. 그가 밝힌 기각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부정부패 지수가 OECD 국가중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그 부정부패라는 것이 재산이 많은자와 권력을 지니고 있는자들의 문제라는 것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권력과 재물을 많이 가진자들이 부패해 있는 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고 부패한 권력으로 재물을 모으는 것이다. 부패한 권력은 부정한 재산보유자와 결탁하고 국민의 세금도 도둑질한다.

촛불 혁명으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유감스럽게도 여러분야에서 부정과 부패의 흔적이 보인다. 조국 일가의 사모펀드와 유재수의 국정농단 혹은 개입, 울산시장 선거의 개입과 같은 것들은 거대한 빙산의 일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혁명을 해도 또 썩는다. 그러나 적어도 드러난 부정부패만이라도 제대로 척결하지 않으면 그 부정부패세력은 점점 그 세력권을 넓혀간다.

부정부패 척결은 좌우를 가려서는 안된다. 진보의 부패는 용인할 수 있고 보수의 부패는 용인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부정부패는 모두 척결의 대상이다. 선택적으로 처벌하고 말고의 대상이 아니다.

법원은 문재인 정부들어 정의의 선택적 실현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원래 정의가 제대로 살아있으려면 살아있는 권력에 더 엄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법원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까지 조국의 개인핸드폰은 확보를 하지 못했고, 조국의 개인 계좌는 들여다 보지 못했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재수의 개인계좌도 들여다 보지 못했다.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송병기의 구속영장도 발부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검찰이 조국을 기소하고 유재수를 기소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청와대와 여당에서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고 한다. 법원이 핵심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해 놓고 어떻게 증거를 재대로 확보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태에서 청와대에서 조국의 기소를 두고 무리한 수사의 결과라는 내용의 논평을 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적폐수사에서 법원은 양승태 전대법원장의 구속영장 발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검찰이 요구하는 구속 및 수색영장을 발부해주었다. 조국과 유재수의 경우 경제사범의 혐의가 짙다. 당연히 핸드폰과 계좌는 압수수색을 해 주었어야 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선거사범에 대해서는 가장 강력한 대처와 처벌을 해야 한다. 정부 여당은 지금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회든 핵심질서와 가치가 무너지면 제대로 유지되지 못한다.

정의는 선택적이어서는 안된다. 선택적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악이다.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는 선택적 정의가 악이기 때문이다. 정의 메타포는 칼과 저울과 눈을 가린 것 세가지다. 그 중에서 어느 것 하나가 빠져도 정의는 구현되지 않는다.

결국 선택적 정의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한다. 내부의 분열은 외부의 공격에 취약하게 만든다. 안보와 국방에 아무리 많은 돈을 퍼부어도 내부에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되면, 그런나라의 군대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국정이 혼란해지면 군대가 구데타를 한다. 그것은 군인들이 그런 혼란을 틈타서 권력을 장악해서 잘먹고 잘 살겠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혼란한 국정이 국가안보를 약화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쿠데타가 국정을 더욱 혼란하게 만든 것은 역사적인 경험이지만, 단순 무식한 군인들은 자신들이 뭔가 정리정돈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노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방해받아서는 안된다. 선택적 정의가 마치 정의인양 호도되어서는 안된다.

상황이 이럴진대 자칭 보수정당이라는 자한당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원래 부정하고 부패한 자들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인 듯 하다.

정치권에 희망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 때, 가장 큰 이유는 야당에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야당은 없다.

새해아침 희망에 찬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송병기 구속영장기각 소식을 보고 올해도 쉽지 않겠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공수처법이 통과되었으니 새해에는 법원개혁에 매진했으면 좋겠다. 제일먼저 영장전담판사제도를 없앴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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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법 통과를 보면서, 국회와 국민의 거리 그리고 공론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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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많던 공수처법이 통과되었다. 더민당이 이번 회기에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것을 보고 꼼수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당시 진행되고 있던 조국 수사와 유재수 그리고 울산시장 송철호의 선거부정에 대한 수사를 막으려는 술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수처 법은 이번에 통과시키되 그 시행은 다음 정권에서 하는 방안을 나름대로 고민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우려도 사실은 사실과 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더라도 공수처장을 선출하고 검사를 선출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정작 공수처가 제대로 작동을 하게 되면 검찰에서 이미 이번 문재인 정권에 관한 수사는 끝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조치는 매우 촘촘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야당의 비토권을 인정하고 있다. 야당이 반대를 하면 대통령이 아무리 임명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또 청와대와 공수처간의 소통을 차단하는 법을 명문화시켰다. 청와대에서 공수처에 전화하는 것도 불법이 되어 형사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정도라면 어느정도 정치적 중립에 제도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야당의 비토권이다. 공수처 법에 반대해서 자한당이 의원 총사퇴한다고 한다. 그럼 공수처장 선발과 임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된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자한당을 완전무시하고 공수처장을 임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끝없은 정치적 중립시비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아마 공수처장으로 추천된 사람도 야당의 지지없이는 수락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몇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번째, 검찰의 태도다. 검찰이 이번에 권력의 핵심을 수사하는 것은 정말로 찬성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제까지 검찰이 해온 행태를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검찰도 국민들이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이유를 잘 알아야 한다. 모든 검사들이 오로지 법과 원칙만 생각하겠다는 윤석렬 같았으면 검찰이 국민들에게 지금처럼 불신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자신들의 기득권유지는 물론이고 정치에 직접 개입해왔다. 정권초중반에는 정권의 개가 되고 정권후반부에는 주인을 물면서 검찰의 이익을 확보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점에서 검찰도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하다. 검찰의 칼은 정권의 부침과 시기에 상관없이 언제나 정의롭게 사용되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조직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민들의 요구다. 국민들이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그런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식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

공수처법 통과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공수처법 뿐만 아니라 선거법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법이지만 국민들은 그 논의의 과정에 철저하게 국외자였을 뿐이다. 도대체 TV와 신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쟁점이 되는 조항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도하고 분석 평가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이번에 공수처법과 선거법 처리 과정이 이렇게 난항을 겪게 된 것은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처리되려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번 소동을 보면서 아직까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이해보다는 자기들의 당파적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종편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나와서 공수처법과 선거법에 대한 토론을 했으니 서로 싸우기 바빴지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대로된 전문가들이 나와서 시간을 두고 여야가 주장하는 문제를 분석 평가하는 것이 어려웠을까?

아마 TV와 신문에서 공수처법이나 선거법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했다면 여야가 지금처럼 싸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요한 문제에 대해 왜 국민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국민들은 세계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고등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무엇이 합리적이고 타당한지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

이번 공수처법이나 선거법 처리과정에서 국민들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외면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국민들에게 공수처법이나 선거법에 관한 국회의 논의가 제대로 보도되었으면 어떤 국회의원들이 실력과 능력이 있고 없는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국민들을 도외시한 이런 의사결정과정은 국회의원들의 피해로 되돌아간다. 우리 사회에는 마타도어를 이용해서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사회가 한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마타도어식의 선전선동이 자리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

공수처법의 조항에 대한 건전한 문제제기도 공수처 법을 반대하는 반민주적이고 반개혁적인 정치인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를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것은 바로 그런 세력들이다. 이런 세력들이 힘을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법은 공론의 장을 확대하는 방법밖에 없다.

공수처법의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대부분 공론의 장이 건전하게 열렸으면 국민들이 충분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공수처법은 통과되었다. 제대로 운영이 되어서 권력의 중심에서 부정부패를 하는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 더 깨끗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법과 제도보다는 운영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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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사이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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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여러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속에서 우리는 영향을 받는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가 삶을 제대로 편하게 살아가려고 하면 중요한 것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우리네 인생은 그런 폭 녋은 관심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관심은 풍요롭고 정의로운 삶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나라도 잘사는 국가가 되었지만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점이 여럿있는 것 같다. 단기간에 잘 살게 되었으니 오랫동안 경험과 역량이 축적된 나라들보다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제사회에 대한 관심이 아닌가 한다. 미국신문이나 일본신문 같은 경우는 주변안보환경이나 국제정치와 관련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우리나라 정도되는 국력을 가진 국가들이 주변국제정세에 대한 관심에 비해 우리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원래 안보와 외교는 대통령의 고유영역이라 한다. 왕정시대에는 국왕의 영역이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안보와 외교는 우리 삶을 규정짓은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에 합당한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전쟁이후 우리는 한미동맹의 안보틀에서 살아오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최대의 우방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은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서 한일합방을 할 수 있었다. 동맹이란 영원하지 않다. 지금 미국이 우리에게 6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방위비로 요구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의 한미동맹이 과거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세상은 변하기 때문이다.

12월 28일자 동아일보에서 ‘김순덕’은 ‘중화제국의 속국으로 살 것인가?’라는 칼럼을 실었다. 그 내용을 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문의 논설위원의 세계와 안보에 대한 인식을 보면서 적지 아니 실망을 했다. 김순덕은 문재인 정부를 친중정부라고 먼저 규정했다. 이어서 대원군을 청나라로 잡아간 것을 지적하면서 중국이 몰려온다고 하면서 안보위협국이 중국인지 일본인지를 분명히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중국으로 부터 굴욕을 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서두에는 홍콩인권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에 비판을 했다.

우리네 지식인들은 항상 이편 아니면 저편을 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뿌리깊은 노론적 사고방식의 연속인 듯 하다. 개화기의 역사에서 우리가 교훈을 삼아야 하는 것은 주변의 강한 나라에 빌붙어서는 제대로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먼저 문재인 정부가 친중정부라고 규정하는 것은 사실과 너무 다르다. 문재인 정부는 친중정부가 아니라 친미정권이다. 그것도 지나칠 정도로 친미정권이다. 속성상 친미적이면서도 외형상 친중이라고 비난을 받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정권이 친중이냐 친미냐는 그정권이 어떤 정책을 펴왔는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제까지 문재인 정권은 미국편에 붙어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문재인 정권이 친중정권이라면 그동안 한중관계가 지금처럼 경색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순덕이 현정권을 친중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중국보다 미국에 더 가까이 가야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묻고 싶다. 지금보다 미국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 주한미군 주둔비용 달라는 대로 다주어야 하나? 지소미아 같은 것은 종료하겠다는 시늉도 내면 안되고 그냥 눈만 끔뻑 끔뻑 거리고 있어야 하나? 한국에 중국을 목표로 하는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한다고 해도 그냥 좋다고 해야 하나? 유엔사 회원국에 일본을 집어 넣어 일본군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허용해야 하나 ?

일부 보수인사들의 걱정하는 한미관계의 한계는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더 이상 들어 줄수 없다는 것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은 없다. 정상적으로 한미관계가 발전하자면 이제는 미국이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항상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시소를 타려고 하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미국편을 설 것이냐 중국편에 설것이냐라는 생각은 지금의 우리 국력에 비추어서 볼 때 더 이상 타당한 전략이 아니다.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우리가 중국이냐 미국이냐로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당당하게 우리에게 유리한 전략적 위치를 확보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보다 훨씬 국력이 약한 필리핀도 중국과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성장과 발전의 한계선에 도달한 것 같다.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히고 우리의 가능성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19세기 구한말의 상황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 스스로 외연을 넓혀가도 시원찮은데 스스로 접촉면과 외연을 줄여나가면 어찌 성장하고 발전을 하겠는가 ?

아직 우리는 미국과 중국사이의 미로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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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과 비난사이, 진중권을 위한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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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진중권의 경우는 아니다. 일전에 조국 딸의 표창장 문제가 되었을때 동양대 최성해 총장의 가짜 학위문제가 대두되었다. 엄격하게 보자면 총장상이 위조되었다는 최성해 총장의 주장의 진위는 그가 가짜 학위를 가졌다는 것과 별 관계가 없다. 물론 가짜학위는 최성해 총장의 말이 지니는 신빙성을 떨어 뜨릴 수는 있지만 가짜학위라는 것이 총장표창이 위조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진중권이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 신문을 싸잡아서 비판을 하자, 진중권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진중권에 대한 비난의 대중은 그가 관종이라든가 그가 문정권에서 무슨 자리라도 차지하려고 한다는 식의 말들이었다. 그리고 진중권이 최성해 총장의 가짜학위에 왜 침묵하느냐는 이야기도 많았다.

진중권이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 신문을 비판하기 위해서 최성해의 가짜학위를 먼저 비판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중권이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례를 비판하는 것은 최성해 개인의 비리에 대한 비판과 사회적으로 차원이 다른 문제다. 최성해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개인적 일탈의 범위를 크게 넘지 않는다. 그러나 진중권이 비판한 것처럼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례가 친문세력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대중의 사고를 마비시키려고 한다는 비판은 사회적인 문제다.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 그리고 권력을 가진 어떤 개인이나 단체 그리고 조직에 대한 비판도 비난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영향력이 큰 조직과 단체 그리고 개인에 대한 비판은 총체적으로 보다 해악보다는 건설적이라고 생각한다.

악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기득권에 대한 비판은 항상 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사회에 경종을 불러 일으킨 경우는 대부분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군부독재시절에는 개인적 양심선언이 그리고 그 이후에는 공익적 폭로가 대부분 개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어떤 개인이건 기득권과 조직에 맞서서 비판을 하는 경우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익신고자를 보호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진중권이 관종일 수도 있고 차기 내각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을 할 수도 있다. 설사 그가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가 한 말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그를 관종이라고 하고 문대통령에게 불러달라고 세레나데를 부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한 말이 타당하고 올바른가에 대한 평가는 전혀 별개이다.

진중권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그가 하는 말에 어떤 오류가 있고 잘못이 있는지를 비판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그냥 싸잡아서 그놈 싸가지 없다는 식이다. 인간을 원래 완전하지 않다. 진중권이 싸가지 없고 관종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되돌아 보아 완전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공론의 장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악의적인 인격적 비난이 아니고 의견의 개진이라면 그것이 비록 따갑고 쓰리더라도 허용되어야 한다. 지금 진중권에 대한 비난은 공론의 장을 막는 독재적 경향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파쇼적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전한 진보라면 싸가지나 관종이라는 말보다는 그가 하는 말의 타당성 논리적 결여를 지적해야 한다. 저놈 기분나뻐식의 접근은 수구보수세력들이 주로 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진중권을 앞으로 그가 두들긴 거대한 기득권의 벽앞에 좌절할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할말을 다 했으면 좋겠다. 진중권이 친문세력을 비판하니 자유한국당에 눈길을 돌린다고 마타도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바로 군부독재시절의 그들과 같은 논리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진중권을 다시 한번 응원한다.

작성일자2019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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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발언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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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 동양대학교 교수에서 사직서를 냈다고 한다. 일전에 진중권은 정의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찬성문제로 탈당계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동양대학교 교수에서 물러나고 곧바로 유시민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교수가 대학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봉급을 마다하고 광야에서 풍찬노숙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웬만해서는 교수중에서 사퇴서 내는 사람 별로 없는 이유 다.

진중권은 본인이 동양대에 적을 두고서는 제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퇴했다고 했다. 진중권은 그런 태도만으로도 타의 귀감이 된다고 하겠다.

진중권은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까지 싸잡아서 비난했다. 문대통령이 간신에게 둘러쌓여 있다고 했다. 그리고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는 친문의 부패를 감싸주는 어용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전적으로 진중권의 발언에 동의한다. 유시민과 김어준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아주 비열한 방식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공정함과 정의로움 보다는 편파적인 진영논리를 우선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곤경에 빠져 있는 것은 바로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 같은 파쇼적 언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점에서 진중권이 용기있는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중권은 그야 말로 스스로 경계에 선 사람이다.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 같은 언론은 스스로 진영내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세상을 바꾸어 가는 것은 경계에 선 사람들이다. 진영내로 들어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 밖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지식인은 어디에 서느냐가 중요하다. 스스로 경계에 서서 양쪽을 모두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진영에 속한 지식인은 이미 지식인이 아니다. 자기것을 지키고자 하는 기득권에 불과하다.

진중권에 대한 비난이 매우 거센듯 하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잘못하면 그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계에 선 사람들은 그런 비난마저도 감내해야 하는 법이다.

진중권 같은 지식인이 더 많이 나와와 우리나라가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아갈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해 그동안 진중권을 그리 좋게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그의 행동을 보면서 그에 대한 내 판단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말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진중권 같은 용기있는 지식인들이 우리사회에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이번 기회에 유시민과 김어준 같은 사람들도 진영의 기득권을 옹호하는데 진력하기 보다는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했으면 좋겠다.

비록 별 힘은 되지 않겠지만 진중권을 지지한다. 힘을 내기 바란다. 진중권 같은 행동하는 양심이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

글쓴이admin
작성일자2019년 12월 28일
카테고리올바른 길, 행복한 사회
편집”진중권의 발언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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