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자기그릇보다 부족하게 살아가야 자식농사 잘된다.

201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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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자기그릇보다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결말은 다 좋지 않다.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고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하면 반듯이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이제까지 살다가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추락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런 것 같다.

왜 그럴까? 오랫동안 그런 사람들을 관찰해보았다. 먼저 자신의 그릇에 넘치는 지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도 모르게 무리를 해야 한다. 그 무리라는 것이 여러 가지다. 지나치게 아부도 해야 하고 밑에 사람들도 쥐어짜야한다.

신의라는 것도 가끔은 헌신짝처럼 버려야 한다. 아니 가끔이 아니라 자주 버려야 한다. 자신이 평소에 신념이라고 말하고 다니던 것도 높은 사람 말 한마디라면 언제 내가 그런 말을 했었냐하고 싹 바꾸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 불법과 탈법도 양심을 끄고 슬쩍 슬쩍 저질러야 한다.

가끔 TV에 붙들려가는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다. 특정한 사람들을 지적하는 것은 거시기 하지만 원세훈 같은 사람이 대표적으로 그런 부류이다.

승진이나 돈을 버는 것도 물 흘러가듯이 해야한다. 가급적이면 자신의 그릇보다 많은 것을 품으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 같다. 내 능력에 비추어 조금 부족한 지위에 만족하고 돈에 만족해야 하는 것 같다.

옛날 어른들이 조금 부족한 듯 살면 그 복이 다 자식들에게 간다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런 것 같다. 무리를 해서 승진을 한 사람들 중에서 자식 잘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자식의 복과 운을 가져다가 자기가 쓴다고 한다. 내 복과 운을 자식에게 나눠주어도 자식이 세상 살기 벅차다. 그런데 자식 것을 가져다가 자기가 써버리면 자식은 무엇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당연히 힘들 수밖에 더 있겠는가?

예전에 할머니들이 거지들에게 음식 동냥할 때 음복을 쌓는다며 우리도 못먹는 것 퍼주시던 것이 생각난다. 돌이켜 보면 내가 지금 이렇게나마 살아가고 있는 것이 다 조상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승진은 물 흘러가듯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러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승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런 경우를 보기 어렵다. 이상한 사람들이 꼭 낀다. 후배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사람들이 꼭 승진을 한다. 가끔 그 사람은 당대에 혼이 난다. 법적인 처벌을 받아서 평생 쌓아온 것 다 날리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식에게 문제가 생긴다. 당장 여러분들 주변을 잘 보라. 무리하고 지탄을 받아서 승진을 하거나 무능하지만 그야말로 무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승진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식농사가 잘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식의 운을 자기가 당겨 써 버렸는데 어떻게 자식이 제대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겠는가?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있듯이 운 총량의 법칙도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지고 타고난 운을 다 써버리지 않으면 그것이 자식들에게로 넘어가는 법이다. 그래서 내가 너무 잘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가진 능력보다 조금 부족하게 살면 그 만큼 자식에게 가는 법이다.

내가 가진 능력보다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너무 억울해 할 필요가 없다. 언론에서 잡혀가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자신의 그릇에 넘치는 지위에 있었거나 그런 지위를 탐하려던 경우가 많다. 한번 잘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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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스팀 이야기)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스팀잇 때문에 스팀가격이 정체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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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상황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바뀐다. 한동안 세계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는 것이 유행인 적이 있었다. 그냥 놓고 보면 한반도는 매우 답답하게 느껴진다. 위에는 대륙이 한반도를 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거꾸로 놓고 보면 매우 시원하다. 바다가 펼쳐져있고 우리가 나아갈 곳은 무궁무진하게 보인다.

스팀가격이 하락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기도 하고 빠져나가기도 하는 듯하다. 왜 스팀은 가격이 올라가지 않을까? 스팀가격이 정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스팀잇을 해서는 안될 애물단지로 여기는 것 같다.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반응을 하는 것 보니 이제 스팀이 바닥까지 온모양이다. 1달러선에서 그 밑으로는 그리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지금 선에서 매집을 하는 사람들도 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주식이나 코인이나 많은 사람들을 따라 따라 다니면 손해 보기 십상이다. 남들이 실망해서 투매를 할 때 사야하고 남들이 좋다고 환호작약을 할 때 팔아야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그 간단한 원칙을 우리른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위험에 직면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향하는 습성이 있다. 그것은 본능이다.

밤에 산길을 가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20년 전 쯤에 야간 산행을 취미처럼 해본적이 있다. 집앞에 관악산이 있었다. 저녁 해가 떨어지면 올라가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고 주변은 칠흑처럼 어둡다. 달빛에 겨우 등산로만 보인다. 한시간 반을 올라가면 정상이다. 연주암에 올라가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 보고 가져간 커피를 한잔 마시고 서울시내를 구경했다. 연주암에 올라가서 서울시내 야경을 한번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려오기가 싫을 정도다.

올라가는 동안 아무도 없었다. 어쩌다 내 머리 뒤쪽으로 나뭇잎이라도 떨어지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혼자를 즐기려고 했지만 간혹 산행을 하고 내려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간혹 절에서 일보다가 늦게 내려오는 분들이 있었던 것이다. 몇 달을 혼자 다니다보니 사람 만날까 두려워지기도 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 살기가 어렵다. 특히 어려울 때는 여러사람이 같이 있는 곳에 속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투자도 그렇다. 남들 살 때 사고 팔 때 사게 된다. 그것은 본능이다. 본능을 따르면 투자에서 실패한다.

지금 스팀이 어떤 상태에 처해있다고 생각하는가? 몇 달전에 펌핑을 해서 마구 올라가면서 모든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을 때와 지금의 스팀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람들은 스팀이라는 것이 스팀잇에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스팀잇의 문제 때문에 스팀 가격이 올라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그런 경향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스팀가격과 스팀잇의 상황과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 스팀가격은 스팀잇 때문에 하락횡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스팀잇을 가지고 아무리 이런 저런 정책을 시도하고 바꾸고 난리를 쳐도 스팀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작금의 코인시장은 제대로 된 가치에 따라서 가격이 정해지고 매매가되는 시장이 아니다. 매출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실체가 없는 프로젝트에 불과하다. 기대만으로 성장하고 펌핑하고 또 급격하게 식어간다. 그렇다 보니 쉽게 움직일 수 있는 프로젝트에 돈이 따라가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스팀도 그런 과정을 겪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약 두 번 정도 그런 것 같다. 처음에는 폴로니엑스 상장이라는 호재로 스팀가격이 7달러까지 상승했다. 상승이후에는 급격한 폭락장세가 이어졌다. 0.1달러 밑으로까지 떨어졌다. 그리고는 급격하게 상승해서 3달러 선까지 갔다. 아마도 지나친 폭락에 대한 반등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다시 떨어져 1달러 선에서 유지되고 있다. 스팀은 이런 급격한 상승과 하락을 겪으면서 바닥이 0.1달러에서 1달러 수준으로 약 10배정도 올라갔다.

스팀가격이 7달러로 올라간 것은 스팀잇이 이상적으로 작동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3달러로 올라간 것도 스팀잇이 제대로 작동해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팀잇을 욕하면서 그리고 보상체계를 욕하면서 스팀 가격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올해 최저가격보다 지금은 10배가 넘게 올랐다. 어떻게 더 이상 올라가기를 바라는가? 그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몰론 비싸게 산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에 관점의 차이에 따라 입장이 바뀐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지금 스팀잇을 떠나네 마네. 가능성이 있네 없네. 하는 모든 이야기들로 지나치게 단견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저번에 스팀이 1달러 밑으로 떨어졌을 때 스팀 구입 찬스라고 포스팅을 올린적이 있다. 지금도 스팀 구입찬스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많지는 않지만 당근 사서 파워업을 했다.

스팀가격의 정체를 스팀잇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지금 코인시장은 물건보고 움직이는 곳이 아니다. 필자 생각에 스팀이 오르지 않는 것은 스팀잇이 너무나 정상적인 상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팀도 펌핑을 하긴 하지만 결국에는 스팀잇의 가치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어떤 사람들이 다음 펌핑을 준비하는 기간인지도 모른다. 단기간에 큰돈을 벌려면 지금 사두었다가 펌핑할 때 팔면된다. 스팀은 적어도 지금보다 형편없는 가격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스팀은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우상향을 해나갈 것이다.

1년 동안 스팀가격의 동향을 보라. 스팀가격의 저점이 어떻게 높아져 왔는가를.

스팀가격이 하락 횡보하다보니 스팀잇에서 글을 써서 얻는 보상과 스파보유자로 인한 보상간의 불균형을 해소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셀프 보팅이야기도 나온다. 필자의 생각은 이미 위에도 말했지만 스팀가격의 등락은 스팀잇의 보상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제도가 바뀌면 잠깐의 가격 등락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금방 회귀될 것이다.

스팀 가격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어차피 오를 것이라면 성급할 필요가 없다. 싼 기간이 좀더 오래 지속되는 것이 스팀확보에 더 유리하다. 난 지금보다 너무 급하게 상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팀파워 모으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필자의 생각이 스팀잇 동지들과 다를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는 스팀으로 손해를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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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우리사회의 분위기가 언제부터 이렇게 맥이 빠져 버렸나? 평범해지지 말자.

201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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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조직 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어렵다. 회사에서 적응하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 왜 그럴까? 내가 이상으로 생각했던 것과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실 속의 조직을 보면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드물다. 아마 젊은 사람들이 회사에 취직해서 조금만 있다 보면 금방 느끼는 것일 것이다.

성공적으로 승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무난하다는 평을 들으며 모험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안에 대해 목숨 걸고 이것이 옳다 저것이 틀리다고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다. 대세에 그냥 따라간다.

통상 약삭빠르고 아부나 잘하고 아랫사람들 알기를 발가락 사이의 때만큼이나 아는 사람들이 성공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어느 정도 올라가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사람들은 승진에서 탈락한다. 회사에 들어가서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사람들은 능력이 탁월하고 자기주장이 분명한 사람들이다. 윗사람들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윗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인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것은 윗사람들이 부담스럽게 느끼기 시작하면 그런 분위기가 조직전반에 확산된다는 것이다. 동료들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 능력있는 선배는 서서히 왕따가 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후배들도 왕년의 능력자와 이야기 하는 것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능력자들은 거기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승진에서 탈락해서 물러난다. 아니면 다시 심기일전해서 능력자에서 무능력자로 스스로 전향한다. 조직에 적응을 한다는 이야기다. 스스로 총기와 통찰력을 버린다. 아부와 무신경으로 무장한 채 봉급 받아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서 적응한다.

그런 적응이 조금만 지속되면 무지하게 편하게 느껴진다. 자신도 모르게 욕하던 상사처럼 닮아간다. 그런 사람 정말 많이 보았다. 특히 공직사회에서 행정고시 사법고시보고 세상을 자기가 다 고칠 것 같이 패기 넘치던 친구들이 5년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어쩌면 그렇게 자기가 욕하던 사람과 똑 같아지는지 놀라울 정도다.

평생 조직생활을 하면서 보았던 경우였다. 참 이상했다. 왜 통찰력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은 도태될까? 왜 능력도 없고 소신도 없는 사람들이 우두머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왜 무난한 사람들이 주름잡을까?

무난한 사람들이 주도하는 조직은 대부분 평균이하의 성과를 낸다. 그런 사람들을 결코 실험적이거나 첨단을 지향하지 않는다. 잘하는 것보다 잘못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릴 때는 신문에서 욕먹는 사람들이 잘못하는 사람이거나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 사람이 누구랑 부딪쳐서 저런 꼴을 당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도전적이거나 뭔가 실험적인 것을 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쇠고랑 차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그냥 두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모습으로 변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내 친구들은 1980년대 조중반에 대학을 졸업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했다. ROTC로 장교생활을 한 친구들은 현대종합상사, 삼성물산 이런 곳에 많이 취업을 했다. 그리곤 전세계를 누볐다. 내 친구 중의 하나는 사우디에 여자들 스타킹 팔러 다녔고 유럽에 콘돔을 팔러 다녔다. 그 때 그는 자신감에 차서 세계가 자기 손안에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우리 때는 행정고시나 사법고시같은 것은 쳐주었지만 다는 공무원 같은 것은 하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기업에 들어가 산업역군이 되어 전세계를 누비는 것이 로망이었다. 회사에서 단순하게 승진하고 먹고사는 것 정도로는 성차하지 않았다.

한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그런 분위기는 사라지고 말았다. 1980년대를 암울한 독재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그때 우리 사회는 역동적인 도전정신이 있었다. 매일 데모가 거리를 휩쓸고 있었지만 전 세계로 뛰어다니는 산업전사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도전정신이 사라져 버렸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과 한 세대 전에 세계에서 가장 도전적인 나라가 불과 한 세대 만에 가장 수동적인 나라가 되어 버렸다.

왜 이런 지경이 되어버렸을까?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정치가 잘못 되었을 수도 있고 기업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다. 특히 혁신을 통한 성장보다는 외형적인 팽창만을 추구하는 재벌 2세와 3세의 문제도 있다. 재벌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또 신자유주의라는 사조에 따른 국제적인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보통사람들이 본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평범한 삶을 거부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저 무난하고 사람 좋다는 평만으로 우리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갈 수 없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도전적이고 때로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 사람들을 존중해야 나라가 살고 우리도 산다. 무난한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이 우리가 살길이다.

좀 특별해지려고 노력하고 좀 특별하게 살자. 평범을 거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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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혁신과 성공의 조건, 춘천의 어느 식당에서

20171010

일전에 춘천에 다녀 온 적이 있다. 일행들과 식사를 하러 갔다. 더덕정식이라고 하는데 맛이 특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상했다. 서울이라면 이렇게 사람이 많을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식사를 하는 도중 주변을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어떤 특별한 점이 있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올까?

이 식당만의 특징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식당의 분위기가 좋다.

들어가는 입구

식당 내부

더덕정식을 취급하는 집인데 마치 양식집처럼 분위기가 고급지다. 춘천하면 닭갈비와 막국수가 유명하다. 그래서 춘천 구경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닭갈비와 막국수를 한번은 먹어본다. 정작 춘천사람들은 닭갈비와 막국수에 심드렁하다. 워낙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서울사람에게 잘알려진 닭갈비집이나 막국수집에는 잘 안가는 경향도 있다.

이집은 더덕정식을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다. 이집에는 관광객들보다 춘천사람들이 더 많이 온다고 한다.

이 집이 까탈스러운 춘천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분위기가 좋다. 더덕정식은 15,000원 정도하는데 그 정도 가격에 많은 반찬과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아주 적절한 전략인 듯했다. 춘천만의 특징을 잘 파악한 것 같았다.

춘천은 춘천만의 특징이 있다. 춘천은 강원도청 소재지이지만 군사도시와 같은 분위기도 있다. 주변에 군부대도 많이 있다. 춘천사람들은 전라도에 못지않게 예술적 취향도 매우 높은 편이다. 군부대가 많다고 춘천사람들을 거칠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감수성들이 예민하고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높다. 관심만큼 수준도 높은 편이다.

당연히 춘천사람들은 밥을 한끼 먹어도 분위기 있는 식당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분위기는 문화적 감수성이 높은 춘천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할 정도이다.

두 번째는 음식을 준비하고 내놓고 다시 치우는 서빙 시스템이다. 대중 음식점 답지 않게 이집은 매우 조용하다. 통상 한식집은 소란스럽다. 손님들도 시끄럽고 종업원도 시끄럽다. 그런데 이집은 매우 조용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종업원들이 많지가 않다. 서빙을 아줌마들이 하지 않고 어떤 총각이 카트위의 나무판위에다 상을 차려 손님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위에다 밀어서 올려놓는다. 당연히 아줌마들이 많이 없다.

그러니 식당도 소란스럽거나 바쁘지 않다. 홀에는 아줌마 한 명 정도가 간단하게 뒤처리를 하는 정도다. 아줌마하고 찾는 소리도 없다. 반찬도 충분하게 여러 가지를 많이 주기 때문에 아줌마 찾을 일도 없다.

혁신은 모든 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혁신을 하는 곳은 성공을 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다. 이집은 서빙시스템으로 아줌마들을 많이 고용하지 않을 수 있어서 인건비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식당하는 집들은 대부분 인건비 때문에 죽어난다. 사람구하기도 어렵고 또 일정한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이 집은 서빙시스템 살짝 바꾸는 것으로 그런 어려움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춘천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서빙 시스템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성공한 곳과 실패한 곳을 찾아본다. 성공한 곳은 성공할 이유가 있었고 실패한 곳은 실패한 이유가 있었다.

이 집은 서빙시스템과 분위기 때문에 성공한 듯하다. 물론 반찬도 무지 많아서 맛에 앞서 심리적으로 기분좋게 만들어 주었다. 성공의 이유는 혁신이다. 혁신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가 하려는 사업이 어떤 면에서 다른 곳과 구분할 수 있는 혁신을 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냐 보통 대충 남들 하는 것처럼 해서는 백이면 백 다 실패한다. 무엇을 하든지 마찬가지다.

성공의 문은 매우 좁다. 그 문을 통과하는 길은 혁신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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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여유와 무료함의 사이에서, 열흘 넘는 긴긴 연휴를 보내며

20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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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정도의 길고 긴 휴일을 보냈다. 집에 가지 못하다보니 시간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구경을 다녔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삶이란 정말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때어나서 한번 뿐인 삶을 살아가는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니 말이다.

인간이 부모로부터 몸을 받고 태어나 살아가는 기간은 몇십년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짧다. 젊을 때는 그 젊음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것도 금방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은 흘러가서 청년을 중년으로 중년을 노년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제까지 수십년을 살아 오면서 내 삶에 얼마나 진지했는지 생각해보니 아쉽기만 하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온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조직의 일원으로 시키는 일하면서 살았다. 가끔 말도 안되는 일이 있으면 소심한 항거를 하기도 했으나 별로 성과있는 결과는 거두지 못하고 스스로 농성을 풀고 말았다.

남들이 다하는 것처럼 하고 살았다. 학교 다니고 취직을 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봉급을 받았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쥐꼬리만한 봉급에 목을 매고 살았다. 살다보면서 기회라는 것도 있었다.

문제는 기회라는 것이 대부분 내 삶의 원칙을 버려야 붙잡을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꺼림직한 기분이 들어서 그 기회라는 놈을 잡을 수 없었다.

기회라는 놈이 날 희롱 하면서 주변을 맴돌고 있었지만 덥석 잡을 수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때 왜 내가 붙잡지 않았을까하는 살짝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잘했구나 하는 생각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만일 그때 덥석 물었더라면 코꿰인 소마냥 이리저리 끌려다녔을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것도 그 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던 덕택이었다고 위로를 한다.

여유와 무료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여유를 바란다. 돈을 벌고 일을 하려는 것도 모두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작 시간이 주어지면 무료함을 느끼고 삶의 의요을 잃어버린다. 원래 인간은 여유롭게 시간이 많이 주어지면 안되는가 보다. 그저 항상 바쁘게 닦달을 당하면서 정신없이 살아야 하는 것인가 보다.

연휴기간 동안 집에 혼자 앉아서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 가만히 앉아 명상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여유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명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땅바닥에 책상다리 하고 앉으면 무릎이 쑤시는 바라 의자에 앉아서 편한 의자에 앉아서 눈을 지긋이 감고 명상을 시도했다.

조금 지나니까 눈이 슬슬 감기면서 졸린다. 무지하게 졸린다. 결국 침대로 가서 잠을 잤다. 그래 여유를 즐기는 가장 좋은 것은 잠을 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하루 종일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낮에 한번 깊게 잠을 자면 밤잠을 설친다. 그러면 대책이 없다.

결국 몸을 피곤하게 만들려고 황토 길에 가서 걷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두 시간 이상을 걷기 어렵다. 파김치가 되어서 집에 들어와도 시간은 한참이 남는다.

법정스님은 그 긴긴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그 분도 정말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을까? 혼자 있는다고 했지만 사람들이 찾아와서 이런 저런 말을 물어보고 했을 테니 절대적으로 혼자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을 성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을 때 법정스님 책을 많이 읽어보았다. 혼자서 하라는 말을 무척 많이 강조하셨다. 그런데 혼자하는 것이 쉽다면 그런 말을 했을까? 혼자라는 것이 정말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결국 그 다음날은 카메라를 둘러메고 여기저기 역사탐방을 다녔다. 모두 무료함을 면해보기 위해서였다.

삶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온전하게 소유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죽을 때까지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경지에 도달해야 가능한 걸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일에 매달려서 정신없이 살아가야 행복한 것일까?

어쩌면 삶은 무료함과의 투쟁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것은 참을 수 있는데 무료함만은 견뎌낼 재간이 없다. 삶은 무료함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다. 일을 해서 무료함을 달래고 그래서 받은 보상과 댓가로 다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영화를 보고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며 술을 마신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많은 희생을 치룬다.

그 무료함을 여유를 즐기는 것으로만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득도한 것이나 마찬가지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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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역사탐방) 쌍계사 가는 길, 그리고 성삼문의 묘소

20171008

서울 노량진에 사육신 묘소가 있다. 어릴 때 간혹 사육신 묘 참배를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간혹 갔었다. 갈 때마다 사육신들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얼마나 의연했는지를 듣곤 했다. 나도 나중에 죽을 기회가 있으면 그렇게 죽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렇게 죽고 싶지 않다. 일생 큰 굴곡없이 평탄하게 사는 것이 최대의 복락이구나 하고 느낀 것도 요즘의 일이다. 높은 벼슬과 많은 돈도 모두 행복의 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필자는 연휴기간 내내 사무실에 매여 있었다. 집에 가지도 못하고 당연히 차례도 지내지 못했다. 연휴 마지막에 큰 프로젝트가 있어서 준비를 해야 했고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중간 중간에 시간이 남았지만 서울에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시간이 남으면 필자는 차를 타고 여기저기 역사탐방을 다닌다.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다. 우리주변에 얼마나 많은 역사유적지가 있는지를? 다녀보면 수천 년의 역사가 이 땅 이 곳 저 곳에 널려있다.

유적지를 하나씩 보는 것이 필자의 취미라면 취미이고 낙이라면 낙이다. 책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다. 직접 가보면 느낌이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나라에는 직접 다녀서 볼만한 탐방장소가 지천에 널렸다. 평생다녀도 못 볼 정도로 많다. 수천년의 역사가 그냥 흘러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흔적을 남긴다.

이번 연휴기간에도 짬짬이 여기저기를 다녔다. 일전에 포스팅했던 수덕여관과 수덕사도 다녀왔고 정순왕후 생가도 다녀왔다. 정순왕후는 영조의 계비이다. 정순왕후는 정조를 압박하기도 했고 정조가 죽은 다음에는 천주교도 박해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 사람이다.

논산 쌍계사에도 다녀왔다. 쌍계사하면 다들 하동의 쌍계사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논산에도 쌍계사가 있다. 논산 쌍계사는 대웅전 건물이 유명하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바라 직접 한번 보고 싶었다.

가는 길에 성삼문 묘지라는 표지판을 보았다. 웬일인가 했다. 헷갈렸다. 성삼문 묘소는 노량진에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묘지 입구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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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는 매우 넓게 조성되어 있었다. 묘지입구에 사당이 있고 묘지기 집 같은 것도 있었다. 성씨 일족이 충청도 쪽에 살고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조성된 묘역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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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 들어서니 저 멀리서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날 반긴다. 조그만 것이 짓지도 않고 나와 놀아달라고 한다. 그리고 묘지가는 내내 나를 따라 다닌다. 거참 신기한 놈이다. 묘지 올라갈 때도 앞서서 가고 내려올 때도 앞서서 내려간다. 마치 길을 안내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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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입구에 묘지의 유래를 알려주는 비석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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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을 지나 조금 가면 사당이 있다, 사당의 이름이 성인각 成仁閣이고 입구가 무이문 無二門이다. 무이문이라 무슨 뜻인가 했다. 아마도 불사이군을 이른 말인 듯 하다. 죽을 지언정 두사람을 임금으로 모시지 않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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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을 읽어보니 당시 성삼문은 거열을 당해 처형되었다고 한다. 거열이란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이다. 찟어진 성삼문의 시신은 전국에 흩어서 버렸다고 한다. 마침 논산지역에 버려진 성삼문의 시신 한조각을 수습해서 묘지를 만든 것이 지금의 성삼문 묘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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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옆 비석은 오랜 시간 때문인지 무슨 말인지 알아보기 조차도 어렵다. 충신을 위해 재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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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은 충절을 지켰지만 그의 처첩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의 처첩들은 노비가 되었다. 노비가 되어서 웃음을 팔면서 잘 놀아났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 어른에게 이야기 들은 적이 있다. 그런 꼴을 보고 뒤에서 지 서방은 사지가 찟겨서 죽었는데 고을 수령놈들하고 놀아나고 있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때 어른들은 서로 옛날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내시곤 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지금과 달리 어디 딱히 갈데도 없어서 저녁이면 대부분 집에 앉아서 어른들 하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참 좋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변절자의 상징이던 신숙주는 세조에게 죽은 단종의 비를 자신의 노비로 달라고 했다고 한다. 단종이 죽은 다음 단종의 비가 노비로 강등되었다. 신숙주는 세조에게 노비로 강등된 단종비를 자신의 노비로 달라고 한 것이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단종의 비를 자신의 노비로 달라고 했을까?

나이가 이만큼 들어도 가장 어려운 질문이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인가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 이러 저리 몸부림을 쳐보지만 과연 나는 만족스럽고 행복하며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마 죽을 때까지 회의와 한탄 그리고 비탄 속에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한다.

세조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아무도 단종비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평탄하고 아무 일없이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권력에 가까울수록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남의 권력과 돈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다.

대륙의 끝 반도에 매달려 있는 조그만 나라지만 사라지지 않고 지금껏 남아 있는 것은 성삼문 같은 충신 열사 덕분이 었을 것이다. 우리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군대가 강했던 것도 아니었다. 고대에는 그랬지만….

그나마 이 정도로 나라가 유지되고 우리가 한국어를 하고 살게된 것도 정신적인 힘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지금 공직을 하는 사람중 얼마나 성삼문 같은 기개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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