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코인 이야기) 암호화화폐, 어떤 의미로 보아야 할까요?

20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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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dollarvigilante가 쓴 ICO가 월스트리트를 없애버릴 것이라는 내용의 포스팅을 보았다. 그저 그런 내용이러니 했는데, 거기에서 의미있고 재미있는 내용을 보았다.

https://steemkr.com/bitcoin/@dollarvigilante/will-icos-take-down-wall-street-the-way-bitcoin-may-take-down-central-banks-and-fiat-currencies

2017년 2분기의 ICO가 30억불을 넘었으며 그 액수는 미국의 증권상장시장보다 크다는 것이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ICO가 IPO를 추월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dollarvigilante가 가끔 오락가락하는 경향이 있어서 포스팅에 신뢰는 가지 않지만 통계까지 엉터리로 제시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만일 @dollarvigilante의 통계가 비슷하게 맞다면 지금 우리는 경제구조의 새로운 재편성이 일어나고 있는 한 중간에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때 정작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그런 줄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식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해왔다. 북유럽의 한자동맹 때부터 주식이 개념이 만들어졌고 그로부터 수백년동안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핵심이 되어왔다. 자본주의란 은행과 주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식을 발행하는 IPO대신 토큰을 발행하는 ICO의 규모가 더 커진 것이다.

달러비질란트는 일전에 디먼(JP 모건)이 암호화화폐를 디스한 것도 ICO가 IPO의 규모를 넘어서자 위기감에서 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달러비질란트는 Dimon을 Demon이라고 철자를 하나 살짝 바꾸어서 디먼을 악마라고 부르는 위트도 보였다.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움직임이지만 이것은 실로 엄청난 함의를 가지고 있다. 암호화화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기회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닥쳐오는 변화에 자신의 운명을 고스란히 맡겨야 할 것이다. 물론 암호화화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변화를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예상치 못한 변화가 불어닥칠 것이다.

아무리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미래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상당수의 ICO는 상폐되어 버릴 것이고 그중에서 아주 극소수의 프로젝트만 살아 남을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필자가 이미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문제는 필자가 상상했던 변화가 더 이상 상상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주식에서 토큰으로 넘어가는 것일까? 그래서 기존에 힘쓰던 증권거래소니 하는 금융기관들이 몇개 문닫고 마는 것일까? 만일 기업의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 주식에서 토큰으로 바뀌는 것에 그치고 만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토큰도 거래가 필요하니 그 거래소가 주식거래소를 대체하면 된다. 미국의 경우 이미 SEC가 토큰을 주식과 같다고 보고 규제에 들어간지 오래다.

COSMOS도 투자금이 아니라 Donation이란 명목으로 투자금을 받았다. 이미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에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변화에 적응하기위한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ICO를 중지시키고 암호화거래를 규제한 것은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점에서 우리나라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암호화화폐의 움직임을 단순하게 금융체제와 제도를 바꾸는 것으로만 인식한다면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을 자본주의 경제와 그것을 지탱해온 paradigm의 변화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본주의는 상업과 공업의 발달을 통해서 성장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방식의 산업체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분산화된 블록체인을 통해서 기존의 중앙화된 IT산업과 전혀다른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IT라는 전자적 기반은 유사할지 모르나 운용되는 방식은 전혀다르다. 만일 분산화된 블록체인의 특성이 가장 잘 구현되는 방식으로 경제가 진행된다면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경제구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지금껏 그랬듯이 집중적인 자본이 블록체인을 장악한다면 그럴경우 앞으로 인간의 삶은 지금보다 더 훨씬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부는 훨씬 집중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영화를 보면 많은 경우 보통사람들의 삶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기술의 변화라는 것이 그런 과정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일 거대자본이 블록체인을 장악할 경우에 말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가야 변화의 방향성이 정해질지는 모르겠다. 변화의 초입에서 그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은 기회이자 도전이다. 제대로 잘 대응하면 내 한몸 내가족은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말짱 도로묵이다.

여러분들 기회를 잘 잡고 계신가요?

절대 서두르지 마세요.

어떤 경우에도 가장 효과적이고 유효하며 최선인 전략은 인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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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스팀잇 이야기) 어떤 생각으로 스팀잇을 해야 할까?

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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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가격이 하락과 정체상태를 보이면서 많은 갈등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간 스팀잇 동지들이 많이 이탈했다고 하기도 한다. 왜 이런 현상들이 생기는 것일까?

필자도 꽤 오랫동안 빠지지 않고 글을 써 왔다. 매일 거르지 않고 포스팅을 한다.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글을 쓰지 않으면 하루가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안중근 의사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학교다닐때 작가들이 글 쓰는 것을 본능적 행위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기도 한다. 그렇다. 글을 쓰는 것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글쓰는 것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고 하더라도 마냥 기쁜 것은 아니다. 부담갈 때도 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망설여질 때도 있다. 소재의 고갈이라고 한다. 글이라는 것이 그냥 기계로 찍어내듯이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이라는 것이 마냥 물흘러 가듯이 항상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어떨 때는 꽉 막혀서 도무지 무엇을 써야할지 모를때도 있다.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산모가 아이를 낳는 것 처럼 어렵다. 글쓰는 작업은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수반하는 것이다.

스팀잇이 글을 써서 채굴을 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은 기회와 절망을 동시에 던져 주는 것이다. 누구라도 몇번 정도는 쉽게 글을 쓴다고 덤벼들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일정한 수준의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처음에는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글을 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기대는 절망과 회의로 변하게 된다.

글을 써도 채굴이 생각만큼 제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더 이상 글을 쓰기 어려워지면 심리적으로 여러가지 기재가 작동을 하게 된다. 제일 쉬운 것이 회피하거나 핑게를 대는 것이다. 스팀잇에 심리학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말을 해서 창피를 당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대부분 필자가 직접 경험해본 느낌이라서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 주면 고맙겠다. 그것은 당신 이야기지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필자와 같은 감정을 느낄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사람이라는 것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대충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리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스팀잇의 문제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보상의 불평등이 눈에 보이고 꼬진 UI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시스템으로 어떻게 글을 쓰라는 거야. 또는 글을 쓰면 보상을 준다면서 저희들끼리 다 해먹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보상이라는 것이 형편없는데 내가 거기에 계속 더 머무는 것이 자존심 상하기도 한다.

그정도 까지 가면 글을 쓰고 뭐고간에 기분이 나빠서 더 이상 스팀잇에 머무르기 싫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과정을 겪는 듯 하다. 필자와 같은 스팀잇 열성 신도도 그런 과정을 겪었으니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지 않고 장미빛 환상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필자가 이전에 올린 포스팅에서 글써서 보상받는다고 하는 것은 어렵다고 한 적이 있다. 전문 글쟁이조차도 글을 써서 밥먹고 살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같은 사람들이 글을써서 만족스러운 만큼의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결국은 스팀파워의 양만큼 보상을 받는 것이 통상적이고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조금 더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곱근 보상일 때는 간혹 글을 잘쓰는 사람중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었으나 선형보상으로 바뀌면서는 그런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다.

만일 스팀잇이 기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한계가 너무 명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런 한계에 봉착하는 것은 스팀잇을 사용하는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팀잇이라는 시스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스팀잇을 그냥 내가 보상을 받기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 것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내가 스팀잇을 단순한 수단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스팀잇의 성장과 내가 기여하고 이를 통해 나도 같이 성장하는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스팀잇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스팀잇의 성장과 나의 발전이 같이 같다고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나의 글쓰기와 보팅을 단순하게 보상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단견이다. 좀 더 멀리보면 나의 글쓰기와 스팀잇에서의 활동을 스팀잇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글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의 글이 스팀잇의 성장과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스팀잇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가는 각자의 생각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구는 전문적인 글쓰기를 통해 지식을 쌓아가는 플랫폼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소통의 SNS를 지향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위로받고 싶기도하다. 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장사도 생각할 수 있다.

어떤 방향은 옳고 어떤 방향은 틀리고는 없는 것 같다. 무엇을 지향하던 자기가 스팀잇의 생태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해야할 것이다. 결국 보상은 스팀잇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달려있지 않을까? 스팀파워를 많이 가지고 있는것도 스팀잇에 기여하는 것이다. 스팀파워 가지고 있다고 대충 글쓰고 보상많이 받는다고 비난하는 것도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방향을 살짝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내가 스팀잇에서 어떻게 활동을 해야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세상의 주인이 아니다. 세상이 주인이고 나는 잠시 머물다 가는 객이다.
스팀잇도 마찬가지다. 내가 스팀잇의 주인이 아니다. 스팀잇이 주인이고 나는 잠시 머무는 객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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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 수설) 드디어 맥북프로2017이 도착하다. 그리고 잡스를 추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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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삼성과 엘지를 쓰는 것이 애국하는 것인줄 알고 있다가 한번 호되게 당했습니다. 저는 엘지를 쓰고 있었는데 윈도우가 말썽을 부린 것이지요. 한참을 이리 저리 고민을 하다가 스팀잇 동지들에게 의견을 구했더니 압도적으로 맥북을 추쳔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맥북을 주문했습니다. 맥북프로 2017입니다. 앞으로 들고 다닐 일이 많아서 13인치로 주문을 했습니다. 다른 것은 그대로인데 SSD만 한단계 더 확장한 것으로 주문했습니다. 역시 맥북은 가격하나는 ㅎㄷ ㄷ하더군요. 신한카드로 결재하면 10개월 할부가 된다고 해서 10개월을 질렀습니다. 이쁘게 도착을 했습니다. 포장을 열고 보니 하얀 박스가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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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을 열고 맥북을 꺼냈습니다. 쥐색으로 주문했습니다. 회색의 메탈이 마음에 쏙 듭니다. 엣지감이 있습니다. 마치 차도남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처음 대면이지만 뭔가 도도한 자태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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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안에는 달랑 충전기만 들어 있습니다. 뭐 더 주는 것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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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북을 열었습니다.
화면에 하얀 종이가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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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을 켰더니 셋팅을 하라고 합니다. 먼저 대한민국을 선택하고 셋팅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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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정도 사용을 했습니다. 추천해주신대로 맥북이 무척 편합니다. 제가 왜 그동안 맥북을 쓰지 않고 그런 고생을 했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 절대로 윈도우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맥북이 직관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던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되는 군요. 처음 몇시간 조금 적응하느라고 어려웠습니다. 마침 직원중에 맥북을 쓰는 친구가 있어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빨리배웠고 훨씬 쉽군요.
물건사고 행복감을 느낀 것이 오랫만입니다. 만족합니다.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맥북을 보면서 스티브 잡스를 떠올렸습니다. 저는 스티브 잡스를 20세기 이후 우리의 삶을 가장 많이 바꾼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과 나온후의 우리 삶은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우리 삶에 혁신이 일어난 것이지요. 저는 지금 단 한순간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합니다. 뉴스부터 은행은 물론이고 식당까지 제 일상의 거의 대부분을 스마트폰과 함께 합니다.

저는 아이폰 유저가 아니지만 애플에 대해서 많을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잡스의 생각과 삶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잡스가 어느 대학에서 했던 연설을 몇번이고 다시 보기도 했습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연설문 써주는 일을 한적도 있었습니다만 보면 볼수록 명문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잡스의 진심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진심이 아니면 그런 말과 글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아마 글을 써보신 분들을 잘 알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붓글씨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저를 가르치신 선생님께서 그러시더군요. 붓글씨 쓴 것만봐도 그사람의 성정을 알 수 있다고요. 저도 말이나 글을 보면서 대충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추측해보곤 합니다. 물론 성정까지 알아 맞추진 못합니다만 진정성이 들어 있는지 아닌지 구분할 정도는 됩니다. 잡스의 연설에는 자신의 삶이 그대로 녹아 들어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한번씩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가끔 슬럼프에 빠졌을 때 도움이 됩니다.

맥북을 사놓고 잡스를 생각했습니다. 최근의 팀 쿡 체제하에서는 잡스 때와 같은 혁신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은 쉽게 보이지만 정작 자기가 하면 너무나 어려운 것이 혁신입니다. 그 사회가 바람직하게 발전하려면 혁신가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풍토가 갖추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스팀잇에 들어온 여러분 스팀잇 동지들이야 말로 혁신가로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스마트폰도 아이폰으로 바꿀 듯 합니다.

잡스에게 제사라도 지내줘야겠습니다. 고맙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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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박근혜의 구속기간 연장을 보면서, 절차적 정당성과 정의의 구현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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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구속기간이 연장되었다고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구속기간 연장이 아니라 재구속이 맞는 말인 듯하다.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두고 설왕설래하더니 그냥 유야무야 처리되고 만 느낌이다.

필자는 박근혜의 탄핵이후에는 그쪽에서 돌아가는 것에 무관심했다. 그냥 신경을 끄고 싶었다. 듣기도 싫었고 보기도 싫었다. 간혹 재판진행간에 그녀가 이랬느니 저랬느니 하는 기사가 나오긴 했지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권력이란 냉정한 것이다. 권좌에 있을 때는 세상이 자기 손에 들어있는 것 같지만 거기서 물러나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법이다.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 중에서 데미스토클레스라는 사람이 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도 이기고 아테네의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했다. 그는 장군이었고 또 정치인이었다. 젊을 때부터 정치에 뜻을 두었다. 어느날 데미스토클레스가 아버지와 같이 길을 갔다. 마침 비가 내렸다. 그래서 아버지와 같이 나무 밑에서 비를 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치고 사람들을 길을 갔다. 어린 아이들은 나무가지를 꺽어 서로 장난치고 놀았다.

데미스토클레스의 아버지가 데미스토클레스에게 말한다.

“저것을 보아라. 저 나무가 정치가의 운명이다.”
“사람들은 어려울때는 나무밑에서 비를 피하듯 정치가에게 의존한다. 그러나 어려움이 끝나면 정치가는 버림을 받는다”
“그것이 정치가의 운명이다.”

데미스토클레스는 평생 이말을 가슴에 새겼다. 도편추방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나 만년에 데미스토클레스는 도편추방을 당했고 그리스인에게 버림을 받았다.

정치지도자들이 기구한 운명을 살았던 것은 작금의 일이 아니다. 권력의 정상에서 쫓겨나 비참한 죽음을 맞아한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다. 오죽하면 헤겔이 역사는 영웅이 움직이고 영웅은 자신의 소명을 다한 다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며 그것을 ‘역사의 간계 cunning of history’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박근혜가 제대로된 인문학 교육을 받았더라면 정치가의 운명이 얼마나 기구한 지를 알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허무한 영어의 몸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필자는 박근혜를 재구속 시킨 것이 정당한 가에 대해 말하고 싶다. 뇌물사건으로 구속시켰고 그 구속기간이 만료되자 곧이어 다른 건을 들이대 구속을 시켰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박근혜는 평생 구속상태에 있을 수 있다. 롯데와 관련된 구속기간이 만료되면 다른 건으로 또 구속시키면 된다.

필자도 작년 추운 겨울에 박근혜 탄핵을 부르짖었던 사람이다. 필자의 지난 포스팅을 보면 알 것이다. 필자는 블랙리스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당시의 야당 지금의 여당과 언론이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해 포스팅한 적도 있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입장이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 잘못을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런 것을 초등학교때 부터 배웠다.

현실세계에서 잘못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들의 윤리적 수준이 초등학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박근혜를 재구속한 것은 문제가 많다. 법의 정신에 따르면 당연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박근혜를 재구속한 것은 법의 정신에 어긋난다. 법은 사회적 합의이다. 내가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적용기준과 방식이 달라져서는 안된다.

지금의 박근혜를 도와줄 정치세력은 아무도 없다. 소위 자유한국당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박근혜를 출당시켜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당권을 잡고 있다. 박근혜가 재구속되었지만 큰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박근혜가 힘이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라고 해서 법의 기준과 원칙이 바뀌어져서는 안된다.

박근혜를 역사적으로 심판하기 위해서는 절차적 정당성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그 심판이 의미가 있다. 법의 정신을 어기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박근혜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정치적 보복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박근혜는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승복하지 않으면 정의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정의를 원하는가? 그냥 한풀이와 같은 정의인가. 아니면 모두가 승복하는 재대로된 정의인가.

절차적 정당성을 가지지 못하는 심판은 정의롭지 않다. 우리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미국인들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많이 보았다. 이런 문제에 눈을 감아 버리면 정의는 왜곡된다. 아마 정권이 바뀌면 현정권에 있는 사람들이 또 정치적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정치가의 운명은 나무가지와 같다. 지금 국민의 지지를 압도적으로 받고 있는 것 같아도 언제 고꾸라질 지 모른다. 고꾸라지는 그 순간 수없이 많은 하이에나들이 달려든다. 아마 박근혜는 그렇게 느낄 것이다.

기분이 나쁘고 심사가 비틀리더라도 참고 절차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현정권이 살고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다. 지금같아서는 다음번 정권이 바뀌면 지금보다 더한 정치보복이 자행될 것이다.

그게 눈에 안보이나 보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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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코인이야기)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비트코인, 내생각이 틀렸던 것 같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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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이 생긴것은 2008년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약 4년간 제1차 반감기때까지 사토시 나카모토는 조용히 채굴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2년 소리소문도 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나중에 누가 사토시 나카모토인가를 놓고 설왕설래했다. 일본계 중에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느라고 난리를 치기도 했다.

필자는 제일 처음에 비트코인이라는 것이 2008년 금융위기를 보고 정부가 무제한으로 발행할 수 있는 달러화를 가지고는 사람들의 삶이 더욱 빈곤해 질 수 밖에 없겠다고 생각한 선각자가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비트코인을 위시한 암호화화폐가 상당할 정도의 무정부주의적 성향을 지닌 것도 그것 때문이다. 한동안 스팀잇을 위시한 암호화화폐에는 하이예크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최근에 참가한 스팀잇 동지들은 작년까지만 해도 스팀잇 포스팅을 뜨겁게 다루던 무정부주의자들의 열정을 느낄 수 없으시리라. 그때만 해도 자본주의적 무정부주의의 기세는 대단했다. 너무나 대조적인 것은 1년만에 그런 분위기가 싹 사그라 들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암호화화폐의 무정부의주의적 열기는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occupy wall street 주의자들의 경향성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wall street를 비난하고 비판을 했지만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부재했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사회주의였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일찍 붕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사회주의는 2008년 당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도 없었다.

무정부주의는 대안없는 비판주의자들이 머무를 수 있는 최후의 도피처나 마찬가지였다. 당시까지 필자는 새로운 사조가 만들어지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occupy wall street운동을 바라보았으나 별다른 변화는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비트코인을 당시의 그런 분위기와 비추어 생각하면서 누군가 서민들의 주머니를 지키기 위해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들어 생각이 바뀌었다.

비트코인을 일개개인이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아무리 암호화화폐에 대해 잘 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갑자기 그리고 타이밍도 절묘하게 2008년 금융위기때 만들어 내서 공표할 수 있었을까? 비트코인이 지나온 역사를 보면 그런 의구심이 든다.

아마도 비트코인은 암호를 매우 잘 다루는 전문적인 집단이 만들어냈을 확률이 높다. 그 이후 절반정도를 채굴하고 바람과 같이 사라지는 등의 행태를 보면 공작과 비슷한 냄세가 난다. 일부에서 비트코인을 미국정부가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필자는 그랬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만일 미국정부 기관이 만들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가 처음에 제시한 것 처럼 서민들의 부를 보장해주기 위해서일까? 지금까지 99%의 서민들이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암호화화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을 보면 그것은 아닌 것 같다.

필자는 달러의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기발한 보완책이 아닌가 한다. 미국은 금태환제도를 포기한 다음 달러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를 달러로만 받도록하게 했다. 물론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정체제를 지켜주기로 했다. 이점에 대해서는 이미 누차에 걸쳐 필자가 포스팅을 한 적도 있다.

문제는 앞으로 달러화가 많은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러가 가치를 유지하도록하는 안전판 역할을 하는 원유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할 수도 있다. 대체에너지가 많이 나오고 탄소배출문제 때문에 화석연료의 사용정도와 중요성이 과거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엄청나게 풀린 달러가 자칫세계 경제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릴수도 있는 것이다. 한때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에서 금본위제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금융위기와 원유의 안전판 역할등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이 새로운 안전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암호화화폐 비트코인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암호화화폐에 대한 기본 구상은 이미 그전부터 구상되어 있었다. 일단의 미국 암호화화폐 전문가들이 미국의 달러화가 앞으로 상당한 기간동안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묘책을 찾아낸 것이다. 결국 비트코인은 마치 금처럼 미국 달러의 가치를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게되는 것이다.

미국달러가 일정한 가치를 유지하려면 비트코인의 가격도 상당할 정도까지 상승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의 비트코인 가격상승이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히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적 법칙에 따라 비트코인의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최소한 절반이상의 비트코인을 미국정부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혹자들은 우지한이 채굴을 하면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졌느니 마는니 하지만 다 웃기는 일이다. 일전에 우지한이 골통같은 짓을 벌려 만들었던 BCC도 절반은 무조건 미국정부에 가야한다. 앞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한다면 최고의 부자는 다름아닌 미국정부가 될 것이다. 미국정부는 달러 발권력과 비트코인으로 양날의 검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누가 그랬나? 미국이 쇠퇴한다고. 만일 필자의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면 당분간 그 어느국가도 미국을 따라 갈 수 없을 것이다.

비트코인을 더 사야되느냐고? 그건 나도 모른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여기서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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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안보칼럼) 전쟁 이제 목전에 온듯하다. 그런데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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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B-1B 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을 지나갔다. 두번씩이나 지나갔다. 얼마있으면 미국의 항모전단 2개가 한반도로 온다고 한다. 게다가 핵잠수함도 한반도로 온다고 한다. 점점 군사적 압력의 수위가 높아진다, 미군의 한반도 증강이 단순히 북한에 대한 무력시위인지 아니면 정말 군사작전을 위한 준비의 일환인지는 알 수 없다.

트럼프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원래 그것이 트럼프의 전략이자 작전이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전쟁이 나고 안나고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정에 달려있는 듯 하다. 이미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뜻이다.

죽음의 백조가 수차례에 걸쳐서 한반도주변으로 와서 훈련을 했다. 훈련인지 아니면 훈련을 빙자한 사실상의 타격을 위한 예행연습인지는 알 수 없다. 군사적 시위인 동시에 실질적인 예행연습의 성격도 동시에 지니고 았다고 할 것이다. 스텔스기능이 완벽한 F-22는 죽음의 백조가 한반도에 왔을 때 북한 상공을 떠 다녔울지도 모른다. 지금도 북한 상공에 떠 있을지 모른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으니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는 방도가 없다.

최근 두번에 걸쳐 B-1B가 한반도에 출격했을 때 북한의 비행기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파헤치지 않은 것 같다.

만일 북한이 정말 몰라서 대응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미국으로 하여금 군사적 옵션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을 심어줄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군사적 옵션과 관련된 이야기의 빈도가 부쩍 높아진 것도 그런 자신감의 반영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이 죽음의 백조만 한반도 상공에 띄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외에도 우리에게 통보도 하지 않고 단독으로 시험한 것이 부지기 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군사적 옵션이란 전쟁을 의미하는 것인데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이 알면서 대응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그것은 북한이 꼬랑지를 확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미국은 군사적 압력의 빈도수를 높여나갈 것이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 군사적 압력의 정도를 높여갈 것이다.

이리저리 당분간 한반도 주변에서의 군사적 긴장의 정도는 점점 더 높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한 것이 하나있다. 중국이 가만히 있다는 것이다. 과거같으면 미국의 군사력 증강에 기를 쓰고 반대한다고 할 텐데 지금은 별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반응을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 중국이 미국과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인지 아니면 기가 죽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까불면 세컨더리 보이콧 해버리겠다는 공공연한 협박에 중국이 꼬리를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군사적 옵션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을 하지만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이미 상당부분 약화되었다. 과거의 소련이 아니란 말이다. 러시아가 뜬금없이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하는 것은 군사적 옵션이후에 이루어지는 전후처리과정에서 떡고물 하나라도 챙기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러시아는 군사적 옵션을 행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고려요소가 아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전쟁은 일어나면 안된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이 일어나면 안된다는 구호만 한다고 전쟁이 안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쟁의 발발과 관련해서 아무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

전쟁을 반대한다는 의지만 있다고 해서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이미 전쟁을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표명이 무색해진지는 오래되었다. 죽음의 백조가 한반도 주변을 비행할 때 한미가 사전에 협조 했느니 안 했느니 가지고 말들이 많다. 그런 말이 나온다는 자체가 한미관계가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한국이 미국의 정책결정과정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전쟁에 반대한다고 이야기 하면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압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오히려 군사적 옵션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군사적 옵션에 찬성한다고 한다면 국내로 부터 상당한 반발을 초래할 것이다. 정권의 지지세력은 상당수 이탈해버릴 것이고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경제적인 혼란도 가중될 것이다. 주식가격도 폭락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국이 한국을 전쟁에 끼여주지도 않을 확률이 더 높다. 북한에게 남한을 타격하게하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군이 군사적 옵션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게다가 만일 군사적 옵션이 이루어진다면 일본자위대가 참전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군과 일본자위대가 동시에 참가하면 이것을 정치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미측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전력은 한국군보다 일본군이 월등하다. 둘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한국군보다는 일본자위대를 선택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전후처리과정도 복잡해진다. 한국군이 참전하면 한반도 통일이니 뭐니 해서 북한을 중국과 적절하게 요리하는데 장애가 있을 수 있다. 이리저리 한국군은 이번 군사적 옵션에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군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참전하고 싶다고 해도 빼버리는 것이 작전에 유리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야말로 딜렘마에 빠져 있다. 그러니 지금처럼 정부가 아무말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사실상 지금은 준전시상태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국가가 아무런 말도 없이 나는 모르겠다하고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국가가 무슨말이라도 하면 당장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사재기가 발생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외국으로 탈출하려고 공항에 줄을 설 것이다.

쉽지 않다. 지금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 소리 소문없이 전쟁과 관련된 물자들이 엄청 잘 팔리고 있다고 한다. 일부 비상식량으로 쓸 수 있는 것은 매진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국란을 극복한 적이 거의 없는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나라가 어려우면 의병이 나섰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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