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역사산책) 논산 쌍계사 이야기 1

20172024

일전에 논산 쌍계사에 관한 사진을 두어장 포스팅한 적이 있었다. 주변에서 절이 멋있는 것 같은데 우리말로도 포스팅을 해보라고 한다. 언젠가 우리의 문화재와 역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아서 포스팅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런 기회를 한번 가져보려고 한다. @slowwalker에서는 언어의 제약이 있어서 사진을 중심으로 포스팅을 했다. 역시 우리말로 글을 쓴다는 것은 즐겁다. 모국어로 글을 쓴 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논산 쌍계사가 어떤 곳인지는 전혀 몰랐다. 은진 미륵불상 보러 갔다가 쌍계사가 있다는 도로 표지판만 보았을 뿐이다. 관촉사에서 문화해설사 하시는 분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쌍계사가 보통절이 아니라는 것을 들었다. 관촉사의 대웅전 문살 문양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쌍계사의 문살 문양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쌍계사로 갔다. 관촉사에서 20분정도 거리였다.

쌍계사가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길이었다. 차들도 별로 다니지 않았다. 가을은 벌써 이만큼 와 있었다. 들판에 벼들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여름에 그리 기승을 부리던 잡초들도 말라가고 있다. 세상에 절기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시간을 이길 수 없다.

쌍계사 초입에 도착했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쌍계사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것에 감동을 받는다. 쌍계사 입구의 길가에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 물빛이 너무 아름다웠다. 옥빛을 머금은 저수지는 주변의 산과 나무를 오롯이 품고 있었다. 저수지 옆으로 난 길은 채 200미터도 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그 길을 홀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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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부도상들이 정리되어 있다. 한문으로 절의 역사가 씌여져 있었다. 보아하니 고려시대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고려시대에 세워진 듯하다. 논산 주변의 절들 상당수가 고려초기에 만들어졌다. 아마 쌍계사도 그러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도상들은 오래되었다. 부도상들을 볼 때마다 저기에 한사람의 삶이 머물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인생이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결국은 한줌 흙이나 먼지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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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는 넓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은진 미륵사가 있는 관촉사나 다른 절들이 산비틀에 아슬아슬하게 있는 것과 달리 쌍계사는 널찍한 곳에 있었다. 원래 고려시대에는 절이 군사기관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절에 승려들이 머물면서 유사시에는 승병의 역할도 한 것이다. 단순히 도만 닦은 것이 아니라 군대의 역할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온 것같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면 승병들과 자주 회의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불교에서 호국불교라고 하는 것이 괜히 나온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쌍계사의 넓은 터를 보면서 고려시대에는 여기가 이지역의 중심지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쌍계사는 대웅전만 남아있다. 다른 건물들은 모두 불에 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남아 있는 하나가 모든 이야기를 다 해준다. 대웅전은 그냥 압도적이다. 이제까지 보았던 어떤 대웅전보다 더 웅장하다. 다른 배경과 주변의 부속 건물이 없어도 대웅전 단 하나만으로도 전체를 압도한다. 감동이 밀려온다. 논산 깊은 곳 찾아 오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은 곳에 이렇게 수백년의 세월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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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기둥의 아름다움은 어떤 다른 절의 기둥과도 비할바가 되지 못한다. 나무들이 있는 그대로 기둥을 세웠다.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들이 훌륭하다고 하지만 있는 그대로 구부러진 나무는 구부러진데로 바른 나무는 바른대로 기둥을 쓰고 대들보를 삼은 쌍계사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인공이 어찌 자연의 멋을 따라 올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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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구석에는 칡나무로 만든 기둥이라는 소개가 있었다. 처마 밑에 있는 장식에는 용이 새겨져 있었다. 처마밑 장식에 이렇게 멋있는 용들이 새겨진 것은 다른 절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다. 적당하게 색이 바랜 단청은 논산 쌍계사의 풍미를 더욱 돋구어 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절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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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안에는 제대로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한참을 절 주변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무도 그만하라는 사람이 없었지만 마음이 급했다. 맛있는 것 앞에 놓고 어쩔줄 몰라하는 어린아이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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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뻘글을 위한 변명, 어떤 식으로 글을 쓰고 활동해야 할까?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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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보니 어떤 글로 얼마나 벌어가는가 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먼저 하고 싶은 말은 글의 수준과 보상의 수준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보상과 일치하는 것은 내가 스팀파워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많은 스팀파워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많은 보상이 온다. 글의 수준과 별로 관계가 없이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글의 질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보면 나에게 많은 보팅을 해주는 사람에게 당연히 보답을 해 줄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생긴다. 담합이 아니냐고 질책을 할 수 있겠지만 막상 담합이라고 인정하기에는 좀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나에게 10정도를 보팅해주는 사람에게 나는 1정도만 보팅해 줄 수는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글의 수준 만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

예전부터 뻘글을 둘러싼 논의도 있었다. 신변잡기 비슷한 이야기를 흘려 써놓고 보상을 많이 받아 가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불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스팀잇에 대한 이해와 영역의 폭을 좀 더 넓혀보는 것이 어떤가 생각한다. 꽤 얼마전에 필자는 IT관련 업체의 성격을 크게 몇가지 범주로 나누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다음과 같이 분류를 해보았다.

첫번째는 포탈의 성격을 지니는 분야 : 네이버 다음

두번째는 SNS와 같은 성격을 지니는 분야 : 페이스북, 카톡 등

세번째는 블로그의 성격을 지니는 분야 : 티스토리, 네이버 브로그

네번째는 인터넷 상거래 분야 : 알리바바 등등

대부분의 인터넷 업체들은 위의 네가지중 어느 하나에 집중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물론 네이버와 같이 문어발 처럼 여기저기 무차별적으로 영역을 넓혀나가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네이버를 재벌로 지정한 것도 다 그런 경향 때문일 것이다.

스팀잇은 위의 어느 분야에 해당할까? 처음에는 블로그의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출발을 했다. 지금도 kr코뮤니티 이외에서는 블로그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kr코뮤니티는 여타 스팀잇의 코뮤니티와 조금 성격이 다르다. 스팀잇 동지들 상호간의 유대감이 매우 강하고 서로 잘 알고 있다. 스스로 자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활동을 하는 동지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SNS와 같은 경향도 많이 가지고 있다. 좋게 말하면 적어도 kr 코뮤니티는 블로그 + SNS가 되어 버린 것이다.

거기에다가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창의력이 좋은가? 보상을 이용해서 물건을 싸게 팔고 살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개발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kr 코뮤니티에 있어서 스팀잇이란 블로그+SNS+인터넷 상거래 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긍정적으로 이해해야 할까? 아니면 부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필자는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싶다. 스팀잇을 개발한 댄이 한말이 있다. 스팀잇의 가능성은 무한대라고 말이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필자가 보기에 스팀잇을 단순한 블로그라고만 평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스팀잇이 여러방향을 지향하다 보니 정신이 조금 복잡하다. 그러다 보니 스팀잇에 맞는 규범도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가지 실험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실험적 시도속에서 무엇인가 의미있는 것이 개발되고 만들어 질수 있기 때문이다. 댄은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할 것을 무엇일까? 다양한 시도들이 나름대로 충분하게 실험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좀 더 두고 보면서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상일은 부정적으로 보면 한없이 부정적이고 긍정적으로 보면 한없이 긍정적이다.

스팀잇에서 뻘글이라고 하는 내용들과 소위 알맹이 있는 글들간의 갈등은 스팀잇이 워낙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뻘글이라고 하는 글들의 대부분은 상호간의 소통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인간은 관계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며 살아간다. 소통을 위한 글들이 비록 가볍게 보일 지 모르나 그 가치를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서 활동하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 필자같은 경우는 소통보다는 콘텐츠를 중심으로한 글쓰기가 편한 것같다. 앞으로도 가급적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스팀잇 동지를 위해서 노력을 하고 싶다. 스팀잇의 다양한 측면 중에서 지식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스팀잇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소통을 중심으로 하는 곳에는 손이 잘 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가치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각자가 지향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소통을 중심으로 글쓰기를 할 수도 있고 누구는 전문적인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스팀잇을 할 수도 있다. 다들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각각이 지니고 있는 가치에 주목하지 않고 보상에만 주목하면 크게 성장하기 어렵다.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가급적 스팀잇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좁은 세계속에서 서로 부딪치는 것 보다 넓은 세계에서 마음껏 활보하는 것이 훨씬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간 스팀잇 kr 코뮤니티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왔다. 서로 격려하면서 나는 스팀잇을 위해 스팀잇은 나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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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스스톤의 스팀잇 이야기) 평판 70점 넘었습니다. @corn113님의 선물에 대한 답변 말미에 있습니다.

20171021

저는 컴맹이나 진배없습니다. 컴퓨터에서 항상 하던 것이외에는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저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자료를 읽는 정도에서 단 한발짝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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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암호화화폐를 알게되고 블록체인을 알게되었습니다. 비트코인도 사보고 그러다가 스팀잇의 세계에 들어왔습니다. 이제야 평판 70이라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시간은 무지하게 빠른 것 같습니다.처음에는 무엇을 써야하나 망설이기도 했습니다만 글쓰기 를 이럭저럭 15개월이나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쓴글을 찾아 보았습니다. 첫번째 포스팅이 글을 쓰겠다는 것이더군요.

https://steemkr.com/kr/@oldstone/2wd2ql
@sinsoja님께서 옛날글을 읽으시고 댓글을 달아 주셨군요. 17일전에. 블록체인 무섭습니다. 옛글을 읽어주신 신도자님께 감사를 드리며 글 함부로 쓰면 안되겠다는 것을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처음 글이라 후하게 봐주어서 그런지 보상은 1달러 조금 넘습니다. 그 이후의 글을 보니 1달러가 안되는 경우가 많았더군요. 지금처럼 보상을 많이 받은 것은 몇달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많이 받았을때는 400달러도 훌쩍 넘었습니다. 그정도만 보상 받으면 살만하겠지요. 그러나 그건 정상적인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원래 보상이란 살아가는데 조금 부족할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글을 보니 저의 관심이 이리저리 많이 왔다 갔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주로 정치와 안보에 관한 문제, 그리고 암호화 화폐와 관련된 경제문제, 스팀잇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문제처럼 크게 3가지 방향이더군요.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와 비교해보면 크게 방향이 어긋나지는 않은 듯 합니다.

1년이 넘는 기간동안 계속해서 글을 쓰게 된 것은 모두 스팀잇 덕분입니다. 스팀잇이라기 보다는 여기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스팀잇 동지들 덕분이지요. 짧다면 짧다고 할수 있겠지만 이곳 스팀잇에서 1년 넘게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쉽지 않은 듯합니다.

가장 큰 장애물은 역설적으로 경제적 보상때문인 듯 합니다. 스팀잇은 글을 써서 채굴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보상은 서로 차이가 납니다. 그런 차이는 인간의 시기심과 질투심을 초래합니다. 많은 경우 그런 문제로 그만두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보상 때문에 상궤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절대로 자신의 분수를 넘지 마라는 것입니다. 주변에 동료들과 선배들이 높은 자리에 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릇이 되지 못했던 사람들은 어김없이 문제에 봉착하더군요. 심한경우는 잡혀가기도 하고 말이지요.

스팀잇에서도 지나치게 보상을 많이 받으려고 하다가 혼이 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도 모두 자신의 그릇을 넘으려고 했기 때문인 듯 합니다. 그저 자신의 여건과 능력안에서 지속적으로 포스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팀잇에서 지속적으로 글을 쓰려면 역설적으로 보상에 너무 신경을 쓰면 안되는 것 같습니다. 보상은 내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가를 살펴보는 척도로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보상에 집착하면 즐거운 글쓰기가 고통이 되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보상도 보상이거니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스팀잇에 많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생각하다보면 한방향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들을 써서 보여주려면 여러가지를 동시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덕분에 생각도 정리가 되더군요.

지금까지 1년넘게 스팀잇에 남아 활발하게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속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팀잇을 하는데 힘든 것 참고 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겠지요. 스팀잇이 고행도 아닌데요. 똑 같은 것을 어떤 사람은 참으면서 하고 어떤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아니면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는 것은 외부의 여건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스팀잇을 통해 어떤 즐거움을 만들어 가시는지요?

저도 나이가 들어 얼마 있지 않으면 은퇴라는 것을 하게됩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하고 살까하고 걱정을 했는데 지금은 스팀잇 덕분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퇴직한 사람을 보면 제일 큰 문제가 외로움이더군요. 수필가 피천득 선생께서도 외로움이 비참하다고 하신적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심심해서 가지 않아야 할 식사자리에 가 있었을때의 비참함을 수필로 쓰신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직이야 주변에 친구도 있어서 심심함은 면할 정도가 됩니다만 어찌 알겠습니까? 삶이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 오갈데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게 인생입니다.

그런데 저는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일단 커피숍에 갈 겁니다. 거기에서 아메리카노 따듯한 것 하나 사서 이번에 거금을 주고 구입한 Mac Pro를 켤 겁니다. 그리고 스팀잇에 글을 쓸 것입니다. 요즘이야 시간이 많지 않아서 급하게 글을 쓰지만 그때는 여유있게 글을 쓸 것입니다.

꼭 만나야하는 경우라면 제가 있는 곳으로 사람을 오라고 할 생각입니다. 대학로에 있는 방통대의 커피숍이 좋습니다. 책상도 넓고 회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저혼자 열심히 스팀잇에 몰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니 제가 쓴 글을 읽어주시고 칭찬과 비판을 해주신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건이 다하면 글을 쓸 것입니다. 제글을 제아들과 딸들이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직 제아이들은 학교 공부하느라고 바쁘다고 합니다. 아르바이트 하지 말고 스팀잇에다 글을 쓰라고해도 배시시 웃으며 말을 흐리네요.

언젠가는 저희들도 제의 글을 읽어보겠지요.

블롤체인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제가 남긴 기록을 제 자식들 그리고 제자식의 자식들이 이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corn113님께서 저에게 대봉감을 보내달라고 하셨는데 이거 큰일이네요. 처음에 말씀드린 것 처럼 저는 제가 평상시 하는 것 이외의 컴퓨터 기능은 쳐다 보지 않았거든요. 보니 tip으로 계산을 하는 모양인데 저는 정신이 복잡할 듯해서 그런 기능을 아예 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어찌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것 하려면 좀더 찾아보아야 하겠군요.

경매로 물건을 사고 팔던데 그것도 정신이 복잡해서 아예 접어 버렸거든요. 제 두뇌가 한정되다 보니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하지 못합니다. 멀티 스테이킹에 취약하다는 것이지요. 전적으로 CPU 문제 입니다.

그러나 저의 평판 70 기념으로 글을 쓰는 판에 요청이 온 것을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당연히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을 양해 해주시기 바랍니다. @audre 님에게 올리는 것도 어찌하는 것인지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번 기회에 익숙해지면 가끔씩 선물도 드려야 겠군요. 이번이 저의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는 기회가 되겠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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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평화의 소녀상이 서야 할 자리는 일본 대사관과 영사관이 아니다.

201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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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위안부 문제로 온통 세상이 시끄러웠다. 시민단체들이 일본 대사관과 영사관앞에 소녀상을 세웠다. 그런 소녀상을 철거하겠다고 박근혜 정부가 일본정부와 합의를 했다. 아마도 박근혜가 탄핵을 당하게 된것도 국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합의를 마음대로 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무슨 생각에서 일본과 위안부 합의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제정신이라면 그런 합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는 뼛속까지 친일이었을까? 아니면 뭔가 원대한 정치적 구상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원대하고 대단한 정치적 구상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에는 반듯이 그 뒤에 무엇인가 있기 마련이다. 박근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슨 이유로 위안부 합의를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아마 그 이유는 한참을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평화의 소녀상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필자는 올해 초에 군산에 간 적이 있었다. 군산의 한 절에서 생각치도 못한 소녀상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의 평화의 소녀상보다 훨씬 일찍 소녀상이 만들어져서 절에 세워져 있었다. 그 절은 일제시대 일본의 절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조계종 소속의 절이 자리잡고 있다.

그 절의 앞마당에 서있는 소녀상이 있다. 그리고 일본의 불교계에서 일본의 만행을 사죄한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그래서 알게되었다. 원래는 절에 세워져 일본의 만행에 의해 희생된 소녀들의 잊지말자고 했던 것이 이제는 일본 대사관과 영사관 앞에 가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애시당초 소녀상을 일본의 대사관과 영사관앞에 세운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필자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소녀상이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청와대와 외교부 국방부 앞에 소녀상이 서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가 생긴것은 일본의 만행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를 침탈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누구인가?

가해자를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개인과 개인의 관계라면 특히 그러하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라면 그것은 조금 다르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는 가해와 피해로 나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정복과 피정복으로 구분된다.

정복은 정의롭게 여겨지고 피정복은 불명예로 여겨진다. 우리는 정복을 당했다. 힘이 없어서이다. 일본군 위안부가 생기게된 가장 일차적인 원인은 힘이없고 무능한 조선 즉 대한제국 때문이었다.

청와대와 외교부 그리고 국방부 앞마당에 소녀상이 세워져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 해야한다. 너희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너네들이 정신 못 차리면 다시 우리 소녀들이 똑 같은 고통을 당해야 한다고.

어떤 사안을 보고 어떤 입장을 취할 것 인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탓해야 한다. 어릴때 내가 잘못된 것을 남의 탓으로만 여겨서는 안된다고 배웠다. 과연 우리는 나의 잘못을 되돌아 보고 있는가?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힘과 힘의 역학관계만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뻔뻔한 행동과 독일의 도덕적인 행동을 비교한다. 브란트 수상이 유대인 희생자 기념비에 무릎을 꿇은 것을 보고 독일은 그래도 양심이 있는 나라이고 일본은 거기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 완전한 착각이다. 독일이 진짜 반성해서 그런 행동을 할까? 독일이 그런 행동과 입장을 취한 것은 진정으로 반성해서가 아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 뒤에 있는 미국이 무서워서이다. 힘이 작동하지 않으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독일인들이 그렇게 양심적이라면 히틀러가 유대인을 600만명이나 학살할 동안 왜 아무말도 하지 않았을까? 전쟁에 지고나서 독일이 갑자기 양심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시는가? 양심이 그렇게 빨리 변하는가? 그들은 힘의 역학관계에 굴복했을 뿐이다. 만일 그렇게 양심이 빨리 변한다면 독일인들은 상황만 바뀌면 언제든지 다시 히틀러의 악귀가 될 수 있다.

일본이 독일과 같은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은 힘의 역학관계에서 자신들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대해 자신들이 행한 잘못을 사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만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것이 아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필리핀, 버마 등지에서도 일본은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지금과 같이 뻔뻔한 태도를 지속하는 것은 우리가 겪은 피해가 도덕적 윤리적 기준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당사자가 힘이 있어야 한다. 만일 우리의 국력이 일본을 추월한다면 일본은 우리가 그만하라고해도 머리를 조아리고 석고대죄할 것이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사죄를 받는 가장 빠른 길은 일본보다 힘이 세지는 것이다. 그것보다 앞서서 해야하는 것은 우리 국가기관이 제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청와대가 국정원하고 짜서 정치 공작이나 하고 영혼없는 외교부가 일본과 협상 도장 찍어대는 상황, 방산비리가 판치는 상황에서는 일본 대사관이나 영사관앞에 소녀상 1개 아니라 천개 만개를 세워도 아무 소용없다.

그래서 필자는 제의한다. 청와대, 외교부, 국방부 앞에다 소녀상을 세우자.
제발 제정신 좀 차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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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극단의 시대와 중간에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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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극단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인간이란 원래 극단의 선택을 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 같다. 창세기에서도 인간은 선과 악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되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상태는 허용되지 않았다. 과연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상태는 없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것은 인간에게 용납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서구사회에서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존재는 악보다 더 한 악으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좀비가 바로 그런 존재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존재가 좀비다. 좀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사회에서 좀비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 공포영화를 만드는 것은 기존에 악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 공포스러운 존재가 바로 좀비이기 때문 아닐까?

왜 좀비를 악마보다 더 공포스럽도록 느끼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좀비가 이도 저도 아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지 죽어있는지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인간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인간은 기존의 것을 선택하는 것이 편하게 느끼게 된다.

역사를 보면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극단의 선택이 파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집단화된 인간은 극단의 편에 선다. 그리고 서로 싸운다. 전쟁은 바로 그런 결과이다. 프랑스 혁명을 보라. 어떻게 되었는가? 극단은 결국 반동을 불렀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수없이 많은 정치적 사회적 문제의 대부분도 서로 극단의 형태를 띤다. 모든 문제가 옳거나 아니면 틀리거나로 귀결된다.

일전에 필자가 박근혜의 재구속 결정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필자가 그 당시에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은 박근혜와 그의 일파들이 재구속 결정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댓글에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가 구치소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든지 또는 친박들이 하는 짓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재구속이 당연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필자는 그런 이야기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짓은 메스껍다. 그러나 기분나쁘고 메스껍더라도 좀 더 멀리보고 그들의 술수에 말려들지 않도록 해야한다.

모두 정의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이다. 정의의 구현에는 현실이라는 방해물이 있다. 그 방해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정의는 더 멀리 가버리고 만다.

중간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 극단의 선택을 하면 한쪽으로부터 욕먹으면 된다. 그러나 중간의 길을 선택하면 양쪽으로부터 모두 욕을 먹게 된다.

회색주의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역사에서도 중간주의자들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 역사는 그들의 길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선명한 이념의 편에 섰던 사람은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당연히 극단의 편에 서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정치인들은 극단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추미애가 머리가 나빠서 상대방의 속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추미애는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극단주의자들은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나 정치를 좀먹는다. 역사적으로 한번보라. 한쪽에 치우친 선택을 해서 잘된적이 있는지?

중간의 길을 가는 것은 어렵다. 오죽하면 중용이라는 책도 있을까? 중간을 선택하는 것이 쉽다면 중용이라는 책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용을 선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간혹 중용을 흐리멍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중용은 결단력이 없고 우유부단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 냉철한 이성적 판단으로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여 최상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가려내는 것이 중용이다. 그리고 그것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용은 또다른 극단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참아내야 하는 것이 중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것이 아니라 인기없는 길을 가야하는 것이 중용의 길이다.

우리의 정치가 발전하고 사회가 발전하려면 극단의 편에 몰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리의 끝이 아니라 현실의 끝을 바라보는 지혜가 중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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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가 용납이 안되네요

글을 잘못 올렸습니다. @slowwalker에 올릴 포스팅을 @oldstone 에 올렸습니다.

그래서 @oldstone에 다시 글을 쓰고 다시 포스팅했더니 글이 날아가버립니다.

황당합니다. 두번이나 날아가서 더 쓸 여력이 없습니다.

그냥 두면 봇들이 와서 보팅을 합니다. 그래서 그냥 둘수도 없습니다.

오늘 올리려다 실패한 사진을 다시 올리겠습니다.

논산 쌍계사입니다. 너무 멋있는 곳입니다.

IMG_665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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