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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9

올 한해 스팀잇 kr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는 일이라는 것이 모두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좋지 않은 일도 있기 마련입니다. 또 안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법이지요.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다보면 언젠가 웃으면서 오늘을 추억할 때가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스팀잇 분위기가 많이 조용해진 것 같습니다. 조용하면 조용한대로 활발하면 활발한대로 다 의미가 있지요.
그동안 활발한 측면도 있었으니 당분한 조용한 모드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조정이 필요하니까요.
뭐든지 다 좋게만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렇습니다. 나쁘고 비관적으로 생각해서 좋을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부정적으로 비관적으로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건강에 좋은 듯 합니다.
저는 차분하고 조용한 것을 소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분하고 조용한 가운데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것이 훨씬 적극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제가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경연대회를 제안해 볼까 합니다.
스팀잇 동지들 여러분들께서 책들을 좋아 하시더군요. 저도 책읽는 것을 좋아 합니다. 간혹 독후감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저도 한번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연말을 기해 차분하게 독서를 하는 기회를 한번씩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책이든지 독서를 하시고 독후감을 올려주시면 우수작을 선정해서 상금을 드리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굳이 독후감이 아니더라도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나 책을 소개하는 글도 좋습니다.
총 상금은 100 스달입니다.
1등은 50스달
2등은 30스달
3등은 2분 10스달씩 입니다.
독후감 제출기간은 지금부터 1주일입니다. 그러니까 11월 26일까지가 되겠지요.
카테고리는 kr-contest 들 달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올려주시는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최대한 보팅을 하겠습니다. 보팅파워 회복시켜야 겠군요.
26일이후 며칠간 평가를 거쳐 당선작을 발표 하겠습니다.
평가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평가하는 것은 좀 그렇고요.
일전에 육아소감문 대회 열어놓고 평가는 @sochul님에게 미루었던
@happyworkingmom님에게 평가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해피워킹망님께서는 남에게 일을 시키신 이력이 있으니 평가위원장 지명을 수락하시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수필이나 여행기등에 대한 대회를 주기적으로 열면 어떨까 합니다.
혹시 압니까? 잘된 글들 모아서 출판할 수 있을지도.
다들 글을 잘쓰셔서 충분히 가능할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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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8

불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마음하나 붙잡는 것이 수양이고 구도이다. 삼보일배하면서 평생을 떠도는 것도 자기마음 하나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그만큼 어려운 것 같다.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도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마지막 목표인 듯 하다. 특히 성리학에 들어와서는 모든 것이 마음이란 것으로 촛점이 맞추어지는 것 같다. 성리학이라는 것 자체가 불교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니 당연할 것이다.
성삼문이 단종복위를 꾀하다가 발각이 되어 문초를 당했을때 일이다. 성삼문 앞에서 아버지를 쳐죽였다. 그래도 성삼문은 눈썹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러자 돌도 안된 아이를 절구에 넣고 쳐 죽였다. 성삼문은 대성통곡을 했다.
세조가 힐문을 했다. 지애비 죽을때는 눈썹하나 깜짝않다가 제자식 죽으니 슬피우는 것을 보니 너는 효도를 모르는 짐승같은 놈이다라고 말이다. 성삼문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애비는 자기가 의로운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을 아니 무엇이 안타깝겠는가? 그러나 아이는 자기가 왜 죽는 것도 모르고 죽으니 그것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라고 말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름도 희미해지고 있지만 조지훈은 이시대의 마지막 유학자였다. 그가 천주교 주교이던 사람과 같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라서 신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손톱밑에 가시가 있어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조지훈은 인간은 마음먹기 따라 달라진다. 인간의 의지는 강철같을 수도 있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손등에 성냥불을 그어서 올려놓았다.
성냥불은 동탁의 손등위에서 타고 있었다. 나무로된 성냥이 동탁의 손등에 있는 기름까지 녹이면서 지글지글타고 있었다. 그런데 동탁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주교라는 양반하고 술을 마셨다. 인간의 의지는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동탁의 왼손등에 퍼런 상처는 그때 생겼다고 한다.
인간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성인이 될 수도 있고 악인이 될 수도 있다. 성인이 되고 악인이 되는 것도 종이 한 장 차이다. 어떤 사람은 평생 잘 살다가 한번에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은 평생 개같이 살다가 마지막에 한번 잘살고 가는 수도 있다.
정말 어려운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관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너무 한꺼번에 뜨겁게 달아 오르면 급하게 식어갈 수도 있다. 평생동안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지켜온 사람은 본적이 있다. 그사람은 힘들게 살았지만 결코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지 않았고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았다. 지조를 굽히고 이익을 위해 신념을 팔았던 사람들은 잘먹고 잘 살았다. 올바르게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은 제대로 대우을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만년을 보내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나는 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하루살이 같이 신념을 이리저리 옮긴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마지막까지 정의에 헌신했던 사람에 의해서 유지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제대로 된 사회나 국가는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고 대우를 해주어야 하는 사람인지를 잘 구분한다. 아직 우리나라는 그 사람의 삶의 내용을 보기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었고 지위에 있었는가에 따라 대우한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잠재적 범죄자 임에도 말이다.
어제 평생을 헌신과 봉사와 애국으로 살았던 분의 장례에 다녀왔다. 난 직업의 성격상 많은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는 기회가 있었다. 세상에 알려진 훌륭하다고하는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교활하고 이기적이며 기회주의적인지 많이 보아왔다.
우연한 기회로 알게되었지만 단연코 그런 분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목수가 먹줄을 튀기면 처음부터 끝까지 똑바로 선이 그어진다. 그분은 삶을 그렇게 살았다. 그런 분이 쓸쓸하게 이승을 하직했다. 그분이 돌아가신 것이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더 마음이 아픈 것은 마땅이 받아야 할 예우와 존경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이런 사회와 국가가 존재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내평생 처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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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7

어릴때 어머니로 부터 들은 말이 있다. 친구사귈때 너아니면 죽는다는 식으로 하지 말아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군자지교담여수
소인지교감여밀이라는 것이다.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맛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꿀과같다는 의미다.
소인들은 친구사귈때 죽고 못산다. 조금만 보지 못하면 가슴이 아리고 보고싶다. 부모형제보다 친구가 좋다. 그런데 꿀은 맛이 좋아도 항상 먹을 수 없다. 질린다.
그 좋은 친구도 조금있으면 질려서 싫어한다. 그래서 조금 있다가 서로 헤어진다. 처음에는 장점만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장점은 온데간데 없고 단점만 보인다. 그 친구가 하는 꼬락서니가 싫어진다. 그리고 다시는 안본다고 헤어진다.
군자들은 친구를 사귈때 소가 닭보듯이 한다. 주변에서 보면 그사람들 친구 맞아 그런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시간이 되거나 여건이 되면 만난다. 떨어져 있어도 마음속에는 남아 있다. 오랫만에 만나도 무지하게 반갑게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늘상 마음에 있었던 사람이라 얼굴을 본다고 해서 반갑다고 호들갑 떨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릴때부터 어머니로부터 그런 말씀을 많이 들었다. 너도 친구사귀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항상 그런 일을 경계하라고 하셨다.
살다보니 어머니 말씀처럼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무척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아무것도 아닌 이익앞에서 헌신짝 처럼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정말 어려울때 별로 친하지도 않게 지냈던 친구가 나도 모르게 도와주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일이란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앞에서 친한 척 한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너무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자 하면 상처가 남는다.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국 고독한 존재다.
비극의 탄생은 고독함을 숙명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을때 이다. 아무리 친한척 했던 사람도 얼마되지 않은 이익앞에서 언제 보았냐는 듯이 획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많은 것이 아니라 부지기수이다. 명예와 이상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 수이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나도 그렇게 했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밥을 먹어야 하고 식구들 건사도 해야한다.
전쟁터에서 생명을 바친 영웅은 있어도 삶의 긴 질곡을 건너오면서 지조와 의리를 지키기는 쉽지않다. 그래서 삶은 잔인한 것이다.
SNS에서도 서로 죽고 못사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아마도 실제의 삶이 팍팍하기 때문에 SNS에서라도 위안을 받아 보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도를 넘어가면 SNS에서도 상처를 받는다.
서로 보지 않기 때문에 상처가 크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 만나서 얼굴보고 싸우는 것 보다 훨씬 더 큰 아프다.
너무 친하려고 하지말고 너무 미워하려고 하지말고 그냥 그럭저럭 지나는 것이 좋은 듯하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사람인지 다 알게된다. 이상한 것은 얼굴을 보지 않고 말도 나누지 않지만 글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인지를 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 신기하다.
최근 kr 코뮤니티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런 일이 생기게 된 이유는 이익이었다. 보팅으로 생기는 소소한 이익이다. 사람은 모두 이익에 혹할 수 밖에 없다. 스팀잇 자체가 그런 유혹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것이니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익도 작은 이익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작은 이익보다는 조금 더 큰 이익을 보면서 서로 다독여가면 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회관계네트워크는 서로간의 관계를 강화시켜주는 것이 목적인데 그렇지 못하고 얼마되지 않는 보상가지고 서로 싸우기만 하면 그 존재이유자체를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그만 이익가지고 죽을 듯이 싸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러려면 kr 코뮤니티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하고 싶은 말도 조금씩 수위를 조절했으면 좋겠다.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 밥그릇 깨는 법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기분나쁘다고 자기밥그릇 깨면 나중에 굶어 죽는다.
장담컨데 수익률이 좋아지면 죽을 듯이 욕하고 싸우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죽고 못살 것처럼 형님 아우할 것이다.
그럴때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내가 군자일까 소인일까?
군자와 소인도 결국은 자질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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