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 한국전쟁과 문학에 대한 토론에 참가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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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는 오랫동안 담을 쌓고 살았다. 어릴때 소설가를 지망하기는 했지만 내 삶이 거기로부터 멀어지면서 문학은 남의 일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보통사람들 보다 문학을 더 멀리하고 지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이 일반적인데 난 반대였던 것이다. 우연히 어떤 대학에서 주관하는 연구에 토론자로 참가해달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주제가 전쟁과 문학에 관한 것이다.

원래의 주제는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의 경험이 동시에 하나의 문학작품에 투영된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을 지목하면서 그런 작품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작가로는 백철과 선우휘, 하근찬이 다루어졌다.

세상 모든 일은 관계로 이루어진다. 거부할 수 없는 관계가 많은 법이다. 내 전공이 아닌 분야에 토론으로 나서야 했다. 문학작품에 대한 분석으로 토론을 할 수는 없는 법이라 고민의 출발점이 된 전쟁문제에 대한 필자의 소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래는 필자가 토론문으로 제시한 내용의 일부분이다. 여기에라도 올리지 않으면 늘 그렇듯이 또 사라질 것 같다.

하루만에 수십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읽고 토론문을 작성해달라고 해서 급하게 썼다. 그래서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내용도 있다.

토론은 어제밤에 끝났다. 읽어보시고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을 달아 주셔도 감사하겠다.
토론문 내용중 일부를 올린다.


한국문학에서 전쟁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특수한 현상이다. 전쟁을 치루었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전쟁문학이 발전했다. 패전을 한 국가나 승전을 한 사회 모두 전쟁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문학적 접근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전쟁문학이 제대로 나타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토론자는 한국인들이 겪은 전쟁이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타자로서 강요된 전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가 겪은 전쟁은 자기가 주인이 되는 전쟁이 아니었다. 한국인들은 식민지 시대의 태평양 전쟁에서나 해방이후의 한국전쟁에서나 주인으로 전쟁을 치르지 못했다.

전투현장에 참여했지만 그들에게 전쟁은 강요된 고통이었으며 한국민은 전쟁의 주역이 아닌 길가다 건물위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은 행인에 불과했다.

전쟁은 개인적 삶의 방식과 태도 뿐만 아니라 집단적 삶의 방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이 격은 태평양 전쟁의 경험은 개인적 삶의 영역에 머무르고 말았다.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이미 한국민으로서가 아니라 일본인의 정체성을 가질 것이므로 그들의 경험이 한국문학에 들어올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전쟁 참여를 거부하고 회피한 사람들의 경험도 개인적 차원에서 머무르고 말았다.

전쟁은 집단적 기억이다. 집단적 기억이 파편화되었을 때 과연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문학이 삶의 개별적인 영역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집단화될 수 없는 기억앞에서는 그 역할이 제한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계전쟁사 통 털어 가장 밀도높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한국전쟁조차 한국의 국민은 주인이 아니었다. 전쟁의 결정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한국민에게 전쟁이란 전쟁이 아닌 난리에 불과했다.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난리였다.

한국전쟁 자체는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통상 내전이자 국제전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한다. 내전이라고 규정할 경우는 당연히 내부자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내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에도 불구하고 내부자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내전자체도 외부에 의해 강요되었던 것이다. 내전의 형식을 빈 국제적인 대리전쟁이 한국전쟁이었다.

한국민들에게는 태평양 전쟁이나 한국전쟁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전쟁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회고하고 돌이켜 반성할 수 있는 기회는 아예 없었다. 한국전쟁을 국제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은 소련과 미국의 대리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괴뢰라고 부르는 것은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 모두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북한과 남한 모두 소련과 미국의 입장을 대리했다는 점에서 서로 윤리적 도덕적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전후의 한반도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할 것없이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남북한 모두 전쟁 정당성의 근거를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따지는 것에서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남과 북 모두 전쟁전보다 전쟁이후 더 강력한 동원체제를 갖추었다. 이데올로기는 가장 중요한 동원의 대상이었다. 전쟁을 문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아예 주어지지 않았다. 문학에서의 한국전쟁은 허용된 이데올로기의 틀 내에서 다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의 전쟁은 국가이데올로기의 해석 대상이었지 문학의 대상이 되기 어려웠다.

동원 체제하에서 남한 문학은 북한의 전체주의를 비틀거나 남한 내에서 허용된 내부비판과 해석의 여지에 적응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그리고 휴전이후의 국가 동원 이데올로기체제는 한국전쟁을 문학의 품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한국전쟁을 넘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관하는 문학의 부재는 다름아닌 전쟁이 경험이 타자화되어 집단화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발표와 토론이후 여러가지 이야기가 오갔다. 끝나면 항상 뒤풀이를 한다. 고기에 술을 먹고 집에 들어왔다. 내일 모레 군대갈 아들은 집떠날 시간이 48시간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뭘하고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아들놈 군대가는데 난 고담준론하고 있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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