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정을 보고



시내 산책을 하다. 충무로에서 영화를 보았다. 밀정. 개봉할 때 부터 보려했는데 늦어 버렸다. 토요일 오후의 서울시내 한복판은 한산하다. 을지로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햇살이 고즈넉하기까지하다.
혼자 영화보기는 오랫만이다. 예전엔 혼자 영화 보는 것이 쑥스럽더니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나이가 든 건가? 송강호는 정말 연기 잘 한다. 우리나라 배우들 수준이 매우 높은 것 같다. 미국 배우들보다 잘하는 것 같다.

영화 포스터에 쓰인 말 적은 늘 우리 안에 있었다 가 아프게 다가 왔다. 난 적은 늘 내안에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생은 그 선택으로 평가 받는다. 그것이 친일이든 머든. 인간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그 가능성을 실재로 만드는 것은 그 자신이다. 그런데 올바른 선택을 방해하는 것도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게 할까? 아마도 욕심이 아닐까? 그것이 인간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한참전에 devil’ s advocate 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났다. 인권변호사가 욕망에 취해 자신의 삶을 망치는 내용이다. 모든 인간이 다 그렇지 않을까.
왜 그들은 친일파로 살았을까. 그리고 일제 경찰의 정보원이 되었을까? 간도특설대라는 것이 그런 간첩을 만드는 것이었고 한다. 백선엽이 생각났다. 그는 그 영화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리고 자신을 위해 무슨 변명을 할까?

전번 포스팅에 친일문제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는 죽은 친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친일을 타도 해야할 것이다. 난 이완용보다 백선엽이 더 나쁜 인간이라 생각한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 먹었더도 노예의 평화라는 변명이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선엽에게는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역사는 더 나쁜 악이 승리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인간들이여 악마가 되어라. 그러면 너희는 창궐할 것이다. 밀정의 하시모토에게서 백선엽을 보았다. 하시모토는 죽었어도 백은 살아 있다.

송강호는 번민하는 인간이다. 어찌해서 친일부역자가 되어 개 노릇을 했으나 인간적 번민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다. 물론 현실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영화를 통해 그런 삶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것이 좋았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 영화의 카타르시스는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 수 없을 것을 가능하게 만들 때 비로소 완성된다. 현실에서 송강호같이 될 확률은 희박하다. 인간은 여간해서는 만들어진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밀정을 보며 오늘날 우리의 삶을 반추해본다. 그들은 왜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을까? 그들은 일제의 앞잡이가 아니라 자기안에 있는 욕망의 앞잡이가 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욕망의 한가운데서 흐느적거리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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