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다시 새벽이 올것인가.

유럽이 세계사에서 뒤처진 이유는 한마디로 명확하다. 자신들이 만든 가치를 자신의 대륙에 적용할 수 없게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유럽이 몰락한 것은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유럽을 유럽이게끔 만들어 나가는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다. 근세이래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면서 유럽이 만들어온 가치관들이 지금의 세계에서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럽적 가치관이라는 것은 프랑스 혁명의 구호였던 자유 평등 박애라는 말속에 함축적으로 녹아있다.

유럽의 어떤 나라든 19세기의 혁명에서 태동한 가치에 영향을 받았다. 그것은 동유럽과 서유럽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유럽의 변방에 위치하여 자신이 유럽인지 아시아인지 구분하기 힘들어 하는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 혁명은 결국 프랑스 혁명의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적자인지 사생아닌지는 논외의 문제로 하더라도 말이다.

유럽의 비극은 유럽이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를 전세계에 동일하게 작동할 수 있는 가치로 보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유럽적 가치관이 만들어진 과정을 자세하게 살펴보자. 먼저 유럽이라는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들 수 있다. 라틴과 게르만 그리고 켈트족으로 구성된 유럽의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기독교 문명이 있었다. 그리고 산업혁명에 이은 부르주아의 문화가 더 해졌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단순한 세단어는 그냥 개념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이 농축된 역사적 단어이다.

유럽은 자신에 차 있었다. 제국주의 시대를 통해 세계를 통해 유럽적 가치를 전세계에 적용가능하다고 보았다. 그것은 우월의식이었다. 그점에서 미국도 유럽과 동일한 선상에 있다고 할 것이다.

유럽적 가치관의 적용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유럽에 무슬림들이 들어오면서 부터였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유럽적 가치관에 잘 적응했다. 그들은 유럽의 정체성에 혼돈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의 정신적 지향을 수용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무슬림인들이 유입하면서 부터였다. 유럽인들은 중동의 무슬림에게도 자신들의 가치관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관용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무슬림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인들과 달랐다. 그들은 자유 평등 박애를 수용하기 어려운 가치관의 소유자들이었다.

소수자들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던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은 처음부터 무슬림 차별을 반대했다. 인구감소로 곤란을 겪던 유럽의 각국들은 흔쾌히 무슬림들을 받아 들였다. 당연히 그들이 유럽적 가치관 속에 용해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자신들만의 가치관과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자유 평등 박애라는 것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유럽은 유럽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실패했다. IS가 유럽을 중심으로 추종세력을 확대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원래의 유럽인들 조차도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에 된 것이다. 일종의 아노미적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무슬림중 유럽적 가치관에 통합된 일부를 제외한 많은 수의 무슬림은 껍질은 유럽적이지만 내용은 무슬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은 하나의 유럽속에 유럽과 중동이 혼재하고 있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이제 유럽의 문제는 이런 상항에서 어떻게 정체성을 확보하는가 이다. 과거의 가치관으로는 지금의 유럽을 통합시킬 수 없다. 무슬림은 어떠한 유럽적 가치관으로도 통합되기 어렵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에 사는 무슬림들이 극단주의자가 된다고? 그것은 상황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유럽에서 사회주의가 더 이상 희망이 되지 못한 것은 지금의 상황이 사회주의가 발생하고 꽃이 피웠던 시기와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럽에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념도 부재하다는 것이다.

프랑스에 극단주의가 발생한 것은 바로 그런 연유이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한 것도 다 그런연유이다. 경제적인 문제로 난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한 것이 아니다. 영국은 가장 민감하게 통합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고 이를 막기 위해 EU를 탈퇴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프랑스는 심각한 문제를 느끼고 있으면서도 지나친 조치를 하지 못했을 뿐이다. 마크롱으로 프랑스가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유럽이 어떤 상황으로 빠져들어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유럽의 어려움은 점차 가중될 것이다. 르펜이 당선되지 않아 EU에서 탈퇴하지 않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결국 프랑스도 EU에서 탈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프랑스는 기독교 문명과 무슬림 문명이 충돌하는 한가운데 있다.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을 이야기 했지만 그 충돌은 그가 말한 것처럼 국경이 아니라 유럽의 한가운데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미래는 어둡다. 그러나 골이 깊으면 산도 높은 법이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문제이지만 유럽은 어떤 방식으로는 해법을 찾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 유럽은 세계사의 주역으로 다시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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