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봉정사 극락전 앞에서

얼마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은 부석사 무량수전이라고 했다. 그런데 봉정사 극락전을 수리하면서 그 순서가 바뀌었다. 봉정사 극락전이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더 오래된 건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사실 부석사 무량수전이 유명했던 것은 그 유려한 흐름의 배흘림 기둥도 있지만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는 것 때문인 측면도 없지 않다 할 것이다.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밝혀진 다음에는 극락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나도 극락전 앞에 섰다.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감상하기 위해서 말이다. 습관처럼 찾아보는 초석은 그야말로 고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아주 잘 다듬어지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상당한 노력으로 다듬은 흔적이 느껴진다. 주심포 기둥위의 공포들은 고려 중기이전의 목조건물이라는 특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극락전앞에 서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건물이 뭔지 모르게 다른 것 같았다. 극락전을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전면의 문과 양쪽의 창이었다. 다른 불교 사찰과 달리 매우 특색있는 문의 구성이었다. 사람들은 가운데로 드나들게 되어있다. 문이 하나밖에 없으니 스님들이 들어가는 문이나 신자들이 들어가는 문의 구분이 없었다. 원래 불교 전각은 스님들이 들어가는 문과 일반 신자들이 들어가는 문의 구분이 엄격하다. 불교에 있어서 스님은 삼보의 하나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런 구분은 명확하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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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봉정사 극락전에는 그런 구분이 없었다. 간혹 어쩌다 그런 구분이 없는 전각이 있기도 하지만 매우 예외적이었다. 그런데 극락전은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가는 입구를 하나만 만들어 놓았다. 무슨 의미일까 ?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 혼자서 이리저리 답없는 답을 찾아 보았다. 그리고서는 혼자 그럴 듯한 답안을 만들었다. 중이나 속인이나 극락에 들어가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것 아닐까 ? 나는 그것을 승려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중이라고 다 극락가는 것 아니니 지금 이순간을 똑 바로 살아라 하는 것 말이다. 물론 그런 추측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주관적이어서 공감하지 않는 분도 많으시리라. 그러나 그러면 어떠랴.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전면의 문과 함께 양측 벽면에 나 있는 창문도 아주 특징적이다. 양쪽에 같은 크기로 세로로 창살이 있는 창문이 있다. 가운데의 출입구와 더불어 아주 멋있는 모습을 형성하고 있다. 대칭의 창문은 단아하면서도 강력한 인상을 풍긴다.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단순함의 힘이다. 그 창문은 마치 나를 바라보는 눈과 같은 느낌도 든다. 원래 강력한 힘은 단순함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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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정작 극락전에 와서는 잠시 둘러보고 자리를 뜬다. 제일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하는데 뭐 특별한 것이 없다는 인상 같다. 난 극락전의 문과 창문의 구성에 매우 감명을 받았다. 다시 가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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