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선암사의 산신각과 삼성각

우리나라 불교 전각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이 바로 삼성각이다. 흔히들 불교가 토착화되면서 기존의 토촉신앙을 포용한 것이라고 한다. 불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올때는 반대가 매우 심했다. 그래서 이차돈이 순교까지 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그때부터 불교는 토착신앙을 수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삼성각에는 가운데 부처님 상, 왼쪽에 산신상, 오른쪽에 독성상이 있다. 여기서 산신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신앙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무당은 산신을 모시고 있다. 무당집에 가면 깃발이 달려있는데 거기에 노락색이 산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산신은 전통적인 샤머니즘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독성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양하다. 독성은 단군이라는 말도 있고 나반 존자라는 말도 있다. 오른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것을 보면 도교적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교라기 보다는 선도라고 하는 말이 옳을 듯 하다. 중국의 도교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선도적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혹자들은 신라의 화랑을 선도적 전통의 하나라고 보기도 한다. 중국적 도교와 우리의 선도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국선도가 우리의 선도적 수양의 한방법이라고 한다. 우리의 선도는 그 출발점이 단군신앙과 연결된다.

절마다 삼성각을 두는 경우도 있고 산신각을 두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통상 산신각이 있으면 삼성각을 별도로 두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선암사의 경우는 삼성각이 있고 또 산신각이 따로 있다. 그런데 산신각이 묘하게 생겼다. 미륵전 뒤로 돌아가면 회랑으로 연결된 조그만 전각이 있다. 엄연히 독립적인 전각이다. 그 안에 산신그림이 모셔져 있다. 물론 너무 작아서 사람이 들어갈 수는 없다. 그냥 문을 열고 참배만 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절도 그 앞에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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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삼성각이나 산신각은 그 절에서 제일 높은 곳에 둔다. 삼성각이 절을 지켜준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선암사의 산신각은 미륵전 뒤의 회랑을 따라 뒤에 연결되어 있다. 위치도 높은 곳이 아니다. 오히려 삼성각은 비교적 높은 곳에 있다.

선암사의 산신각은 매우 독특한 형태임은 틀림이 없다. 아주 작은 크기였다.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썼다는 인각사의 산신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크기와 방식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로하여금 그 작은 크기가 뭔지 알 수 없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각사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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