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살며 사랑하며) 품속의 아들과 마지막 여행

20171114

사춘기 아들을 무척 힘든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격랑의 시기를 겪는 아들과 사사건건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더니 신기하게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아들이 부드러워졌습니다. 평생 저를 보지도 않을 것 같던 아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누구와도 대화 잘하고 소통을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내가 겪는 모든 문제는 남이 아니라 자기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남들이 정말 견디기 힘든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들이었습니다.

저에게 반기를 든 유일한 사람이 아들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아들이 중2병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동안 아들 주변을 멤돌면서 느낀 것은 아들 때문이 아니라 문제는 저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집세고 아집에 잡혀 있으며 관용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옹졸한 사내였던 것입니다.

아들은 그런 저를 참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저에게 반기를 들고 혁명을 시도한 것입니다. 저는 아들의 봉기에 패배했습니다.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탄핵당해 권력을 완전히 상실한 그녀와 같은 신세가 된 기분도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완전히 반성을 해서 새로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저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그냥 아들 놈이 있는 대로의 저를 받아 들여준 것이지요.

이번에 아들과 5일간 여행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해 여름에 같이 자전가 타고 춘천을 다녀온 이후 두번째 입니다. 그때는 제가 지쳐서 죽을 뻔 했습니다. 저도 운동선수 출신이라 힘에는 누구에게 떨어지지 않는데 젊은 놈은 따라갈 수 없더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뭔가 서먹서먹한 기운이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이번 제주여행은 정말 서로 친하게 다녀왔습니다. 말다툼도 한번 하지 않았고 서로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아들놈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아들놈도 이번 여행하면서 한번도 자기 주장을 하지 않더군요. 아들놈은 아마 아빠하자는 대로 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5일간 많은 곳을 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었습니다. 아들과 같이 있는 순간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언제 이렇게 여행을 같이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가면 아들은 점점 더 바빠질 것입니다. 직장이라도 다닐라 치면 지금처럼 애비랑 여행한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 되겠지요.

가만 보니 제가 제주를 처음 온 것이 제 아들놈 나이 때였습니다. 그 때만해도 제주는 시골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이후 두어번 제주를 왔습니다. 마지막에 온 것이 꼭 30년 전이었습니다.

아들놈은 어릴때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더군요. 아들놈은 매사에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특히 물고기나 조개나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참동안 해변가에서 고개를 박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새우와 게를 찾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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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의 어릴 때 모습도 떠 올렸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 부산에 있는 작은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의 광안리 해변은 아무것도 없는 한가한 시골 해변이었습니다. 집에서 슬리퍼 신고 조금만 가면 해변이었습니다. 아침에 나가서 놀다가 점심에 와서 밥먹고 다시 나가서 놀다가 들어와 밥먹고 저녁에 뻗었습니다. 방학내내 작은집에서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바닷가에서 물고기나 조개 같은 것을 주어왔습니다. 세수대야에 놓고 한참을 보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들놈이 해변가에서 고개를 처박고 뭔가를 찾는 것을 보면서 저는 제가 어릴때 생각을 했습니다. 제 자식놈은 하는 짓도 저를 닮았더군요.

이제 군대에 갔다가 오면 성인이 되겠지요. 제 품의 어린 아들과 안녕을 고할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 아들놈은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품 속의 아들과 마지막 여행을 한 듯 합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니 마음에 한결 편합니다.

다음에 여행을 하면 저는 정말 아들 놈을 따라 다니게 될 것입니다. 언제쯤이나 제 품을 떠난 아들과 여행을 하게 될까요. 삶은 저로부터 자식에게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때가 기다려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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