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한번 보고 쓱 지나갔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요즘은 많이 느끼는 여행을 하게 됩니다. 제가 특별히 공부를 해서 아는 것은 없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볼 수 있는 전문가적 식견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만사 제쳐 두고 공부를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책으로 보고 남이 해놓은 해석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도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언젠가인지 모르게 여행을 가면 제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번 포스팅에서 소개해 드린 소쇄원의 담과 같은 것 말입니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그런 느낌을 조금씩 가지게 되었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의 해석과 느낌에 동의하실 수도 있고 다르게 보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느낌과 감정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의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과 생각을 간혹 한번씩 내어 놓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의 해석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송광사에서 제가 느낀 점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송광사는 승보사찰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3보 사찰이 있다고 하지요. 불보사찰인 통도사, 법보사찰인 해인사, 승보사찰인 송광사가 3보 사찰입니다. 송광사는 고려시대 이후 고승들을 많이 배출해서 승보사찰이라고 합니다.
송광사에 간 것은 비오는 어느날이었습니다. 조계산 입구에 서 있는 거대한 일주문을 통과해서 차를 타고 한참을 올라갔습니다. 입구에서 동행들과 간단하게 산채비빔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천을 따라 오른 쪽에 난 길로 한참을 지났습니다. 마침내 불이문에 도달했습니다.
불이문을 지나니 오른쪽에 세월각과 척주당이라는 조그만 집이 있었습니다. 가까이가서 읽어보니 사람이 죽고나서 시신을 깨끗하게 닦아주는 곳이라고 하는 군요. 세월각은 여자들, 척주당은 남자들의 시신을 씻는 곳이라고 합니다. 세월각이라는 것은 달을 씻는 집이라는 뜻 입니다. 여성의 몸을 달에 비유한 것입니다. 멋있는 비유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척주당이란 구슬을 씻는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곳이 세월각과 척주당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세월당과 척주각은 한칸도 채 안되는 크기의 집입니다. 죽은 자에게는 그렇게 넓은 공간은 필요없겠지요. 아무리 권세가 있고 지체가 높다고 해도 결국 죽음앞에는 모두 차이가 없습니다. 결국 누구라도 저기에 누워야 하는 것이지요.
제가 절을 구경다니면서 다른 곳에서 세월당과 척주각 같은 곳을 본 적은 없는 듯 합니다. 인간의 지적인 기능이라는 것이 결국은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여행을 다녀보면 무엇이 같은지 무엇이 다른지를 살펴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많이 다녀 보지 않아서 그런가요 ? 죽은자의 몸을 씻어주는 곳이 있는 절을 본적은 없었습니다.
왜 세월당과 척주당을 절의 본건물 앞에 놓았을까요 ? 저는 그렇게 설계한 사람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불이문을 지나 세월각과 척주당을 지나면 바로 앞에 개천이 흐릅니다. 그 개천을 넘어서 비로소 송광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월각과 척주당 앞에 있는 개천을 지나기 위한 돌다리가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돌다리 같습니다. 그 개천 저편으로 절 건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돌다리 양쪽으로 화려한 절건물이 늘어서 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시냇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정자도 딸려 있습니다.
비때문인지 물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모습을 한참을 보고 있다가 마침내 “아!” 하고 무릎을 탁쳤습니다. 그 하천을 넘어 서 있는 송광사는 피안의 세계였던 것입니다. 삶과 죽음이 있는 이곳에서 개천을 넘어가면 불국의 세계, 피안의 세계가 있는 것이지요. 하천을 두고 화려하게 서 있는 건물들은 피안의 세계를 그려 놓은 듯 합니다. 아마 절을 만들때 그런 생각을 하고 만들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인지 개천을 넘어 송광사로 들어가는 돌다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흘러가는 개천의 물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아서 그런지 개천을 잘 꾸며 놓았더군요. 제 생각이 맞다면 개천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가는 경계선입니다. 우리는 항상 경계에 서 있습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지요.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이쪽과 저쪽을 넘나 들 뿐입니다. 마치 이 개울을 지나는 것 처럼 말이지요.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비는 부슬부슬 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마음껏 정취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송광사에가서는 세월각과 척주당에 서서 개울 넘어 있는 건물을 바라 보십시오. 다들 세월각과 척주당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개울을 지나 송광사 안으로 들어갑니다. 제가 보기에 송광사의 백미는 세월각과 척주당 그리고 개울과 그 너머 벽처럼 서 있는 건물들입니다.
아! 세월각과 척주당에 이르기 직전에 있는 바위도 한번 보시길. 거기에는 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이 남아 있기를 바랬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그 바로 옆에 언젠가 사라져야할 그리고 잊혀질 관문인 세월각과 척주당이 있습니다. 묘한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
사진은 올리지 않으려 합니다. 생각과 상상을 공유하고 싶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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