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5

스팀잇과 같은 SNS시도는 처음이다.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중앙집권화된 통제의 부재로 인해 스팀잇은 매우 혼란스럽다. 무엇이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도 명확하지 않다.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는 것도 다수의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혹자는 스팀파워의 다소에 따라서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kr코뮤니티의 진행과정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을 잘 알 수있다.
대부분 문제의 제기는 스팀파워의 보유여부와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스팀파워가 별로 없는 동지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머릿수가 결정했다. 스팀파워를 많이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필자의 경우도 누가 깃발을 들고 나서서 대충 방향이 정해지면 거기에다 의견을 하나 보태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내가 처음부터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면 스팀파워 많다고 유세하는 것이냐하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 행동에 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 같다.
스팀잇의 방향성은 그렇게 동지들의 머릿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은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민주주의 체제와 매우 비슷하다. 인간들의 속성에 가장 부합하는 정치제도가 민주주의인가보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스팀잇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지금까지 스팀잇 kr 코뮤니티가 지향해온 방향성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첫째, 고래들이 보상에는 힘을 발휘하지만 중요사안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둘째, 중요한 사안의 결정에 스팀파워보다 머릿수가 중요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스팀잇 kr 코뮤니티가 익명의 자유로움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익명은 우리에게 많은 자유를 보장해준다.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아마 페이스북이나 다른 SNS가 익명으로 운영된다면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신문기사의 댓글이 익명으로 운영되면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기억하신다면 짐작하실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익명은 자유를 넘어 사람들에게 방종을 가능하게 했다. 온갖 욕설과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인간은 복잡다단한 존재다. 내 내면의 깊은 저쪽에 자리잡고 있는 악마는 기회와 여건만 되면 수면위로 튀어 나오려한다. 익명은 그런 악마의 봉인을 해제하는 열쇠인 것이다.
초기 스팀잇에서도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았다. 익명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려고 했다. 일부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시스템을 이용했다. 시스템이 문제가 되자 다수의 스팀잇 동지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문제해결 방식은 혁명적이었다. 역사수업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스팀잇의 문제는 누적된 모순과 같은 양상을 보였으며 그 해결방식은 혁명적인 방식을 보였던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문제는 토론을 통해서 교정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모인 스팀잇 kr 코뮤니티가 묘한 균형을 이루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이익과 개인적 이익의 균형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일정수량 이상의 스팀파워를 보유한 고래는 일정이상의 자본소득을 올리기 쉽지않다. 많으면 많을수록 자본소득을 올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스팀파워가 적더라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거나 활발한 네트워크 활동을 하는 동지들의 경우 자본이익을 상회하는 소득을 올릴 수가 있었다.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과정에서 익명으로 문제될 수 있는 많은 부분들이 규제되고 정리되어 간다는 것이다. 익명으로 SNS를 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심연에 자리잡고 있는 악마의 봉인이 해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강력하게 봉인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같다.
포스팅을 보면서 내 자신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익명의 세계에서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는 힘들었던 자신을 스팀잇을 통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익명을 통해 악마가 투영되는 것이 아니라 천사가 강림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익명을 통해 현실세계에서는 어려웠던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스팀잇 동지들의 생각들이 집단이성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각자 조금씩 새로운 자아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다중인격적인 현상이 발현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만해도 스팀잇을 통해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꼈던 억압과 왜곡, 절망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과정에서 내가 바람직하다고 원칙을 타협하지 않고 주장했다.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마 그랬다면 난 그 자리에서 추방되고 말았을 것이다.
스팀잇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추방당하거나 피해를 당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 이야기가 전체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간 일정한 균형을 지키는 선에 있어야 한다.
어쨓든 스팀잇에서 나는 새로운 익명의 인격을 만들고 있다. 현실의 세계에서 굴곡된 나보다 가상현실의 내가 더 나 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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