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0
산굼부리는 억새가 좋았다. 올라가는 길이 모두 억새였다. 무려 30년만의 방문이다. 그동안 뭐하고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때는 선굼부리 찾아오는 길이 멀고 멀었는데 지금은 차로 금방이다. 제주 여행은 렌트카가 답이다.
내가 처음 산굼부리를 방문한 것은 1982년도다. 그때 산굼부리가 관광지로 소개된지 얼마되지 않았었다. 산굼부리 밑에는 검은 염소가 몇마리 있기도 했다. 같이 여행간 몇몇 친구는 산굼부리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지금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매우 엄격하게 통제되어 있었다. 산굼부리 주변을 산책했다. 사람들은 산굼부리 정상부에 주로 모여 있었다. 주변의 산책로로는 잘 가지 않았다. 추억을 되새기면서 산굼부리 주변길을 걸었다.
길을 따라 다시 돌아오다보니 산굼부리 뒷편에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에 무덤이 여럿 있었다. 제주에는 무덤 주변에 돌을 쌓는다. 바람에 무덤이 다치지 않도록 말이다.

무덤 구경을 하다가 한쪽 구석에 이상한 비석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름하여 초혼비다. 초혼비란 주검을 찾지 못했을 때 세우는 것이 아닌가? 무슨 사연이 여기 있어 산굼부리 구석에 누가 초혼비를 세웠을까 궁금했다.
1907년 태어나 1950년에 행방불명된 김금순이란 이름의 아주머니를 기리며 조카가 초혼비를 세운 것이다. 7월 초에 행방불명되었다니 전쟁이랑 관계가 있었나? 이 분은 자식이 없었기에 조카가 초혼비를 세운 것이겠지. 사람이란 나고 죽는다. 죽고 나면 모두 잊혀진다. 인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지 얼마나 많이 나고 죽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살아있을때는 영원한 것 같지만 죽으면 모두가 잊혀지는 것이다.

트로츠키의 유언이 생각난다. 자신은 유물론자이며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트로츠키는 육신이 곧 자기자신이며 육신이 사라지면 자기자신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세상이란 한번 밖에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난 트로츠키같은 유물론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던가 윤회를 믿는 것도 아니다.
내가 죽더라도 내 영혼이 어떤 모습과 형태로든 우주에 남아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냥 모든 것이 끝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쉽지 않은가?
이 여인은 어떤 연유로 사라졌을까? 보아하니 그 당시 드물게 신식교육까지 받은 사람이다. 한번도 본적이 없고 이름도 모르지만 길가에 있는 무덤들은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초혼비라는 것을 말은 들었으나 본 것은 처음이다. 아주머니를 그리는 조카의 마음을 따라 영혼이 있다면 이 비석에 깃들어 있기를 기원했다.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가장 마음이 가는 것은 사람사는 이야기다. 한사람의 인생은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놓고 떠난다.
나 또한 그럴 것이고 내 자식 또한 그럴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초혼비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상념에 젖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삶이란….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살며사랑하며) 산굼부리의 어느 초혼비를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