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대한 단상

한반도에서 평화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미 625전쟁을 한번 겪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당위성을 넘어 절박한 민족적 요구이다. 그리하여 평화라는 말은 상당한 위력을 갖는다. 그러나 평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우리가 평화를 이야기 한다고 해서 평화가 오는 것일까? 대화를 한다고 평화가 오는 것일까? 베세티우스의 말처럼 전쟁에 대비하면 평화가 오는 것일까?

사실 나는 평화라는 것이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무엇이 평화를 가능케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이 분명하다면 수없이 많은 평화연구소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필자가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평화에 대한 많은 학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평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난 대화를 통해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거나 전쟁준비를 잘하면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을 잘 살펴보면 모두들 문제가 있었다.

평화가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가하는 주장들을 그게 구분해 보면 대화로 평화를 이룩하자는 주장과 군사력으로 평화를 유지하자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난 두가지 모두 다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중에 한가지 방법을 택하라고 한다면 난 힘에 의한 평화를 택할 것 같다.

왜냐하면 역사상 대화를 통한 평화라는 것이 제대로 현실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고 더 큰 피해를 초래했고 더 큰 전쟁을 초래했다.
내가 북한에 특사를 보내서 평화를 달성하자고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경멸하는 것은 단지 대화라는 방식으로는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확신때문이다. 2차세계대전도 영국의 유화정책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일전에 내가 북한과 대화를 통한 평화의 구걸이 일제 당시 노예의 평화보다 나쁘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독자 여러분들이 일제시대에 일경의 통치하에서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김정은의 독재치하에 살아갈 것인가를 택하라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난 김정은의 독재보다는 일제를 택할 것 같다. 삶은 한번이고 그런 기회를 김정은의 독재에서 살고 싶지 않다. 내가 북한과 대화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노예의 평화를 구한 친일파보다 낮게 평가한 이유이다.

그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북한과 대화하자는 것이 북한 김정은 치하에서 살고자 하는 것이냐? 라고 아니라고. 불행하게도 그것은 그렇다.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 역사속에서 평화는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첫번째는 의지와 의지가 대결하면서 서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때. 이것을 우리는 억제라고 한다.
두번째는 일방이 상대방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이다. 어느 일방이 상대방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전쟁을 통해서이다. 전쟁이 끝나고 승리하면 혹은 항복을 하면 결과적으로 평화가 온다. 일제시대에 우리는 전쟁도 안하고 무조건 항복을 한것이다. 어느 일방이 저항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상대방이 시키는대로 할때도 평화가 온다. 지금 북한과 대화를 구하는 사람들은 두번째의 경우에 가깝다. 따라서 아무 대책없이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자는 이들을 비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한반도에서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조건은 대화를 통해서도 아니고 군사적 대비책을 통해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아마도 평화를 위한 준비와 전쟁에 대비한 준비가 매우 적절하게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핵무장은 우리가 이룩할 수 있는 평화의 역량범위를 넘어가고 있다.
시간은 지나가고 우리는 무력하다.

결국 한반도에서의 평화도 어느 일방이 상대방에게 저항의지를 완전하게 상실하고 복종하거나 아니면 팽팽한 균형을 이루면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 중간이 가능할까? 대화론자들이 생각하는 방안의 대부분도 결과적으로는 어느 일방이 상대방에게 굴복하게 되는 경우의 수로 귀결되게 될 것이다. 아니면 말해보라 어뗜 경우의 수인지?
세상은 복잡한 수학이 아니다. 매우 단순한 산술의 범위를 넘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너무 단순해서 다른 방책을 구하기 어려운 것.

그러나 능력있는 전략가는 그 가운데서 묘책을 찾아내야 하는 법이다. 이 시대의 제갈량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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