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뚜기의 행보에 심기가 불편한 농심

재밌는 뉴스가 있어 공유합니다.

오동통면 아시나요?

농심의 너구리와 비슷한 오뚜기의 다시마 라면인데요.

최근 오동통면을 구입하면 다시마가 두 개 들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완도 다시마 재고가 2000톤이 넘어간다는 얘기를 듣고 SBS ‘맛남의 광장’에 출연 중인 백종원 씨가 지인 찬스를 썼습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오뚜기 회장에게 연락을 해서 다시마 좀 처리해 줄 수 없냐고 했더니, 오뚜기에 다시마 들어가는 라면이 있으니 두 개씩 넣으면 되겠네 하면서 선뜻 재고를 사들였던 것.

이에 오뚜기는 다시마를 두 개씩 넣은 오동통면 한정판을 선보였고, 초기 물량이 완판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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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디지털타임스


이런 상황에 대해 경쟁사인 농심은 심기가 불편하다고 하는데요.

완도산 다시마는 실제로 농심 ‘너구리’가 처음 출시될 때부터 꾸준히 들어갔다고 합니다.

매년 약 400톤 가량을 사들이는 큰 손입니다.

지난해 매출은 너구리가 970억원, 오뚜기 오동통은 80억원에 불과.

이런 상황에 대해 농심은 오뚜기만 착한 기업 이미지를 가지고 가서 심기가 불편하다는 찌라시입니다.




오동통면은 이번에 한정판 출시 되기 전에 마트에서 저렴하게 판매를 하기에 먹어 봤던 라면이었습니다.

이번에 한정판 나온 것도 물론 쓱배송을 통해 구입해서 먹어봤죠.

다시마 한 개 들어가든 두 개 들어가든 제 입맛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조그만 다시마 하나가 더 추가되면 단가가 얼마나 더 오르는지 모르지만, 오동통면은 다시마 하나로 매출이 껑충 뛰어서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갓뚜기도 갓뚜기지만, 정말 갓!종원 입니다.

‘맛남의 광장’이란 프로그램은 본 적 없지만 ‘골목 식당’은 매주 챙겨보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백종원씨에 대한 호감은 더 커져갑니다.


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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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를 믿는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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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저는 교회를 나가지 않는 개신교 신자 중 한 명입니다.

뚜렷한 주관이 있어서 교회를 나기지 않는 것은 아니고,

학창시절까지는 그래도 매주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나가다가

사회 진출하면서 혼자 타지에 나가게 되었고,

월화수목금금 하며 직장 생활하다보니 일요일 하루는 오전 늦게까지 늦잠자고

일요일 하루 온전히 혼자 방에서 쉬면서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개신교 신자죠.

아래의 글을 마주하게 되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비록 교회를 매주 나가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마음 속으로 신은 믿어야겠다고.


파스칼, 15세기 프랑스의 천재 사상가

1623년에 태어난 그는 열세 살에 철학자 ‘데카르트’나 수학자 ‘페르마’에 견줄 만한 천재로 이름을 떨쳤다.

‘파스칼의 내기’로 알려진 이론을 바탕으로 그는 신을 믿는 편이 좋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서른 두 살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두 시간 동안 최면에 걸린 듯 앉아 있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 내용을 두 쪽에 걸쳐 휘갈겨 써 내려갔는데, 이 글은 그의 사후에 현대 결정 이론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글의 내용은 이렇다.


우리는 신이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할까?

신이 존재할 확률은 50퍼센트.

경우의 수는 신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두 가지뿐이다.

신이 존재한다는데 베팅을 하고 신을 믿기로 결정했을 때, 정말 신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우리는 그 대가로 영원한 삶과 구원을 얻는다.

즉, 내기에서 이기는 것이다.

설령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치러야 할 대가는 미미하다.

신을 두려워했던 마음,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들어간 약간의 비용과 시간이 전부다.

신이 있을 경우에는 적은 비용으로 구원이라는 엄청난 이익을 얻는다.

결과적으로 신을 믿는 것이 옳다.

잃을 것은 별로 없지만 얻을 수 있는 혜택은 크니까.

출처 : 하노 벡, <부자들의 생각법> 중에서



여러분들은 어쩌시겠습니까?

믿쓥니꽈!?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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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게 아니고, 가까이 들여다 보면 달라보이는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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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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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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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아닌 다른 도구를 이용해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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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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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 봤을 때 보이는 모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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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들여다 봤을 때 보이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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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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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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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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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보면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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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은 월봉으로 보면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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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봉으로 보면 희극?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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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적 안정이 경제적 안정이라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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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직업이 안정적인 것과 나의 경제상황이 안정적인 것은 결코 동일한 관계가 아닌데도, 자꾸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 하루 직장생활에 치이며 살다 보면 착각에 빠지는거죠.

예전 포스팅에서 나는 왜 직장을 다니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저의 대답은 ‘돈을 벌기 위해서’ 였죠.

사회적 지위 상승?

일을 통한 개인의 성장?

남으로부터의 업무 능력 인정?

글쎄요..

사회 초년생일 때는 그래도 좀 달랐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일을 통한 성장이나 성취감을 느껴 보지 못한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정말 돈 때문에, 그리고 소셜 포지션? 때문에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소셜 포지션이라 함은,

딸아이가 학교 갔을 때, 선생님이나 친구가 ‘느그 아부지 머 하시노?’ 라고 물었을 때 대답할 게 있어야겠죠.

또, 대출을 받으러 은행을 가거나 카드발급을 위해 카드사에 연락을 했을 때 매달 봉급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에 다니고 있냐 없냐가 큰 차이가 있겠습니다.


그래도 직업적 안정을 바라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을 안정적으로 벌기 위한 것 같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방법은 다양할텐데,

회사 다니면서 월급 받는 것은 돈을 버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일텐데,

현재의 나는 직장다니며 월급 받는 것 말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같이 예체능 및 생산적 기술 보유 고자들은 선택의 폭이 참 좁은 것 같습니다.

떠오르는 건 주식 투자와 암호화 자산 투자 밖에 없네요.

월급쟁이 말고는 안정적인 수입처가 마땅치 않네요.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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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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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네이버 글감 검색>

저자 : 조남주(1978년생)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불만제로> <생방송 오늘아침>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10년 동안 일함.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 <고마네치를 위하여> 를 각각 2011년, 2016년에 냈고 둘 다 소설상과 문학상을 수상함.




정말 오랜만에 읽는 소설책.

소설책은 참 손에 안집히지만, 그래도 이 책 <82년생 김지영="">은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소설책들 중 하나였다.

소설책을 읽고 영화로도 봤는데, 책이 낫다.




저자가 82년생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다. 당연히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은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내가 이렇다 저렇다 소설에 대해 평가할 깜냥은 되지 않지만 문장들에 군더더기가 없는 느낌. 시원시원하게 잘 읽힌다. 그리고 나름 재밌다.




김지영 씨 가족은 너무 유교적이고 고지식한 집안이었나 보다.

집안 어른들이 아들~ 아들~ 하는게..

김지영씨 어머니가 셋째를 임신했을 때, 딸이라는 소리에, 아무도 모르게 혼자 병원가서 낙태 수술을 받았다는 장면이 너무 안타깝다.

그리고 네번째 임신으로 얻은 아들이 김지영씨의 동생이다.




1999년에 남녀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됐고, 2001년에 여성부가 출범했다는 말이 나온다.

1999년이면 내가 군휴학 중이긴 했지만 대학 다니던 시절인데.. 남녀차별에 대한 인식 개선이 제도적으로 생겨난 것이 생각보다 얼마되지 않았구나 싶다.

그 시절만 생각해도 지금은 완전 딴나라 세상이 되었다.

휴대폰이란게 막 보급되던 시기이고,

대학 강당 건물 복도 등 어디서나 담배를 피워댔고, (야간에는 버스 뒷자리에서도 폈다.)

잔디밭이란 잔디밭에는 늦은 오후만 되면 맥주를 짝으로 사와서 삼삼오오 모여 과자를 안주 삼아 술마셨던 기억이 난다.




김지영씨 어머니가 어릴적부터 고생하며 힘들게 컸지만, 금손이다.

말단 공무원 남편의 적은 월급으로 세 자녀와 함께 빌라에 살면서, 투자목적으로 전세끼고 아파트를 매입했었다.

그러다 남편이 희망퇴직 시점, 제법 이익을 남기면서 아파트를 팔고, 미분양 상가를 매입한다.

이후 상가에서 여러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지만 실패.

그러다 맞은편 신축 건물에 곧 어린이 병원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프랜차이즈 죽집을 차린다.

예상은 맞아 떨어지고 죽집으로 돈을 제법 번다.

그러는 사이 상가 근처 대단지 42평 아파트 분양을 받아 들어간다.




김지영씨가 대학생이 되는 시기부터 졸업, 취업준비, 직장생활 시기까지 남성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차별받거나 당한 일화들이 주욱 나온다.

그 일화들을 읽으면서 요즘은 많이 없어지거나 완화되었나.. 생각해본다.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다.




책 초반, 김지영씨가 주변의 다른 사람으로 빙의되는 장면들이 나왔다.

이후 그 빙의된 상태로 이야기들이 흘러갈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과거부터 빙의가 시작되기까지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2년을 열렬히 연애하고 또 3년을 같이 산, 빗방울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눈송이처럼 서로를 쓰다듬었던, 자신들을 반씩 닮은 예쁜 딸을 낳은 아내가, 아무래도 아내 같지가 않았다.

음.. 그러게. 책에서 나온 남편이 아내에게 느끼게 된 계기는 다르지만, 나도 좀 그렇다.

함께 산 세월이 10년이 다가갈수록 지금의 아내는 예전의 그녀 같지 않다.

가만히 보면, 아내는 나를 가마니로 본다. 가만히 있으니 말이얏!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중략)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 주셔야죠.

추석에 김지영씨가 자신의 어머니로 빙의되어, 시댁 식구들에게 한 말이다.

뭔지 모르게 나도 쾌감을 느꼈다.

여보, 시댁 좀 가자! ㅎㅎ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 이런 경우라면 당연히 전자를 선택해야하지 않을까.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우리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다.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진 않고, 당장 일을 그만두기도 어렵다.


202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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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집 앞 인도 한 쪽에,

군데 군데 심겨져 있는 꽃.

올해 봄부터,

가끔 지나치며 쳐다볼 때마다

모습이 달라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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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밋밋한 녹색의 잡풀 같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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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노랗고 빨갛게 물이 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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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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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차츰 영역을 넓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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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하나 둘,

이파리들이 떨어져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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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부풀어 오르듯 둥근 형태를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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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모습입니다.

씨방인가?

다음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다음 모습으로 바꼈을 때

잊지 않고 사진으로 남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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