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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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네이버 글감 검색>


저자 :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하버드에서 박사학위 받고 브린모어대학 교수를 지낸 바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10여 년간 일상과 사회, 학교와 학생, 영화와 책 사이에서 근심하고 애정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무엇보다 제목이 끌려서 읽게된 책.




저자가 수년간 써 온 에세이, 칼럼 등을 엮어 놓은 형식이다.

책 출간 시점 이전에 핫한 칼럼니스트였던 것으로 보인다.




책 전반을 읽을 때는 문유석 판사님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란 책과 유사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후반으로 가면서 갑자기 김웅 검사의 <검사내전>이란 책이 떠오른다.

물론, 이 책의 주제는 앞서 두 책의 주제와 전혀 다르다.




문장들이 좀 어렵다.

왜 그런 글들 있지않나.

어려운 단어들도 없었는데 방금 읽은 내용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한자식 단어들이 제법 있긴 하다.

얼핏, 책 제목만 봤을 때는 좀 어두운 내용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전혀 그렇진 않다.




본문 내용 중에 저자는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가’나 ‘왜 디저트가 맛이 없냐’라든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지 않냐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스스로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 같다.

지금 내가 걱정하거나 근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회사 업무가 떠오른다. 회사에서 떠안게 될 일이 걱정된다.

그래, 이 정도면 현재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회사 업무에 대한 근심이 떠오를 때면 다른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신경이 쓰이지만, 건강, 생계 등 다른 큰 걱정 근심에 비하면.. 회사 일 걱정이야 뭐.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기록해 둔 본문의 문장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면, 영원히 살 것처럼 굴기를 멈출 것이다.

소소한 근심에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행성이 충돌하는데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몽테뉴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죽음이 주는 무서움에 대한 가장 한심한 대응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두 번씩 죽는다.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 죽음이 온다.

그리고 자신의 장기가 더 이상 삶에 협조하기를 거부할 때 육체적 죽음이 온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길고 긴 연옥 상태다.





한국의 현대사는 19세기 유한계급 양반들이 게걸스럽게 먹고 남긴 설거지를 하느라 이토록 분주한 것이 아닐까요.

후대의 사람들이 자칫 설거지만 하며 인생을 보내지 않으려면, 각 세대는 자신의 설거지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세대 간의 정의 입니다.




결혼은 연애의 업보이고, 자식은 부모의 업보이며, 설거지는 취식의 업보입니다.

얼마나 깔끔하게 혹은 게걸스럽게 먹었느냐가 고스란히 설거짓거리에 반영됩니다.




요리의 시작은 쌀을 밥솥에 안치는 일?

요리의 시작은 장보기.

식사의 끝은 디저트?

식사의 끝은 설거지.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내가 누구인지, 한국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하기 보다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한국이 어떤 정책을 집행하는지,

정체성보다는 근황과 행위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다.




한국에는 이미 오랜 다민족 전통이 있음을 잊지 말자.

조선왕조 창업공신의 일부는 여진족이고, 고려 후기 상당수의 왕들은 몽골 공주와 혼인했으며, 단군을 낳은 환웅과 웅녀는 같은 민족이 아니었다.




반문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방식 중 하나이다.

질문이라는 게 사람을 어느 면에서 좀 숭고하게 만드는 게 있는데다 얘기를 진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제가 되기도 한다.



행복보다는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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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단지 기분이 좋은 걸 의미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행복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돼 있다고 생각한다.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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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분들, 현재 무슨 일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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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딱 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그는 회사를 매일 다니고 있지만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가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일까?”

“앞으로 계속해서 회사에서 성장할 수 있을까?”

“이대로 직장에서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도 좋을까?”

40대는 김과장처럼 흔들리는 직장인이 많다.

일본의 인사 조직 분야의 전문가인 쿠스노키 아라타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직장인의 마음 상태를 ‘마음의 정년’이라고 불렀다.

직장생활의 벽에 부딪혀 일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고민하는 상태를 말한다.

직장생활의 중간 시점인 40세에 들어서면 갈등이 시작된다.

회사의 업무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일하는 의미를 고민하게 된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면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는 직장에서 성장하는 삶을 꿈꾸었지만 이제는 회사에서 성장한다는 보장이 없다.

평생직장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직장은 더 이상 내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상승하는 에스컬레이터의 끝에 칠흑같은 어둠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막막하다.

  • 이형종,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중에서




40대 직장인들 대부분이 다 비슷한 마음인가 봅니다.

제가 평소 고민하는 부분과 아주 흡사합니다.

현재 저의 최대 고민은, 50대에는 무얼하며 살까 입니다.

2020년 한국에서 50대들은 주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 자영업이 아닐까 싶네요.

현재 제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도 분명 50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직원들 중 50대 이상 비중은 확실히 극소수..

비록, 현재 직장에 50대들이 좀 있다고는 하나, 저 스스로 나이 50대가 되어서도 여기서 제품 개발하며 지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곳 스티미언들 중 50대 이상이신 분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스티미언들 중 50대 이상이 몇 분 안 계실 것 같고,

그 50대 이상인 분들이 이 글을 읽을 확률은 극히 낮고,

이 글을 읽는다고 해도 답변을 달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겠지만,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50대 이상이신 분들, 현재 무슨 일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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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저에겐 어떤 선택지가 있을지.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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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먹는 곤충과 이슬 먹는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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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더워지기 전부터 키워오던 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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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꽃 피우는 것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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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가 맺힌 것도 보면서 한 껏 기대하는 마음을 가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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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딸기가 빨갛게 익은 모습을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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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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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의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외모 또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무섭게 생겼습니다.



딸기 잎에 이슬 맺힌거 본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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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맺힌 딸기 이파리를 보면, 모서리 끝에 이슬이 한 방울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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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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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쁘다 하며 쳐다보고 있는데, 눈에 들어온 아침 이슬 먹는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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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거기서 왜 나와~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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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태어난 우리 동네 칠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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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사진을 보고 짐작하셨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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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디즈니 일곱 공주님들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나저나, 요 귀여운 공주님들 중에서 백설 공주만이 나와 눈을 맞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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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수로가 있습니다.

출근하기 위해 걸어가던 어느 날, 수로 저 멀리에서 꼼지락 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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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의 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새끼 오리 7마리가 꼬물대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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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를 살펴봐도 어미 오리는 보이지 않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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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며칠을 연속 출퇴근길 오리와 조우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어미는 보이지 않고 일곱 마리가 항상 사이좋게 옹기 종기 붙어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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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장마가 시작된 며칠 전,

비오늘 날 칠공주들을 본 게 마지막입니다.

매일 보이던 녀석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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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날지 못하는 상태일텐데.

수로 벽 양 옆이 높아 담을 넘어 가지는 못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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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사라진걸까요.

솜털 보송보송난 어린 오리 새끼들이 꼬물거리며 물 위에서 헤엄치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202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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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시작은 미비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수박편)

씨앗이 발아하면서 빼꼼이 삐져 나오는 잎을 떡잎이라 합니다.

떡잎 수에 따라, 외떡잎 식물과 쌍떡잎 식물로 구분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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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텃밭에 수박씨를 심었고, 그 수박씨는 발아해서 이렇게 자랐습니다.

수박의 떡잎은 두 장. 쌍떡잎 식물이네요.

그럼 외떡잎 식물에는 어떤게 있을까요.

검색해보니,

백합, 난초, 벼, 보리 등이 있다고 나옵니다.

벼와 보리는 떡잎이 한 장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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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잎 두 장이 나온 후 본잎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본잎은 떡잎과 달리 그 식물 고유의 이파리 모양과 무늬로 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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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나 둘 나기 시작하면서 땅바닥으로 뻣어나갑니다.

수박도 넝쿨식물 중 하나네요.

이렇게 잘 자란 녀석은 우리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수박이 아닙니다.

저희 텃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땅 주인이 직접 기르고 있는 건데요.

우리 텃밭 수박은 공간이 없어서 이렇게 자랄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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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들이 땅을 따라 번지다가 노란 꽃을 피웁니다.

수박 꽃은 이번에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 봤는데, 꽃 속이 참 기하학적으로 생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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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꽃 핀 자리에 손톱만한 알맹이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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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이 문장이 딱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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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 시작은 미비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비록 그 창대함의 끝은 깨지거나 썰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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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중에서 커서 사람 머리통 만한 수박이 된다 이거죠.

오늘 기록한 것은 수박인데, 호박도 수박과 아주 유사한 단계를 거치네요.

호박 사진도 찍고 있으니 다음에는 호박편으로~


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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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오늘, 나에게 약이 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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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네이버 글감 검색>

저자 : 한설

책에는 저자에 대한 소개가 없다.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책을 검색 후 저자 소개란을 봤지만, 그곳에도 별 언급이 없다.

그저 10년쯤 회사를 다녔고 어쩌다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는 소개 정도.

스테디셀러 <배려>의 저자라고 하는데, 그 책의 저자명은 한상복이라 되어 있다.

한설은 필명이거나 개명을 했거나 둘 중 하나인가 보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 또는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되었거나 오래 전에 저자가 읽고 감명받아 간직해 두었던 여러 이야기를 모아 놓은 이야기라 소개되어 있다.

내용을 읽어보니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특정 인물들의 일화에 가깝다.

이야기나 일화나 그게 그건가?

각각의 에피소드 내용이 너무 짤막하다.

느낌이 좀 고조될려고 하는데 끝나버리니.. 감흥이 잘 오지 않는다.

책이란 것이 그 책을 읽고 있는 시기에 따라서, 또는 읽는 이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크게 영향 받는 것 같다.

현재는 이런 류의 힐링 글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누군가 우리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모래에 적어야 한다.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워버릴 수 있도록.

누군가 우리에게 고마움과 은혜를 베풀었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바위에 새겨야 한다.

그래야 바람이 불어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테니까.




사람은 밥보다 말을 많이 먹는다.

밥은 입 하나로 먹지만 말은 두 귀로 먹기 때문이다.

말은 정해진 끼니가 없어 수시로 먹는다.

가장 많은 말을 주는 사람은, 바로 말하는 당사자다.



20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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