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알랭 드 보통
1969년생.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남.
대표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여행의 기술> <동물원 가기> <행복의 건축>
번역서의 제목은 그냥 ‘불안’ 이지만 원서의 제목은 Status Anxiety.
‘지위에 대한 불안’ 정도 되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지하는 자리/지위를 둘러싼 불안에 대해 다룬 책.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결코 쉬운 내용의 글은 아니다.
문장들이 어렵지는 않은데 내용들이 머릿 속으로 쏙쏙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지루해서 읽기를 포기할 정도도 아니다.
단순히 재미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나름 집중력있게 글이 읽힌다.
책 내용을 충분히 흡수하기에는 아직 내 그룻이 작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언어천재 조승연 작가의 <이야기 인문학>이란 책 생각이 난다.
무언가 비슷한 스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100~200년 전의 사람들이나,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불안을 느끼는 요소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다루고 있는 내용이 시대에 따른 다양한 지식 및 지혜를 광범위하게 다룬다.
이래서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 하는구나 싶다.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기록해 둔 본문의 문장들.
이 세상에서 힘들게 노력을 하고 부산을 떠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중략..)
다른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관심을 쏟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알은 체를 해주는 것이 우리가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느낌 –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 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성공을 거두어야만 우리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또 어떤 일에서 실패한다고 해서 반드시 수모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존심과 가치관을 걸고 어떤 일을 했는데 그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에만 수모를 느낀다.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 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자존심 = 이룬것/내세운 것.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성취를 거두려고 노력하는 방법이 있다.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은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장-자크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것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부유하다고 느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3에이커와 자유="">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고용주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해,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데올로기적 진술이란 중립적으로 말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어떤 편파적인 노선을 밀어붙이는 진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중략)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그는 자신의 성장, 교육, 일을 돌이켜보며,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자신의 이익과 감수성을 희생해왔는데, 이제야 그들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의 가장 큰 효과는 나일 강변에서 술을 마시든, 책을 쓰든, 돈을 벌든, 우리가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로부터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덜 의존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죽어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 자신의 소멸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마음 속으로 귀중하게 여기는 생활방식을 향해 눈길을 돌리게 된다.
지위에 대한 우리의 하찮은 걱정을 천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미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된다.
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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