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첫 포기 김치 담기

저희 집의 김치는 지금껏 처가에서 공수해왔습니다.

김장김치 담글 때 처가에서 함께 김치를 담그고, 몇 포기 씩 받아오곤 합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처가 방문을 못하고 있는데,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김치는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부득이 직접 혼자서 김치를 담아야하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이번 쓱~배송에는 김치 담기 위한 재료들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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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대파, 쪽파, 무

그 외 소세지, 계란, 물티슈, 우유, 과자, 양배추, 양파, 아이스크림, 바나나.

남편이 좋아하는 무생채도 담고, 아내가 좋아하는 물김치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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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첫 포기김치 담그기.

이전에 배추김치 담기를 시도해본 적이 있기는 합니다.

그 당시에는 미리 배추를 썰어서 김치를 담았었는데, 실패였죠.

양념 색깔도 잘 안나고, 양념이 배추에 거의 배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또 실패하더라도 고추가루 등 양념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넣어보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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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담은 김치 맛을 봤는데 괜찮네요.

성공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아내의 음식 솜씨를 날로 단련시키고 있습니다.


202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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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외식. (중화요리집 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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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이후로 회식은 둘째 치고 외부 식당에서도 거의 식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최근 회사 직원들과 점심 회식 겸 외부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샹리’라는 상호의 중식당이었는데요.

건물 지하에 있었는데 식당 규모는 상당히 큰 것 같았습니다.

메인 홀로 진입을 못해봐서 그 크기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단체 손님을 위한 장소는 옆복도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룸이 한 6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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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점심 코스요리였는데요.

인당 2만5천원에 후식 제외하고 6가지 메뉴가 나옵니다.

유산슬, 난자완자, 탕수육, 고추잡채, 꽃빵, 샹리탕면/짜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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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에 갯수가 많아 보이게 할려고 꽃빵을 하나의 메뉴로 추가해뒀네요.

꽃빵이야 원래 고추잡채 나올 때 함께 나오는거 아닌가요?

메뉴 중에 난자완자라는게 있는게 보통 난자완스라고 부르죠.

마지막 식사는 샹리탕면과 짜장면 택 1이었는데 탕면을 선택했습니다.

매콤한 중국 고추가 들어있어 칼칼~하니 좋았습니다.
후식으로는 슬러시 같은게 나왔습니다.

유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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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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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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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잡채, 꽃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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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리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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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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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슬 같은 건 좀 비싼 요리이긴 하지만..
2만5천원 주고 먹기에는 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거기다가 작년 연말 인당 8만원 정도 했던 고급 중식당 코스요리를 먹었던 입이라서 그런지, 다소 저렴한? 중식당 코스 요리로는 만족이 안되는 모양입니다.


2020.03.14


맛집정보

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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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내발산동 마곡역


오랜만의 외식. (중화요리집 샹리)

이 글은 Tasteem 컨테스트
내가 소개하는 이번 주 맛집에 참가한 글입니다.


테이스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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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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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알랭 드 보통

1969년생.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남.

대표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여행의 기술> <동물원 가기> <행복의 건축>


번역서의 제목은 그냥 ‘불안’ 이지만 원서의 제목은 Status Anxiety.

‘지위에 대한 불안’ 정도 되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지하는 자리/지위를 둘러싼 불안에 대해 다룬 책.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결코 쉬운 내용의 글은 아니다.

문장들이 어렵지는 않은데 내용들이 머릿 속으로 쏙쏙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지루해서 읽기를 포기할 정도도 아니다.

단순히 재미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나름 집중력있게 글이 읽힌다.

책 내용을 충분히 흡수하기에는 아직 내 그룻이 작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언어천재 조승연 작가의 <이야기 인문학>이란 책 생각이 난다.

무언가 비슷한 스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100~200년 전의 사람들이나,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불안을 느끼는 요소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다루고 있는 내용이 시대에 따른 다양한 지식 및 지혜를 광범위하게 다룬다.

이래서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 하는구나 싶다.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기록해 둔 본문의 문장들.


이 세상에서 힘들게 노력을 하고 부산을 떠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중략..)
다른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관심을 쏟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알은 체를 해주는 것이 우리가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느낌 –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 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성공을 거두어야만 우리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또 어떤 일에서 실패한다고 해서 반드시 수모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존심과 가치관을 걸고 어떤 일을 했는데 그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에만 수모를 느낀다.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 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자존심 = 이룬것/내세운 것.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성취를 거두려고 노력하는 방법이 있다.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은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장-자크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것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부유하다고 느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3에이커와 자유="">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고용주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해,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데올로기적 진술이란 중립적으로 말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어떤 편파적인 노선을 밀어붙이는 진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중략)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그는 자신의 성장, 교육, 일을 돌이켜보며,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자신의 이익과 감수성을 희생해왔는데, 이제야 그들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중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의 가장 큰 효과는 나일 강변에서 술을 마시든, 책을 쓰든, 돈을 벌든, 우리가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로부터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덜 의존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죽어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 자신의 소멸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마음 속으로 귀중하게 여기는 생활방식을 향해 눈길을 돌리게 된다.


지위에 대한 우리의 하찮은 걱정을 천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미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된다.


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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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와 어머니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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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이란 책을 읽는 중에 남편과 아내가 혼인신고서 작성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혼인신고서에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 항목에 예, 아니오를 선택하는 부분이 있는데, 아니오를 선택하는 장면입니다.


저는 모르고 살았는데, 대한민국은 2008년 1월부터 호주제가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호적 같은 것이 없는 나라입니다.

오래 전 드라마를 보면, 집안 어른이 자녀에게 협박으로 ‘너 우리 집안 호적에서 파버린다’라는 말이 등장하곤 했었는데, 이제 그런 말은 사라지게 되었네요.

비록 호주제는 폐지되었지만,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경우는 아직까지 극소수라고 합니다.


저는 아내와 혼인신고서 작성할 때 ‘자녀의 성, 본을 모의 성, 본으로 하겠냐’는 질문 항목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저는 정말 어쩔 수 없는 한남충인건가 싶었습니다.

다행히 아내에게 물어보니 아내도 기억하지 못하네요.


자녀를 키우며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자식은 아빠의 자식이라기 보다는 엄마의 자식 같습니다.

태생부터가 그렇지 않나요.

비록 아빠 쪽에서 태아 생성을 위해 자신의 DNA를 좀 보탰다고는 하지만 사실 엄마의 뱃속에서 다 자라지 않습니까.

태어난 이후에도 아빠로서 나름 육아를 함께 한다고는 하지만 엄마가 자녀를 키우는데 쓰는 희생에는 한참 못미칩니다.

그렇다보니 아이도 아주 어릴 적에는 아빠를 많이 찾았는데, 자랄수록 엄마에게 더 의지하고 엄마를 더 찾습니다.

엄마 좀 편히 자게 하자고 아빠와 함께 잠 자기로 한 날에도, 새벽에 눈 뜨면 어느새 엄마한테 쪼르르 기어가서 엄마 껴안고 자고 있는 딸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생각을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자식은 엄마의 자식이지 아빠의 자식같지 않다고.

사실 성도 엄마 성을 따라가는게 더 적절한 것 같다고.

그랬더니, 아내가 말합니다.

딸이니까 그런 생각들지, 아들이었으면 그런 생각 안들거라고.^^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습니다.


20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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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갖자. 가늘고 길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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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 연차가 쌓일수록 직급 역전 현상을 슬슬 겪게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전 회사의 직급체계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사원(연구원), 대리(주임), 과장(선임), 차장(책임), 부장(수석)

현재는
사원(연구원), 과장(선임), 차장(책임)

과거 5단계의 직급에서, 현재 3단계로 축소되었습니다.

직급체계가 변경되면서,
대리였던 사람은 과장으로 상향 되었고
부장이었던 사람은 차장으로 하향 되었습니다.
월급에는 변화가 없었죠.

그리고,
과거, 차장에서 부장으로 진급하기 위한 자격 요건들이
현재, 과장에서 차장으로 진급하기 위한 자격 요건이 되었습니다.

이 자격 요건 때문에 저는 몇 번의 진급누락이…
진급을 계속 못하면 임금 동결시킨다는데..
쿨럭..

수년전 제가 ‘과장’일 때 ‘대리’였던 사람이 올해 ‘차장’을 달았습니다.
기분이 묘해집니다.

가늘고 길게 가자고 스스로 정신 승리를 하고 있지만, 이것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남 신경쓰지 않는 용기.
나만의 중심 잡는 용기.


20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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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함인가 갑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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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선가 치밀함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기 위해 소개된 아래와 같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옛날 미공군이 낙하산 제조업체에 낙하산 제작 의뢰를 맡겼다.

군인들의 생명이 걸려있으니 철저한 품질보증을 요청했다.

그 낙하산 제조업체는 부단한 노력 끝에 1% 불량률로 제품을 생산해낼 수 있게 된다.

언뜻 괜찮아보이지만 100명 중 1명은 사망을 하는 비율.

미공군은 0 퍼센트 불량률을 요청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는다.

그래서 미공군이 생각해낸 것이 품질검사 방법을 변경하는 것이었다.

낙하산 제작업체 담당자와 직원이 직접 임의의 낙하산을 메고 고공낙하 하는 방식으로 제품의 품질을 검사하는 것이다.

그제야 그 업체는 신기술 개발 등을 통해 0 퍼센트 불량률을 달성하게 된다.


자기 목숨이 달리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는 법이죠.

결과적으로는 그 낙하산 업체도 0% 불량률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에피소드를 읽다보니 치밀함에 대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미공군이 낙하산 업체에 행한 갑질에 대한 에피소드로 보이네요.

사지로 몰아넣음으로써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20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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