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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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경철

의사이기도 하면서 경제, 주식 전문가로 유명세를 떨쳤던 인물.

작년 쯤,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이란 책도 뒤늦게 봤는데, 이 책도 좀 뒤늦었지만 좋은 책이란 소개를 듣고 찾아 읽은 책.

이 책은 2000년대 후반 저자가 ‘청춘 콘서트’에서 약 6년간 강연하면서 중고등학생, 대학생, 학부모, 선생님들과 나눈 소통과 교감의 기록이라 소개되어 있다.

청년들 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저자가 겪은 시행착오를 그대로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400페이지 가량 되는 두꺼운 책이다.


이분이 1964년생이니 현재 50대 후반이시다.

최근 근황이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2017년 경 15세 연하의 아나운서와 재혼했다는 내용만 나온다.

최근에는 방송활동 등은 잘 안하시나 보다.


이런 분을 보면 드는 생각이, 돈이 부익부 빈익빈 이듯이, 지식도 부익부 빈익빈 인 듯하다.

저자가 20대 후반일 때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나름대로 인문사회 부분의 독서는 해왔지만 예술 분야에는 문외한이라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미술은 <모나리자>, <천지창조> 떠올리는 정도가 기껏이고, 음악은 대중음악이나 클래식 음악이나 젬병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선택한 방법이 클래식 음반 100장 듣기와 곰브리치와 젠슨으로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밥 먹을 때도, 수술실에서도, 잠자리에 들때도 계속해서 틀어놓고 들었다고 한다.

또, 진시회가 열리면 찾아가 우두커니 서서 몇 시간이고 그림을 바라 보았다고 한다.

20대 후반에 이미 인문사회 관련 소양은 어느 정도 있고 자신의 창의성을 위해 예술 분야의 소양을 쌓기 위해 스스로 다른 분야에 파고 드는 모습..

나 같은 경우는 20대 후반에 인문사회는 커녕, 책 한권 읽지 않고 하루 하루 회사 집만 반복하며 밤마다 TV 보거나 술마시기 바빴는데..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지식도 쌓이면 쌓일수록 다른 분야에 더 욕심이 나는게 아닌가 싶다.


의외의 사실 하나.

책 본문에서 저자가 밝힌 사항인데, 2010년경 저자의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을 넘나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다이어트를 해서 80킬로그램까지 감량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2010년경 나이면 저자 나이 47세쯤일 것 같은데..

수 년전 TV에서 얼굴을 봤을 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불과 10년 전에 100 킬로그램이 넘는 체구였다니~

자기 혁명은 잘하시나 모르겠지만 자기 관리는 소홀하셨구만!^^


본문에서 은연 중에 말했지만, 저자도 중고등학교 시절 엄청난 독서를 한 것으로 보인다.

정말 이 시절의 독서가 한 사람의 지적 능력을 올리는데 참 중요한 듯 하다.

이 책 내용들은 내 소화력으로 한번에 감당하기에는 다소 버겁다.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기록해 둔 본문의 문장들.


남이 가는 길을 가면 편안하지만 종속되고, 새로운 길을 가면 험난하지만 독립적으로 서게 된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내게서 출발하고, 그 답 역시 내 안에 있다.


중요한 것은 좋은 습관을 만드려는 노력보다 나쁜 습관을 버리려는 의지요, 노력이다.


모든 생각은 문자의 정교한 조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내 생각의 범위는 내가 알고 있는 문자의 범위이고, 생각은 그 문자의 조합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나의 생각을 넓히기 위해서는 많은 문자를 알고, 그것을 조합하는 방법을 익혀야만 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크기는 우리가 인식하는 시선의 범위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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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내가 인식하는 만큼이 내 세상의 크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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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청년이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도전하는 것은 그만큼 자기 세상의 크기를 넓히는 것이고, 그만큼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독을 느끼는 것은 타인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기지만, 진짜 고독은 타인과는 늘 함께하면서 참 나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데서 오는 것이고, 이것을 가리켜 우울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모두 태어나서 죽는다.

삶의 시작과 끝은 모두 같은 것이다.

하지만 삶에 특별한 흔적을 남긴 사람들은 다르다.

그가 걸어온 길은 다른 사람들에게 떠밀려온 길이 아니고, 그가 생각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주입한 생각이 아니다.


말의 신중함은 사실 후천적으로 기를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바로 말을 시작하는 타이밍을 늦추는 것이다.

한 번 늦춤으로써 정제되고, 한 번 늦춤으로써 신중함을 인식 시키고, 한 번 신중함으로써 한 번의 실수를 피할 수 있다.


말을 잘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내가 평소에 많이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다.

대화 중 모든 것에 대해 의견을 말하기 보다 내가 평소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서는 듣기만 하고 생각이 정리되어 있는 부분에서만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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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타인은 내가 하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개인의 경제적 성취와 소수집단의 부만을 대상으로 삼을 때 욕망은 날카롭고 사악하며 통제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그 대상이 사회 전체로 넓어지면 욕망은 부드럽고 선량해진다.

결국 이런 욕망의 상대적 통제와 전환만이 행복의 방정식을 완성하는 유일한 해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개인과 사회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아름다운 수식이 완성된다면 지금 우리가 대립중인 ‘복지’와 ‘성장’이라는 당대의 명제를 두고 어떤 사회구조를 완성해나가야 하는지 그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단순한 습관이나 버릇이 아니라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실제 모든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대하는 자세 혹은 태도다.

우리는 대개 성과의 차이가 능력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태도의 차이, 즉 집중력의 차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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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좋은 태도는 일생을 통해 교정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다.


긍정적 애티튜드를 만드는 출발은 내일부터 무엇인가를 하겠다가 아니라 내일부터 무엇인가를 하지 않겠다가 먼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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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나의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애티튜드는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람은 설령 그것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누구나 특정 분야에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효율성과 행복의 측면에서 우리는 당연히 잠재력이 가장 뛰어난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교육은 공부에 재능이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사람들은 제각각 손재주, 말재주, 그리는 재주, 쓰는 재주, 공부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공부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만 성실근면하고 우수한 자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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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낭비다.


사람은 위를 보고 결핍을 느낄 뿐, 아래를 보고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평생을 무한 경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경쟁의 결과 생산성과 효율성이 증가하고 발전과 진보가 이루어지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적당한 상한선만 존재한다면 경쟁심이 사회적인 측면에서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쟁심은 한계가 없고 욕망은 무한한 것이 문제다.


결국 시간활용은 계획이 아니라 금기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먼저 정하고 해야 할 것을 계획하면 그것은 실천 가능한 계획이 되지만, 해야 할 것만 정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알코올 중독자가 소주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뒤집어 생각하면 ‘고민을 하지 않는다’거나 ‘고민이 없다’는 것은 안주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더 이상 달라질 것도 없고 나아질 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고민은 나은 선택을 위한 의례다.

자발적인 것이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닥친 것이건 고민은 더 나은 결과를 낳기 위한 진통이다.

어떻게든 더 나은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스펙경쟁은 물론 겉으로는 공정해 보인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따라잡을 수가 없는 불공정이 존재한다.

기성세대가 과거의 성공방식을 지금도 강요하는 이면에는 바로 이런 신분세습의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사람의 생각은 언어로 고정되어 있고, 언어는 맥락이 있어야만 뜻이 형성된다.

언어, 즉 어휘가 부족하면 생각이 풍부할 수 없고 언어를 맥락화할 수 없다면 체계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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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유’란 맥락화된 생각을 가리킨다.

그래서 독서는 사유를 배우는 제1의 수단이며 창의력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30년에도 진리를 깨치기는 커녕 밥만 축내는 수행자가 있는 반면, 하루 만에 문고리를 잡고 깨친 사람도 있다.

독서는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저자의 사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나에게로 끌어들여 내 생각을 교정해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는 흔히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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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와 말하기가 다르듯, 읽기와 쓰기는 다르다.

해석과 창작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비극적 선택을 두고, 다른 사람과의 단순 비교를 통해 나약한 선택을 했다고 비하 하거나 외면해선 안 된다.

사람은 각자 견딜 수 있는 임계치가 다르고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도 제각각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고 모두를 일반화하게 되면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최악/차악뿐이다.

하지만 내가 만든 상황에서 던지는 주사위에는 최선/차선의 선택이 있다.

기다린다고 상황이 명료해지는 것은 아니다.

밤안개는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진다.

빨리 지나가야 한다.

안개가 옅어지기를 기다리다 결국 새벽을 맞는다.

인생이 바람처럼 지나가버린 것이다.


202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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