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네이버 글감검색>
책의 머리말에,
‘이 책은 성공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의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 사람들,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는데 현실의 무게로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알지 못해 하루하루를 목적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현재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알지 못하는 저에게 훅 꽂히는 문장입니다.
저자 임승수는 서울대 전기공학부 졸업, 동 대학원 반도체 소자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직장생을 몇 년 하다가 그만두고, 현재 인문/사회 분야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책 이전에 여러 책을 집필했는데, 그 중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이란 책이 있는데 이것도 찜해뒀다가 읽어보고 싶습니다.
책 제목 <나는 행복한 불량품이다> 를 한 문단으로 요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느낌을 아는가? 감히 얘기하는데, 나는 안다. 매일 매일 작가로서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나 스스로 통제한다. 이 해방감과 충만함을 맛 본 사람은 다시 시간의 노예로 돌아갈 수 없다. 과연 이 행복을 누가 알까? 다시 태어나도 이 삶을 살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규격품의 삶을 거부하고 불량품이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다.
작가 스스로 본인의 삶에 만족해하는 이 문장을 보고 부럽기도 하고, 규격품이라고 표현된 지금의 저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되뇌게해주는 부분입니다.
책 소제목 중 ‘생산관계의 차이로 시대를 나누다’란 주제의 글이 있는데, 여기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의 생산관계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노예주 - 노예 : 노예제 사회의 생산관계
영주 - 농노 : 봉건제 사회의 생산관계
자본가 - 노동자 :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관계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나는 옛날 같았으면 노예나 농노 같은 입장이네요. 느낌 팍 옵니다.
뭐라 구체적으로 꼭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자본이 없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서 임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 라는 문장이 뇌리에 박힙니다. 로버트 기요사키가 강조하는 자본가가 되라는 말도 함께 떠오르고요.
책 내용 중 한번씩 웃긴 부분도 나오고, 작가의 필체가 시원시원하다고 표현해야할까요. 읽는데 있어 크게 막히는 곳 없이 술술 잘 읽히는 책입니다.
인간을 규격품으로 만드는 지금 학교 교육의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꼬집는 재밌는 삽화가 있어 인상깊었습니다.
“공정한 선발을 위해 모두 똑같은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저 나무 위로 올라가세요”
까마귀, 원숭이, 펭귄, 코끼리, 붕어, 물개, 개에게 전부 나무에 올라가라는 똑같은 시험문제를 내는거죠. 예시가 아주 눈에 쏙 들어옵니다.
아래부터는 책 본문의 내용 중 기록해두고 싶은 문장들입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직업이란 그저 ‘돈’버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사실을 잊는다. 그 돈을 벌기 위해서 갖다 바쳐야 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바로 ‘시간(인생)’ 이다.
발 딛고 서는 곳이 달라지면 눈에 들어오는 풍경도 달라진다. 인생이라는 험준한 산에 오르며 돈이 보이는 방향으로만 눈을 고정시키다가, 시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니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이 들어왔다.
브로니 웨어의 책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에 나오는 5가지 항목 중 통장잔고를 더 늘리지 못해 후회한다는 얘기는 없다. 명문대학에 입학하지 못해 후회한다는 얘기도 없다. 수영장이 딸린 큰 집에서 살지 못해 한이 된다는 얘기도 물론 없다. 살아생전 다들 이런 것들에 얽매여 사는데 말이다.
죽을 때 후회하는 다섯가지 목록
.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더라면
. 내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더라면
. 나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더라면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다 - 아인슈타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기업을 소유한 자본가 계급이 개인의 시간을 통제한다. 기업이 정하는 시간에 맞춰 출근과 퇴근을 반복한다. 회식이 잡히면 개인 약속 취소하는 경우도 다반사고, 프로젝트 마감이 닥치면 주말/휴일 반납하고 야근/철야를 불사한다. 법정휴가를 사용하는데도 회사 눈치를 봐야하고, 퇴근 후에도 업무 관련 연락에 시달린다. 이렇듯 인류의 역사를 통해, 사회의 지배자는 시간을 통제하고 피지배자는 시간을 통제당한다.
누군가 실을 잡아 끌어올리면 불가항력적으로 팔을 들 수밖에 없는 마리오네트 인형이 아니라, 자신의 삶(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만큼 삶에 강렬한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이 또 있을까?
마르크스 <자본론>에서는,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의 대가’라고 분명하게 구분한다. ‘노동력의 대가’란 노동력(일할 능력)이 유지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요컨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착취가 필수’라는 의미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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