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란 책은 독서관련 책에서 몇 번이나 인용되는 걸 봤습니다.
어떤 책일까 싶어 찜해두었다가 이번에 읽었습니다.
이 책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책의 부제는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입니다.
이 책 등장하는 그의 벗들은 아래와 같이 6명입니다. 역알못인 저도 학창시절 많이 들어봤던 이름이 한 세분 있네요.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홍대용, 박지원
책 내용은 마치 이덕무가 직접 이야기하는 자전적 소설처럼 쓰여있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실제 이덕무가 직접 기록한 내용은 아니고, 이덕무의 행적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많지 않은 자료를 기반으로 저자가 살을 붙여 창작한 내용입니다.
이것을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실로 문살을 반듯하게 짠 다음 상상으로 만든 은은한 창호지를 그 위에 덧붙여 문을 내었다”
아주 멋진 표현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덕무 (1741 ~ 1793)
조선 후기 실학자, 학문에 비상하고 시문에 능했으나 서자 출신이라 출세에 제약이 있었다.
그 시절 같은 서자 출신인 박제가, 유득공과 친분이 두터웠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하여 서얼 출신의 뛰어난 학자들을 등용할 때 검서관으로 발탁되었다.
박물학에 정통한 인물로서, 평생 동안 읽은 책이 2만 권이 넘었다.
1793년 검서관 생활의 고된 직무와 생활고를 겪다가 감기와 함께 폐렴 증상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남.
이덕무는 특히, 박제가, 유득공과 친했습니다.
유득공은 이덕무보다 일곱 살 아래이고, 박제가는 아홉 살 아래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친구처럼 터울없이 지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조선 시대에는 나이에 따라 위/아래를 따지는게 많이 심했을거란 생각인데, 이들 관계가 특이했던건지, 아니면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 시대에는 서양처럼 나이게 크게 구애없이 지냈는지 좀 궁금하네요.
박제가, 유득공은 둘 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서자 출신으로 홀어머니가 키웠습니다.
이걸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조선시대 포함 그 이전에는 병에 대한 치료도 잘 안되고, 전쟁 등으로 인해 부모 중 한 분을 일찍 여의는 경우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자식들도 많이 낳다보니, 늦둥이의 경우 더더욱 부모 중 한분이 자신이 어린 나이일 때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클것 같네요.
현대 시대처럼 부모 두 분의 사랑을 받으며 혼인하여 출가할 때까지 함께 자라지 못하고, 우리 조상들 대부분은 어릴 때 외부모 밑에서 외로이 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책에서 이덕무의 벗들(박제가, 유득구, 백동수, 이서구)과 스승(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 과의 만남, 교유에 대해 하나씩의 챕터를 할애하여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각각의 인물들의 사람됨이나 특징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어렴풋이 이름 정도 알고 있던 조선시대 실학자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그들의 생김새, 성격, 성향 등을 알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덕무는 나이 마흔 쯤에 박제가와 함께 중국 사신의 수행원으로 발탁되어 당시 중국의 수도 ‘연경’을 방문합니다.
박제가는 귀국 후 그 곳에서 보고 들은 중국의 수레, 배, 성, 벽돌 등의 내용을 담은 책을 펴내는데 이것이 <북학의> 란 책이라네요.
이들이 산 시대가 1700년대 후반입니다.
200년 조금 더 전의 시대인데, 길다면 길지만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정도?
그 당시만 해도 나름 배웠다는 실학자들 대부분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모르고 살던 시대라고 되어 있네요.
이 부분을 읽는데 앞으로 200년 쯤 후인 내 자식의 자식의 자식쯤이 살아가는 시대.
그때는 어떤 세상일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상이 잘 안되네요.
아래부터는 책 본문의 내용 중 기록해 두고 싶은 문장들입니다.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책 한 권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가로 한 뼘 남짓, 세로 두 뼘가량, 두께는 엄지 손가락의 절반 쯤이나 될까.
그러나 일단 책을 펼치고 보면, 그 속에 담긴 세상은 끝도 없이 넓고 아득했다.
넘실넘실 바다를 건너고 굽이굽이 산맥을 넘는 기분이었다.
책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온기가 없는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오래전부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눈길을 느낀다든가,
제 몸을 벌떡 일으켜서 어려움에 처한 나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전해져 온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느끼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사물을 받아들인다.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싶은 것, 인정하고 싶은 것을 미리 정해 두고, 그 밖의 것은 물리치고 거부한다.
그러한 마음에 기초가 되는 것은 역시 지난날에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은 자신만의 감각이나 경험이다.
이것이 바로 선입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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