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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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찬호

책 소개글을 보면,

저자는 여러 대학에서 강좌를 진행해오고 있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정말 다양한 학교에서 강좌를 진행했네요.

글로벌사이버대, 동덕여대, 목원대, 서강대, 서경대, 세종대, 아주대, 안양대, 한국방송통신대 등

이 책은 저자가 2008년 봄 ~ 2012년 여름에 끝마친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합니다.

몇 몇 책에서 오찬호 작가의 말을 인용할 때 이 책이 자주 등장해서 궁금했습니다.

대체 어떤 책일까.

이십대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인데,
여기서 이십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 암울하기 그지없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더 암울하게 변해버린 이십대,

- 다소 과격하게 말하자면 괴물이 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되어버린 이십대.

- 부당한 사회구조의 ‘피해자’지만, 동시에 ‘가해자’로서 그런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는 존재.

청년실신 : 대학 졸업 후 실업자가 되거나 빌린 등록금을 상환하지 못해 신용 불량자가 됨.

홈퍼니 : Home+Company, 집에서 취업원서 접수에 매진하고 있음

목찌 : 취업이 대학생들의 목을 죈다.

십오야 : 15세만 되면 앞이 캄캄

청백전 : 청년백수 전성시대

삼일절 : 31세까지 취업 못하면 절망

2008년 경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 저자가 대학 강당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토론 수업을 했다.

당시, 비정규직 여승무원들에 대한 학생들 상당수 의견은 이런 맥락이었다.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되잖아요!’

저자가 예상치 못한 반응들이었다.

당연히 자신들이 앞으로 졸업하고 취업하게 될텐데

비정규직의 편에 서서 기업의 착취에 대해 대항할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대학생들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위의 사건?을 계기로 저자는 왜 이십대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수 년간 연구하기 시작했다네요.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이십대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피차 마찬가지 처지인데,

이십대들의 일상적 현실에서는 마찬가지가 아니라는 것.

자기계발 문화에 대해서 무지하게 깝니다.

자기계발을 해야지만 취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사회 시스템 자체가 취업이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인데.

마치 자기계발을 게을리한 사람이 취업되지 않고,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사회가 강요하고 있다는 것.

특히, 말미에서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와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 두 개의 베스트셀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비판합니다.

김난도 교수의 책은 서울대교수가 서울대학생들의 고민에 대해 말한것 뿐이라는거죠.

현재 어느 이십대는 피자배달하다 죽고,

상당수는 학자금 대출 빚에 시달리는데,

청춘은 아파도 된다는 식으로 정서적 위로를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강하게 비판합니다.

저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작년인가 뒤늦게 읽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 못했는데, 이 얘기를 듣고 보니 그렇네요. 청춘들의 고민이라고 소개된 에피소드들이 대부분의 청춘들의 고민이 아닌 극소수 서울대학생들의 고민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읽는 이에 따라 오찬호 작가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

앞서 읽었던 저자의 책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보다는 수월하게 읽힙니다.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기록해 둔 문장들입니다.


상식적으로 ‘열정’을 평가받겠다는 건 그 자체가 퇴행적이다.

열정, 의지, 성실성..

이런 건 지극히 주관적 영역에서 평가되는 것이기에,

본원적으로 객관의 잣대를 들이댈 성질이 아니다.


자기계발서를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책들이 개인의 개성을 사회적 기준에 맞추기를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 보다 세상에 맞춰 나를 바꾸는게

훨씬 효율적이고 이득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게 하나 있다.

인류는 세상을 바꾸면서 진보해왔다는 점을.


‘모르는 것을 줄여가는’ 공부만이 아니라,

‘아는 것을 넓혀갈 수’ 있는 공부.


연세대는 서강대를,

서강대는 성균관대를,

성균관대는 중앙대를,

중앙대는 세종대를,

세종대는 서경대를,

서경대는 안양대를,

안양대는 성결대를 무시한다.

행여나 후자가 전자를 비슷한 대학으로 엮기라도 할라치면

그 순간 전자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 고 난리가 난다.

*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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