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r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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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인도’는 그 기차역에서 내 앞으로 다가와서 나를 잠시 바라보다 지나간 그 ‘소’의 눈망울 속에 존재한다.
그날 바라나시 인근은 온통 안개였다. 곧 온다던 ‘특급’열차는 6시간째 연착되고 있었다. 인도를 한 주만 여행 해보면, 무언가 늦어지는 것, 삶이 오지않는 것을 기다리는 것임을 알게된다.
photo by @raah
바라나시에서 지내는 내내 소똥과 죽음의 냄새들 속에서 지낸 우리는 그날 저녁은 델리의 깔끔한 식당을 예약해 두었었다. 하지만 안개로 기차가 세 시간이나 연착되면서 우리는 예약을 취소했다. 그리고 바라나시 역에서 또 세 시간째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자리 잡은 역 대합실에서 온갖 것들이 뒤섞인 냄새 속에서, 몇 시간째 눈을 감았다 떴다하며 하염없이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몽롱하고 지쳐가던, 긴 기다림 속에 갑자기 그 소가 내 앞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가 왔다. 무릎에 심한 상처를 입은 그 누렁이는 절뚝거리며 바라나시 역사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청 하듯 이사람, 저사람 앞을 바라보다 내 앞세서 잠시 서서 나를 보며 거친 날숨을 뿜었다. 그리고 곧 절뚝거리며 멀어져 갔다.
꿈이나 환상인 듯 했다.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무릎에 피 흘리는 소의 눈망울을 마주한다는 상상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아무도 그 소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차에 치인 것일까. 역으로 들어오는 길 내내 길에 가득한 소똥 때문에 우리는 캐리어를 끌 수 없었지만, 대합실 안에서 소의 콧김을 느낄 줄이야.
### 열차는 달리지 않는다.
일곱 시간이 넘어서 한 밤중에야 기차가 왔다. 인도에서는 안개가 끼면 기차가 달리지 못한다. 기찻길에 사람이나 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이면 간다던 특급기차는 또 여섯 시간을 느릿느릿 기어갔다. 우리가 델리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아침 미명이었다. 모든 일정은 오후로 연기되었다. 그런들 어떠하리. 이곳이 인도인 것을.
인도에서는 일정이란 것이 무의미하다. 입국심사에서 허술한 지문 인식기로 열 손가락 지문을 찍느라 두, 세 시간을 허비할 때부터 우리 일행은 진을 뺐다. 차가 막히고 가이드가 늦는 일이 반복되면서 이곳이 과연 인도로다 하고 적응해 가고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도시 갠지스 강가의 바라나시에서 우리는 진정 이 땅이 기다림의 땅임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강가에서, 소똥 가득한 길가에서 앉거나 쓰러져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이 마쳐지는 죽음의 순간들을 ….
소똥과 화장터의 타다 남은 시체와 나무들, 그리고 걸인들,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 이 도시에서는 현실도, 삶도, 인생도 빛을 잃는 듯 했다. 현실이 빛을 잃었으니 무엇이든 좀 늦어진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가이드의 허술함도 그럭저럭 공감을 얻어가고 있었다.
비행기도오지 않는다.
사실 자이푸르 공항에서 바라나시 행 비행기를 탈 때 우린 그 온전한 결말을 이미 경험했었다. 인도는 비행기도 하염없이 연착되는 곳이다. 몇 시간이고 연착되던 비행기는 갑자기 도착해서 갑자기 떠나 버린다. 그리고 그 수많은 인도 말을 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는 갑자기 도착한 우리 비행기를 어느 게이트에서 타야할지조차 미리 알 수 없다. 그저 기다릴 밖에.
자이푸르 공항에서 세 시간 쯤 대기하던 우리 일행들은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책을 보고 있었다. 인근에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는 사람들이 몇 보였고 누군가는 쇼핑을 즐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방송이 들렸다. “Lee00, Lee00, pack00 블라블라블라!”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대합실이 휑~ 했다.
“아뿔싸.” 부랴부랴 비슷한 처지의 한 사람과 보팅게이트를 확인하니 한층 아래 게이트였다. 정신없이 달려 나가자 활주로 한가운데 서 있는 한 비행기를 안내했다. 우리 둘은 활주로를 달려 아슬아슬하게 사다리를 올라 비행기에 승차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이드와 우리 일행들은 이미 비행기에 탑승 해 있었다. 그제서야 인원을 체크한 가이드는 누군가 한 사람이 여전히 누락되었음을 깨달았다. 얼핏 대합실 내 뒷자리에서 음악에 심취한 한 아가씨를 본 듯 했다. 3분 쯤 더 방송이 이어졌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곧 비행기는 출발했다.
비행 시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홀로 미아가 된 그 아가씨는 다음날 하루 일정을 마치고 이틋날 새벽녁에야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후에야 녹초가 된 모습으로 재회할 수 있었다. 13시간 버스를 탔다고 했던 것 같다…..
버스도 떠나지 않아도
델리에서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역시나 길에서 한 시간 째 옴짝달싹 못하고 막히고 있었다. 우리일행들과 풋내기 새 가이드조차 아무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우리의 허술한 가이드는 전날 저녁 식사 후, 갑자기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며’ 자연스럽게 더 허술한 신참에게 우리를 맡기고 떠나 버렸다. 하지만 우리 일행들은 그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매주마다 수시로’ 위독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지레 짐작하면서도 한 마디도 따지지 않았다. 모두 빙그레 미소지을 뿐이었다.
@raah 였습니다.
보팅을 강요하는 소녀 이미지는@cheongpyeongyull 님이 그려주신 작품입니다.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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