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하고 있는 친구 부부와 함께 일본 배낭여행을 했던 적이 있다. 휴가를 맞아 고향으로 가던 중 우연히 들른 친구 김샘의 집에서
- 다음 주에 일본여행을 떠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곧 애기들이 더 크게 되면 오붓한 여행은 끝이라는 다급한 생각에 부모님께 폐 끼칠 수 있을 때 마지막 젊은 날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여행이란 불쑥 떠나는 것ㅋㅋ
비슷한 처지에 있던 우리들은 매우 강한 공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여권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왠지 바빠질 것 같은 내년 등을 신중히(?) 고려한 결과 바쁜 와중에 아이들 키우느라 수고한 우리 자신들에게 일주일간의 진짜깜짝선물을 주기로 딱! 결정했다.
몇 일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우리는 번개 불에 콩 볶듯 여권을 갱신하고, 급히 여행준비를 마치고 함께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시가에는 연수 핑계를 처가에 아이들을 맡기고 난생 처음 배낭여행이란 것을 시도하고 있었다. 부모님들께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몇 년 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느라 살이 쏙 빠진 우리에게 갑작스런 여행의 시도는 그 자체로도 우리를 행복감에 떨게 했다. 더군다나 친구와의 여행은 아마도 대학 졸업 후 처음인 것 같았다.
여행 일정이며 장소선정 및 통역 등은 모두 이 사건을 기획한 김샘의 몫이었다.
갑자기 혹이 둘이나 붙어 책임감 백배가 된 김샘이 여행 지도며 가이드북을 열심히 연구하는 동안,
우리는 그저 들뜬 마음으로
공항에서 질러버린 지금은 골동품이 된소니 캠코더의 사용법을 숙지하고 있었다.
우리의 여행 계획은 사실 간단했다.
여행사를 통해 예약된 쿄토에 있는 작은 호텔에서 숙박과 조식을 해결한 후 전철이나 신칸센 또는 버스로 여러 여행지를 돌아다니고 저녁에는 숙박지로 돌아오는 싸이클. 때문에 첫날은 주로 교토 시내에 산재한 사원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점심 때는 값 싸게 점심 먹을 곳을 찾아 헤메고, 먹고나면 또 어디를 갈까 관광지도를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일과였다. 둘 째 날은 버스를 타고 금각사와 조금 먼 곳의 성을 보러 갔었다. 점점 담력이 생긴 우리는 셋째 날 기차를 타고 조금 먼 곳이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히메지 성을 관광했다. 만개한 벚꽃을 배경으로 서있는 흰 벽의 희메지성은 아름다웠다.
어제 마침 @nalumsiss님이 싸이홈피 부활을 알려주셔서
오늘 그시절 싸이월드 홈피 밑바닥에 있던 사신을 건졌습니다.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친구였던지라 우리는 그 동안 거의 술 한잔 없이 잘 지내오던 터였지만, 그날 저녁 만큼은 우리에게 멋진 관광을 시켜준 우리의 믿음 약한 가이드 겸 통역사에게 삐루(맥주)한잔을 허락하며 우리의 여행을 자축했다. 마지막 날 저녁 우리는 다음 날 공항에 가야하는 1시 전 까지 어디를 여행할 지를 결정했다. 기차로 한 시간 거리의 나라 현의 세계문화유산 호오류사 였는데, 조금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호류사에는 백제관음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고구려의 건축 양식및 고구려 승려 담징의 금당벽화 등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나의 강력한 건의로 결정하게 되었다. 미술을 전공한 내가 일본까지 가서 일본 문화를 꽃피운 백제 문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나름 중요한 문제 였다.
## 운명의 호오류사(법륭사)마지막 날 아침
관광 후 바로 공항으로 가기위해 모든 짐을 싸들고 조금 일찍 기차역으로 향했다.
경험없는 여자들은 일본이 추우면 어쩌나 비오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죄다 신발과 옷으로 나타났으니ㅠㅠ
등짐에 손마다 가방에 ……마지막 날 새로 산 캠코더에 선물까지 바리바리 든 우리의 발걸음은 제법 가관이었다.
완벽주의자들의 준비성을 속으로 서로 탓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즐거웠다.
나라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광안내 지도의 범위를 벗어나 있었으므로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역에서 우리의 김샘은 친절한 역무원의 안내를 열심히 들었다. 김샘의 영어실력이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여행 중 늘 염려되는 것은 친절한 일본인들의 영어실력이었다. 그날도 역시 역무원은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지만, 조금은 미덥 잖았다. 옆에서 듣기에 그 역무원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Um…Yes, ~um
어쨌거나 친절한 역무원을 통해 우리가 호류사를 다녀올 수 있는 방법을 재 확인한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기차를 탔다. 평일 아침 기차는 서울 전철만큼 붐볐다. 조급한 표정으로 출근전쟁을 치르고 있는 빽빽한 쿄토 시민들 틈에서 손에 손에 짐을 든 네 사람은 우리가 생각해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심스런 풍경이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푸서들에 밀려 전철을 타고 양손에 든 캐리어들이 제각각 도망 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웃을 수 있었다. 교토를 벗어나자 조금 한산해 지며 우리는 열심히 이번 여행의 유익함을 다시한번 입으로 정리하고있었다. 드디어 나라현의 한 역에 도착한 우리는 또다시 손에 손에 짐을 이고 지고, 물어물어 호류사로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시내로 걸어 갔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버스를 타는 곳이 쉬 나타나지 않았다. 시내를 향해 걷던 우리는 팔과 다리가 힘들어 지는 만큼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조금 불안해 져서 두리번 거리던 우리는 길옆에 있는 흰개미연구소라는 상호가 붙어있는 집으로 들어가 길을 묻기로 했다. 흰개미 연구소에는 50대 초반의 반백의 아저씨가 혼자 앉아 있었다. 우리의 설명을 듣던 흰개미 연수소장은 버스승강장의 위치를 정확히 가르쳐 주었다. 김샘의 말이 간만에 영어 좀 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간신히 안심하며 막 길을 떠나는 우리를 지켜보던 그 흰개미 연구소장은 갑자기 자기가 그곳까지 태워주고 싶다는 천사 같은 제안을 했다. 우리는 안 그래도 조금 불안하던 차에 정말 고마운 노릇이었다. 호류사 관광시간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었다. 차에서 우리는 그분을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에는 애매 했으므로 그냥 흰개미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 기적을 경험하다
흰개미 씨!
차는 연구소장님 차라고 보기에는 조금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지만 늘 걷기만 하던 우리에게는 정말 하나님의 선물과도 같았다. 우리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는 그 차 안에서 알게 되었다. 우리를 태운 흰개미씨의 승용차는 구불 구불한 시골 포장도로를 30분도 넘게 달려가는 것이었다. 한 5분이면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던 우리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어머나, 어머나”를 연발하며 말도 안 통하는 일본 땅에서 비행기 놓치고 미아가 될 뻔 했던 우리 운명을 생각하며 안도의 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흰개미 씨의 반백의 새치가 점점 금발로 보이기 시작했다. 차에서 우리는 흰개미 씨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 그 첫째는 우리가 분명히 황당한 일정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고 건축물을 갉아먹은 흰개미를 연구하는 연구사로 그다지 수입이 좋지는 않다고 했다. 취미는 카지노, 가끔 가족들과 여행을 많이 한다고 했다. 미국의 라스베가스 태백 강원랜드 까지 알고 있는 것으로 봐서 전혀 과장이 아닌 것 같았다. 50여분을 자가용으로 달려 도착한 호류사 입구에서 친절한 흰개미씨와 기념 촬영을하고 우리는 몇 번이나 90도로 인사를 하고 호류사로 들어갔다. 입장권은 제법 비쌌다.
호류사에 들어와 안내 책자를 보고 우리는 또 한번 우리의 단순 무식함을 한탄했다. 그곳은 10~20분 만에 보고 나오기에는 너무 넓은 곳이었다. 우리는 참 황당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호류사 5층 석탑 601∼607년법륭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이랍니다.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준 흰개미씨를 향한 감사가 다시 한번 밀려 오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갈 길이 막막한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조급할 수 밖에 없었다.
## 천사를 만나다.
전체를 돌아보기는 힘들다고 판단하고 최고의 루트를 찾고 있을 바로 그 때
우리의 흰 개미씨가 또다시 웃는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 돌아가려다 생각하니 아무래도 우리가 공항까지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아예 호류사 안내까지 해 주기 위해 표를 끊고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불안을 떨치고 볼것 다봄.
그 유명한 담징의 호류사 금당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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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성왕의 모습을 만들었다고도 알려진 일본 호류사 몽전의 백제관음상
그 생김새는본떠서 제작한 것이라고 전한다.
그의 순진한 미소가 천사처럼 보였다. 그는 양손이 무거운 철부지 여행 초보의 짐꾼 역할까지 해 주며 우리와 동행했다.
흰개미 씨의 차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한 실수 중의 하나는 내리는 역을 잘못 선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흰개미씨가 좀더 가까운 역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는 흰개미 씨에게 거푸 감사하다는 인사를 아니 할 수 없었는데 우리는 거기에서 우리가 받게 된 찐~한 친절의 근원지를 알 수 있었다. 큰 은혜를 베풀고도 마땅한 감사를 흔쾌히 받기를 송구스러워하는 흰개미씨의 사연은 간단했다. 꽤 오래전 흰개미씨가 서울을 여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분도 우리와 비슷한 실수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때 그는 서울의 경복궁 근처 어딘가에서 서울의 흰머리 천사를 만난 것이었다. 그 분의 이름도 모르지만 어느 서울의 노신사가 미아가 될 뻔한 흰개미 아저씨를 넘치는 친절로 구해준 것이었다. 머리를 조아려 감사에 감사를 표하는 흰개미 아저씨를 만류하며 그 노신사는 말했다고 한다.
“지금 나에게 감사하지 말고 당신의 나라에서 혹시 당신같은 불행을 당한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 때 나에게 빌린 친절을 갚아주시오”
~~이 대목에서 당시 새벽기도 다니는 경건한 성경공부 맴버들이 느꼈을 전율을 ㅋㅋ
그 서울의 노신사가 예언한 불행한 행운의 한국인이 바로 우리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서울의 노신사의 모습을 흰머리의 뒷모습으로 밖에는 억할 수 없다. 하지만 그분의 모습은 늘 일본에서 만난 흰개미 아저씨의 순진한 미소 뒤로 더 크게 떠오른곤 한다.
####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인천공항에서 돌아오는 밤 버스안 모두가 잠든 네 시간 동안 우리의 입은 쉼이 없었다.
담배가게에 호랑이 드나들던 @raah의 첫 배낭여행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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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부추] 10월 후기 (1)
올해 해야할 일을 늘어놓고 다짐한지 어언 1개월 하고 조금 더 된 시간 … 지켜지는 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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