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클럽] 첫째날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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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이 나의 삶이라니 ……”
미명을 바라보며 끔찍한 예견으로 몸을 떨었다. 점점 밝아질 것은 명백했고 곧 모든 것이 드러나고 말 것이었다. 모든 것이 지나갔고 남은 생은 지루하게 늘어져 녹아내린 엿가락처럼 끈적이며 굳어있었다. 만져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창밖으로는 이제 막 녹아버린 강물이 회색빛 먼지를 덮어 쓰고 어둠속에 굳어 있었다.

스스로에 대해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미궁에 빠지는 고통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일까? 나도모르게 또 다시 지난 날 들을 톱아보고 있다. 이달 들어 수 십 번도 더한 습관이다.
나는 ‘살아있음의 황홀’을 아는 사람이다. 먹고 마시는 즐거움과 아침공기의 신선함은 나를 얼마나 충만하게 했던가. 심지어 화장실에 앉아서도 배설의 쾌감에 미소 지었지. 노을과 아침 해가 아이들의 잠든 얼굴이 모든 것에 감사했었다.

모든 가능성을 가볍게 내 것으로 여기고 도전하고 성취하면서 얼마나 성취감에 몸을 떨었던가. 맑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나는 나 자신을 몰아댔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
달려가 거주지를, 이름을 그리고 직업을 바꾸었다. 거침없이 몇 년이고 인내해서 운명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 내 삶의 희열이었다.
하나 하나 새 이름을 얻을 때마다 내 삶이 더 나아가고 있지 않았던가. 그래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실패한 것도 없어. 변한 것도 없어. 삶은 신의 예견과 의미로 가득했고, 모든 고통과 허무함을 얼마든지 비웃어 줄 수 있었지. 하나님을 목자라 여겼던 그 때가 가장 행복했었지.

그 충만함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모든 질문들을 외면하며 취해 살 수는 없는 일이니까. 어차피 언제고 충분하지 못한 논리는 곤궁해질 밖에. 나는 어차피 그렇게 생겨먹은 것. 이젠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막내마저 기숙사로 보내버리고 혼자 남겨진지 한 달,

이 새벽, 영원히 변함없이 고정되어 버리는 그 불행에 도달해버린 나의 삶을 발견했다. 무언가를 바꾸기에는 나는 이미 삶에 너무 찰싹 붙어 버렸다. 내가 이룬 것들과 누리는 것들. 이 남편과 자식들을 끝까지 애착하게 될 것이다. 무엇 하나 극복하지 못하고, 불 보듯 뻔 한 미래라니.

결혼을 하고도 결국 하나가 되지 못했으니 나는 아직 결혼조차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처음 성에 빠져 있을 때는 결코 그것과 거리를 두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었다. 나는 어리고 미숙했다. 나는 내 미래의 사랑들을 죄다 그 뒤로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탐욕과 욕망을 저급한 유혹으로 치부하고 넉넉하게 이겨내며 스스로 선택하기를 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포기였을까. 그저 흘러왔다.

아이들이, 아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거기서 난 뭘 빨아 먹은 것일까.

아이가 자리기까지 십 수년. 편집증 환자임이 분명할 철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의무감’과 내 도덕성, 내 당위성은 내 생활의 기반이었다. 그 안에서 확신했던 내 안정감과 존재감은 다 무엇이었을까. 누가 강요한 적도 없는데. 아니야. 어차피 다른 삶은 없었어. 어쩌겠는가? 결혼하고 애 낳은 가장의 삶에 다른 무엇이 가능했겠는가.

그런데 이 끔찍한 불안감은 무엇인가?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붙잡았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그 하나 하나가 지금은 허무와 지루함만을 남기고 다 떠나가 버리고 없다.

그 모든 게 나만의 애착이었나. 제 스스로 속아서 살아온 것일까.
이미 박제 된 삶을 받아들이기엔 내게 남겨진 여정의 길이 너무나 길고 멀게 느껴졌다. 너무 늙어버린 남자, 하지만 계속 이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살아야 하다는 것은 더 큰 실수가 될 터였다.
창밖에 가득한 패패감이 그런 삶이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는 증거였다.

지루함.

갑자기 아파트 창문과 벽들이 내 오해해버린 인생, 내 ‘늙음’이라도 되는 양 나를 옥죄고 있었다. 모든 벽지에서 구속의 연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떠나자! 그런데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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