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백발 할머니 인물수채화 과정-How to draw a painting in water colors[by @raah]

2주전에 보여드린 흰머리 위안부 할머니 과정샷을 드디어 올립니다.
흰머리와 주름표현이 많다보니 러닝타임이 길어서 이번 과정샷은 무려 3분입니다. ^^
아무도 갖고 싶어할 리 없는 이 그림을 제가 다 그리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요? ㅎㅎ

과정영상[Video]

https://youtu.be/sQJkJtRNzFM

How to draw a portrait

1 .일단 수채용 색연필로 드로잉 합니다.
형태를 그리기 어려운 분은실물크기 사진을 프린트해서 먹지를 사용하면 편해요

First, I draw with a watercolor pencil. It’s convenient to print a photo of the water in a small room and eat it.

2.마스킹고무액으로 미리 화이트 포인트를 찍어줍니다.
콧날과, 맑은 눈동자, 이마, 머리칼, 옷의 줄무늬에 화이트용 마스킹 고무액을 처리했어요.

Draw the white point in advance with the masking material.I treated the nose, clear eyes, forehead, and hair with a wool mask.

.3. 그리고 밝은 색으로 한 번 전체 붓질해서 수채 색연필을 녹입니다.
밝은 색 부분은 너무 어두운 색은 사용하지 않고 중간색 정도로만 덧칠 했어요

Then melt the water-color pencil with a bright brush.I didn’t use too dark a part of the color, I just painted it in half-tone.

  1. 밝은 색이 마르기전에 중간 톤을 함께 입혀서 자연스럽게 번지도록 합니다.
    턱선, 눈동자 안쪽, 코 아래 등 그늘진 부분은 브라운 톤으로 칠해요. 밝은 부분을 침범하면 안되어요
    깊은 주름은 짙은 물감원액으로 선을 넣은 후 밝은 물감으로 번지게 그렸어요

    When the light color is dry, put a medium tone together to spread naturally. Use a brown tone to paint the shaded areas of the jaw line, inside the eyes, and below the nose. Don’t break into the light.

  2. 어두운 부분마무리 칠한 후 고무액 뜯어내고 세부 묘사를 하면 완성입니다.

    Finish the dark part, rip off the rubber and describe it in detail.

  3. 배경은 전체 물칠하고 밝은색을 칠한 후 휴지로 대충 흡수하면 자연스러럽게 묘사됩니다. > The background is a full coat of water, a bright color, and then roughly absorbed by waste paper to describe natural vew.

흰 글씨는 광고업체에서 씨트지에 커팅 인쇄해서 뜯어 붙였는데 첨 해보는 데다 너무 힘들었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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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용입니다 실제 모델은 필리핀 할머니 이야기 입니다.

위안부.jpg

실제 이야기의 모델은 바로 이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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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시사in<===클릭!

위안부의 날 즈음에 그린 그림입니다.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by:@raah입니다.

event 2. kr-lovesharing 수채화를 그려드려요.

원하는 사진을
https://open.kakao.com/o/sDNAlUG 로 스팀아디와 함께 보내주세요.

  • 사진보내시는 채팅방은 1:1입니다.
    인물일 경우는 여러 장 보내 주세요.

    보내주신 분 중에 두 분 선정하여 그려드립니다.

kr-lovesharing: 종이 작품을 받기 원하시면(선택)

30 SDB를 보내시면 보내드립니다. ^^

(After cheering with comments and ,restemeed and upvote!! ^^)
Please select more than one person
We will draw the Landscape paintings or portrait of the person you want.
It will be sent for 30 steemdollars.

*수익금은 전액 컴패션 해외결언아동 후원을 늘려가는데 사용됩니다.
현제 르완다, 태국, 스리랑카의 세 아동을 매 달 후원중입니다.(= 숨는다.)
어제 6살인 태국 아이가 첫 편지를 보내왔어요 저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고 흑!!

  • lovesharing 인증사진은 이전 포스팅을 확인하세요—> 클릭
    아직은 스팀에서 인출도 못해봤지만, 스팀이 올라서 100명 후원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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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ostfiles.pstatic.net/MjAxODAzMTRfNTUg/MDAxNTIxMDEyOTY4NzAy.WkPZT5ZqHJDAo3iYZ1Rw7Vrq4JMFIQ_F-NbgQ8f6nisg._ET7V9tqnxbBVkPG7Opf6vVOiQBFoz6Y-SlO9U6htVgg.JPEG.raah2/%EB%B3%B4%ED%8C%85.jpg?type=w773
보팅소녀 이미지는@cheongpyeongyull 님이 그려주신 작품입니다.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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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청춘의 독서]booksteem 최인훈과 유시민

한국 근대정신사 최고의 봉우리 중 하나인 전후 최대 작가 최인훈 씨가 지난달 작고하셨습니다. 전후 두 체제의 모순과 더러운 이면을 알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회색인]이었던 그의 이방적 입장이 최선의 도피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권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요.

유시민은 이제 유명인이지만, 아직도 잘 모르는 분이 있으려나 싶어서 좀 소개합니다.
전 이분 책을 자주 읽었는데 10년전 쯤 상사가 제가 읽는 [국가란…] 표지를 보고
“유시민? 얘가 뭘 안다고?”하신 기억이 있네요. 어른들이 많이 싫어하셨죠 ^^

유시민은 요즘 민주당대표로 뜨는 이해찬씨 와도 인연이 깊은 분이죠 ㅎ

유시민의 [청춘의독서]에서도 그의 대표작 광장을 소개한 적 있습니다. 그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해 볼까합니다.

어떤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개인의 욕망

최인훈, 『광장』

최인훈의『광장』은 60년 4·19 혁명과 이듬해 5·16 쿠데타 사이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덕분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4·19로 세상이 바뀌었지만 아직 한국전쟁으로 인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팽팽하던 시절이었다. 주인공 이명준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철학과 학생이다. 월북한 코뮤니스트 아버지로 인해 어느날 경찰서에 붙잡혀 가 수모를 당한다. 얼마후 월북한다. 혁명정신을 잃어버린 사회주의 공화국에 크게 실망한 명준은 북에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남과 북, 두 체제 사이에서 갈등하다 전후에 제3국을 선택한다는 정치적으로 충격적인 소설의 설정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컸다.

◼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

유시민이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그에게 감명을 대목은 ‘한국 사회 광장의 추악함이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정치? 오늘날 정치란 미군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서, 깡통을 골라 양철을 만들고, 목재를 가려서 마루를 깔고 나머지로 목축을 하는 것과 뭐가 달라요. … 서양 정치사회는 하수도 시설이 잘 돼 있단 말이에요. … 정치도 똥오줌은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하수도와 청소차가 없어요. 한국 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만 더미로 쌓였어요. 모두의 것이어야 할 꽃을 꺾어다 저희 집 꽃병에 꽂구, 분수 꼭지를 뽑아다 저희 집 변소에 차려 놓구, 페이브먼트를 파 날라다가는 저희 집 부엌 바닥을 깔구. 한국의 정치가들이 정치의 광장에 나올 땐 자루와 도끼와 삽을 들고, 눈에는 마스크를 가리고 도둑질하러 나오는 것이지요.. ….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요고가 배신, 살인의 광장. 그게 한국 정치의 광장.

경제의 광장엔 도둑물건이 넘치고. 모조리 도둑질한 물건, 앙탈하는 말라빠진 손목을 도끼로 쳐 데어버리고 빼앗아온 감자 한 자루가 거기 있습니다. . 피 묻은 배추가 거기 있습니다. 정액으로 더럽혀지고 찢긴, 강간당한 여자의 몸뚱이에서 벗겨온 드레스가 거기 걸려 있습니다. 56

유신시대였다. 대의원들이 체육관에 모여 단일부호 현직 대통령을 만장일치로 뽑고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1/3을 임명하고, 정부가 외국에서 꾸어온 돈과 세금으로 권력과 결탁한 정치인이 기업인들에게 제멋대로 나누어주던 시절이었다.
이명훈은 어느날 경찰서에 붙들려가 고문을 받는다.

매질을 거듭한다. 어깨, 허리, 엉덩이에 가해지는 육체의 모욕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 이거구나, 혁명가들도 이런 식으로 당하는 모양이지, 그런 다짐조차 어렴풋이 떠오른다. 몸의 길은, 으뜸 잘 보이는 삶의 길이다. 아버지도?
처음, 아버지를 몸으로 느낀다.
“엄살부리지 말고 인나라우. 너 따위 빨갱이새끼 한 마리쯤 귀신도 모르게 죽여 버릴 수 있어. 너 어디 맛 좀 보라우.” p 137

이명준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아버지가 북한방송에 나온다는 이유로 개처럼 얻어 맞는다. 형사의 협박은 유시민이 그 책을 읽었던 시절에도 유효했다. 유시민은 이명준에 정서적 연대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이런 새끼들 속이란 더 알쏭달송한 거야. 내 사찰계 근무 경험으로, 극렬한 빨갱이들 가운데는 이 새끼 같은 것들이 꽤 많아. 보기는 버러지도 무서워 할 것 같지. 이런 일이 있었어…….”
그자는 명준을 젖혀 놓고 동료 쪽으로 돌아앉아서 겪은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명준은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또 한 번 놀란다. 그는 자기 전성시대라면서, 일제 때 특고 형사 시절에 좌익을 다루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특고가 마치 한국 경찰의 전신이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 명준은 자기가 마치 일본 경찰의 특고 형사실에 와 있는 듯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 일제는 반공이다, 우리도 반공이다. 그러므로 둘은 같다라는 삼단논법. 그는 옛날은 좋았다고 한다. 그건 일본 시대를 말하는 소리다.

◼ 소문뿐인 혁명

월북한 공산주의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죄 없는 청년을 모욕하고 폭행하고 위협 한 남의 불합리한 현실, 대한민국 국민이면서도 법률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다는 절망감,모멸감, 공포감이 그를 북으로 내 몰았다. 이명준은 월북한다. 그러나 월북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혁명정신을 잃어버린 사회주의 공화국에 크게 실망한다.

잿빛 공화국이었다. 이 만주의 저녁노을처럼 핏빛으로 타면서, 나라의 팔자를 고치는 들뜸 속에 살고있는 공화국이 아니었다…. 혁명의 공화국에 사는 열기띤 시민의 얼국이 아니었다. ..어느 모임에서나 당사(黨史)가 외워졌다. ‘일찍이 위대한 레닌 동무는 제X차 당 대회 에서 말하기를 ······’,
눈앞에 일어나는 일의 본을 볼셰비키 黨史 속에서 찾아내고, 그에 대한 처방 역시 그 속에서 찾아냈다. 목사가 성경구절을 들춰 내듯이, 黨史가 코뮤니스트들이 부르는 교양이었다. 어느 모임에서나 판에 박은 말과 앞뒤가 있을 뿐이었다. 신명이 아니고 신명난 흉내였다. 혁명이 아니고 혁명의 흉내였다. 흥이 아니고 흥이 난 흉내였다. 믿음이 아니고 믿음의 소문 뿐이었다. p 141

일류 코뮤니스트의 집에서 … 구역질나는 부르주아 집안의 나날이었다. … 혁명을 판다는 죄, 이상과 현실을 바꾸면서 짐짓 살아가는 죄. 그걸 모를리 없는 아버지가 계면쩍어 하는 몸가짐일 것이다. … 이게 무슨 인민공화국이고 소비에트입니까? … 저는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보람 있게 청춘을 불태우고 싶었습니다. 115

서양 가서 소위 민주주의를 배웠다는 놈들이 돌아와서는, 자기 몇 대조가 참판을 지냈다는 자랑이나 하면서 인민을 걷어차고 …일본 놈들 밑에서 벼슬을 지내고 아버지 같은 애국자를 잡아 죽이던 놈들이 무슨 국장, 무슨 청장자리에 앉아 인민을 호령하고 있었습니다. … 수많은 고결한 심장의 소유자들이 이런 공화국을 만들자고 중세기 순교자들 보다 더 거룩한 죽음을 한건 아니잖습니까? 그들의 피에 대한 배반입니다. 누군가가 위대한 선구자들의 피를 착취하고 있습니다. 117

개인적 욕망이 터부로 되어 있는 고장, 북조선 사회에 무겁게 덮인 공기는 바로 이 터부의 구름이 시키는 노릇이었다.
인민이 주인이라고 멍에를 씌우고, 주인이 제 일하는 데 몸을 아끼느냐고 채찍질하면, 팔자가 기박하다 못해 주인까지 돼 버린 소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걸음을 떼어 놓는다.

광장에는 꼭두각시 뿐 사람은 없었다. 사람인 줄 알고 말을 건네려고 가까이 가면, 깎아 놓은 장승이었다.

젊은 유시민은 이 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볼쉐비키혁명과 프랑스 시민혁명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지적인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인민 정권에서는 인민의 망치와 낫이 피로 물들여지며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전세계 약소 민족의 해방자이며 영원한 벗’인 붉은 군대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바스티유의 노여움과 기쁨도 없고, 동궁(冬宮) 습격이 아슬아슬함도 없다. 길로틴에서 흐르던 피를 본 조선 인민은 없으며, 동상과 조각을 망치로 부수며, 대리석 계단으로 몰려 올라가서, 황제의 안방에 불을 지르던 횃불을 들어 본 조선 인민은 없다. 그들은 혁명의 풍문만 들었을 뿐이다. p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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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사파, 1980년대의 이명준

북한 방송에서 들었던 문제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읽었다. 붙잡혀 갈 일이었지만 나는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할 목적”이 아닌 호기심에 읽었다. 그저 지배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해설서일 뿐이었다. 나는 의아했다. 노동자들이 이 ‘논문’을 받아들고 도데체 왜 울었던 것일까 무슨 울만한 감동이 있다는 말인가? 이런 논문이 나왔다고 우는 사회가 정상일 수 있을까? 유시민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이미 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1980년대의 한 무리 청년들이 집단적으로 관념적 월북을 시도했다. 주사파학생들이다. 이명준처럼 강요된 월북이었다. 광주학살을 저지른 정치군인들의 인권유린과 부정부패, 압도적 물리력에 대한 증오감과 좌절감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광장’을 읽지 않고 ‘주체사상’을읽었다. 그들은 교도소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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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정 없는 삶을 거부하다

6.25에 참전하서 남북 모두에 절망한 주인공은 스스로를 파괴하려한다.
나는 이번 싸움을 겪어서 다시 태어나고 싶어. 아니 비로소 나고 싶다는 말이야. 이런 전쟁을 겪고도 말끔한 손으로 돌아가소 싶지 않다는 거야. 내 손을 피로 물들이겠어. …

싸움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자는 바보뿐이야. 성경의 게으른 종처럼 전리품을 긁어 모아야지. 내 손으로 뺏아야 돼. … 싸움이란 그런거야. 옛 은인의 아들, 맘맞는 농담을 지걸이던 짝패. 그리고… 나는 그걸 짓밟겠다는 거야. 그 썩어진 모랄의 집메 불을 지르겠단 말이거든. 그래서 범죄인이 되겠어. 또는 인민의 영웅이 되겠어. 마찬가지 말이야. 어쩔수 없이 나를 얽어매는 죄를 내 손으로 만들겠다는 거야.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부르주아 원죄 따위 넋두리가 아니야. 내손으로 밝히 해낸 나의 죄. 그래서 태어나겠다는 걸세. 내 탄생을 도와주게. 그리고 자네 부인이. 지금쯤, 이층 내 방에서 기다리기고 있을거야. 그녀도 나의 탄생을 도와야 해. 148

그는 사람을 만나야 했다. 그러다 운이 좋아 은혜를 만났다. 명준이 스스로 사람임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안을 때 뿐이었다.
오른손으로, 은혜의 군복 앞 단추를 끌렀다. 다음에는, 가죽띠를 끌렀다. 마디가 굵은 버클이 무디게 절그럭거린다. 이 고운 몸에, 이 무슨 흉한 쇠붙이란 말인가. 이 몸을 볼쇼이 테아트르의 대리석 기둥이 받치는 놀이마당에서, 전차가 피를 토하는 이 스산한 마당까지 불러 온 자는 누군가. 이 예술가의 가냘픈 몸의 도움까지 받아 가면서 해내야 할 사람 잡이에 내몰기 위해서? 안 된다. 너희들이 만일 인민의 이름을 팔면서 우리를 속이려 든다면, 우리도 걸맞은 분풀이를 해줄 테다. 사람을 얕잡아보지 마라. 너희가 한 푼을 속이면, 어김없이 한 푼을 속히 우리라. 전차와 대포를 지키라고 너희들이 데려다 놓은 자리에서, 우리는 원시의 광장을 찾아가고 있다. 이렇게. 단추와 가죽 허리띠를 끌러 낸 풀빛 루비슈가 웃저고리를 벗긴다. 그녀의 드러난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p 153
명준은 사령부에서 떠도는 소문을 들었다. 총공격이 가깝게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알렸을 때, 은혜는, 방긋 웃었다. “죽기 전에 부지런히 만나요, 네?”
그날 밤 명준은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렸으나, 끝내,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까맣게 하늘을 덮고 나타난 유엔 공군의 폭격기는, 고맙게도 모여 준 공산군 화기와 병력을 갈겨 댔다. 낙동강에 물이 아니라 피가 흘렀다는 싸움은 이날의 그것이었다. 은혜는 부지런히 만나자던 다짐을 아주 어기고 말았다. 전사한 것이다.

어디에 도 갈수 없었던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중립국’을 선택하고 결국 스스로를 죽인다.

유시민. [청춘의 독서]

유시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은 으레 “……인생이 그런 거예요.” 혹은 “권력이 그런 거예요.”라는 말을 잘 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생각들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춘의 독서』의 매력도 거기에 있다. 유시민은 서울대학교 입학 후 농촌법학회라는 서클에서 가입하게 되는데 신입생 환영회에서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변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해 선배들을 당혹시켰다고 한다. 바로 랑케의 이론이다. 그런 그가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인식을 바꾼다. 그리고 실천한다. 이제 학생 유시민에게‘국가와 애국심’이란 권력자의 폭력의 도구에 불과했다. 그는 그의 책 [국가란 무엇인가] 서문에 톨스토이의 글을 싣는다.
“애국심은 권력자가 군대를 장악하고 동원하는 데 쓰는 파괴적 감정이다.”

이후 유시민은 3학년 때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 된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 회장은 심재철이었다.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후 1980년 봄이 되면서 민주화 운동은 더욱 가속화 되고 5월 15일 서울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다.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수만 명의 학생들이 계엄 해제 및 신군부 퇴진을 요구했다. 밤 8시까지 계속된 시위에서 시위 지도부는 계속 시위를 할 것인지 해산할 것인지를 두고 격렬한 토론을 벌였고 심재철은 철수를, 이해찬과 유시민은 철수 반대를 주장했다. 결국 심재철의 의견에 따라 운집한 학생 시위대는 해산하게 되는데, 이것을 ‘서울역 회군’이라고 한다.
(훗날 심재철 학생회장은 새누리당으로)

이후에도 교내 학생 운동에 활발히 참여하다가 군사 정권에 의해 투옥되었다. 당시 민주화 운동가들을 감옥에 보내는 대신, 최전방으로 입대시켜 고생을 좀 하게 하는 이른바 녹화사업에 의해 1980년 강제 징집되어 화천군에서 복무한 후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입대해서도 군사 정권에 의해 관심사병으로 지정되어 몇 번이고 전출과 전입을 반복하고 사상 검증이랍시고 끌고 가서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서울대 복학 후 유시민을 세상과 만나게 만든 서울대 프락치 사건 (학생운동권의 민간인 고문 사건)에서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를 써서 화제가 되었다. ‘서울대 프락치사건’이 역사적으로 굳어진 사건명이지만, 프락치로 몰린 전기동씨가 언론중재위원회의 중재요청 등으로 일부 언론에서는 ‘서울대 민간인 감금폭행 고문조작’사건으로 변경해 부르기도 한다. 24살에 항소이유서를 쓴 이후 그의 글쓰기가 시작된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는 1992년에 졸업하였고, 이후 독일로 건너가 마인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이해찬 당시 평화민주당 의원의 의원실 자원봉사자. 이때는 공식 보좌관이 아니라 보좌관 급여를 나눠 섰다고 한다.

16대 보궐로 당선되어 여의도에 입성했을 때부터 빽바지 사건으로정치생활 내내 싸가지 없는 좌파의 상징이었지만,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다. 기초노령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장애수당, ‘장애인차별금지법’등 소외계층 소득보장 노력을 기울였다.

국민연금 개혁을 실행하기 위해 국회에서 직접 발로 뛸 정도로 열정적으로 추진했으나 당시 한나라당의 극심한 반대로 보험료율을 15.9%로 인상하는 대신 소득대체율을 60%에서 2028년까지 40%로 점진적으로 인하시키는 것으로 타협했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정치의식은 그의 책 [국가란 무엇인가]에 많이 소개된다. 그는 국가를 충성해야할 절대적 존재로 여기는 것은 우려한다. 오히려‘잘 다스려야할 괴물’처럼 여긴다.국가는 학술적용어로 괴물(리바이어던)맞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도 마찬가지다.


ISBN: 9788901101569

국가가 악을 저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덕이 개인의 이성인 반면 국가를 지배하는 것은 집단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집단에는 양심이 없다. 니버는 세계대전을 보고 개인과 국가가 상이한 원리에 따라 행동함을 밝혀냈다.
마르크스의 사회혁명론은 틀렸다. 사회혁명은 발달된 산업사회가 아니라 농업국가에서 일어났다. 국가가 폭력만으로 인민을 지배하는 것도 결코 아니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가 폭력은 인민에 ‘대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행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국가란 무엇인가 p 144]
복지국가론은 철학차원의 이론이 아니다. 선,정의를 실천하는 제도의 종합으로 봐야 옳다.

정치는 동기보다도 결과가 중요한 활동이다. 정치는 결과로 책임져야한다. 막스 베버가 강조하는 것은 책임윤리이다. 목적윤리 신념윤리는 믿음대로 행동하고 결과를 신에게 맡기지만, 책임윤리는 우리 행동의 예견할 수 있는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의 정치할 때 문제는 동기가 중요하고 결과에 책임지려는 의식이 부족한 점이다. .. 가장 극단적 사례는 한국전쟁이다. 김일성은 신념 윤리가처럼 행동함으로써 500만명을 희생시켰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한반도에 사회주의 통일국가를 세운다는 신념, 주관적으로는 옳다고 믿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결과로 평가받아야할 정치적 행위였다. (앞의 책 p 261)

유시민은 이후 선거에서는 줄줄이 낙선했다. 정계를 떠나 다시 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한마디로 한국 근현대사를 치열하게 몸으로 살아낸 사람이다.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 그의 말이 공감이 된다. 그런 격동의 시기 마다 그는 길을 잃었고, 그의 말대로 ‘아픈다리 달래며 동행했던 사람들도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 장애물이 나타날 때마다 그의 지도는 ‘책’이다.

[청춘의 독서]는 젊은 시절에 읽은 책을 몸으로‘겪어낸’사람에게서 듣는 책 이야기다. 그는 서울역 데모현장과, 고문실에, 전방 군대에, 국회에, 한국 현대사의 거의 모든 곳에 있었다. 그 때마다 책이 함께했다. 현실에서 느끼는 의문에 대해, 책 속에 답을 찾았다. 그는 책을 겪으면서 그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치를 경험하기 전과 이후 혹은 경험과 상상 사이에 놓인 생각의 차이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그 생각의 차이들이 고전의 다른 얼굴들을 보여주고, 이제껏 들어가 보지 못했던 고전의 다른 입구를 열어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 혹은 차이를 만든 시간에 대한 배움도 찾을 수 있다.

리영희 선생이 쓴 글과 같이 유시민 또한 ‘인식과 행동을 일치시킨 지식인’이라 평하면 그는 매우 흡족해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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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아래에서/ 강릉전복해물뚝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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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강릉으로 간다는 뉴스를 보고 태풍보다 빨리달려 강릉에 와보니
비가 안오네요
아침해장으로 시원한 오션뷰해물뚝배기 먹으러 갑니다
강릉 경포부근엔 어마어마한 횟집과 해물탕집이 셀수도 없지만 좋은집은 따로있죠
늘 대기줄 늘어진 뒤에 서는게 싫은 저는 이런날을 노렸습니다

엥? 대기줄이 없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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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이 살아있네요

홍합도 푸짐하고
이가격을 가성비 좋다고들 하는 이유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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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복을 국물에 넣으려고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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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비 관자가 맛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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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해물이 끝없이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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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릇 요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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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틈이나 떠 먹어본 국물이 시원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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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엔 전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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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
먹지도 못했는데 벌써 원기회복 된 느낌 입니다

가성비 좋은집 맞네요

아쉬운점은 좋은사람과 함께오지 못하고 혼밥 ㅋㅋ

에큰하게 국물 들이키고 나오니
비도오고 파도도 거칠어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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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정보

원조강릉전복해물뚝배기

score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 창해로350번길 182-1 창해 로 350 번길 5


태풍의 눈 아래에서/ 강릉전복해물뚝배기

이 글은 Tasteem 컨테스트
싸고 좋은 곳은 있다, 가성비 좋은 맛집에 참가한 글입니다.


테이스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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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금성’ 특수공작원 박채서씨 영화 <공작> 어디까지 팩트? [booksteem]

‘흑금성’ 특수공작 일대기를 담은 영화 <공작>을 보고 왔습니다. 2권짜리 책 <공작>도 출간됐네요. 보고 나서 저게 진실이라면, 이나라 정보기관 완전 썪었네!!! 했는데

흑금성 박채서씨의 기사를 보니 거의 백퍼 사실 맞네요 ㅠㅠ

기사를 중심으로 영화내용 중 일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진실이 궁금하잖아요 ^^
<시사저널><시사in> 참조 ISSN:977197639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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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특수공작원 박채서씨‘흑금성’은 원래 국군정보사령부 대북 공작관이었다. 박씨의 공작 능력에 주목한 국정원이 그를 스카우트했다. 그는 북한 보위부에 위장 침투해 1997년 6월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까지 만났다.

박씨는 1977년 3사관학교를 졸업 소위로 임관했고 참모총장상을 받을 만큼 뛰어났다. 1990년 소령 으로 국군정보사령부 공작단 본부/ 한미합동공작대(902정보대)에 파견된다. 당시 그는 미국 정보 요원들과 함께 북한 핵개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했다.

*영화 전반부 교수포섭과정은 안기부가 아니라 902정보대 작품이네요.

“3년 공작 끝에 1992년 4월경 중국과학기술대학에 적을 둔 한 교수를 포섭했다. 그로부터 북한이 저급한 수준의 핵탄두 2개를 개발했다는 정보와 근거자료를 입수했다.”
영화에서 공작원이 그 교수에게 공을 들여 접근한 뒤 남한에서 열린 한반도 세계평화포럼에 초청- 미CIA와 공조한 포섭 공작이었다.

영화에서 북핵 개발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조선족 교수에게 현금 100만 달러와 두 자녀의 미국 시민권 및 유학을 제공한 것은 국정원이 아니고 CIA였군요 ^^

이런 박씨의 공작을 보고, 1995년 3월 안기부는 그를 스카우트하고 정보사로부터 사업 전체를 턴키방식으로 넘겨받았죠. 박채서씨는 이때부터 안기부 해외공작실 소속 공작원(암호명 흑금성)으로 대북 특수공작에 투입됐습니다.

> 정식 인가 공작이었다. 대통령 또는 안기부장 승인,국가 예산과 행정력을 동원,국가사업으로 추진한다는 뜻 공작 전반이 국내법상 보호를 받는다.

박씨는 ‘아자커뮤니케이션’이라는 광고회사 전무로 위장 취업했다.
남북 합작 광고를 찍는 사업을 추진하며 북한을 오갔다.

남,북 양측으로부터 신임 얻어 북한 보위부에 포섭당해

‘이중 스파이’로 공작을 벌일 계획이었다.

계획대로 그는 보위부에 위장 포섭되면서 남북 양측으로부터 신임을 받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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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는 묘향산 국제친선관람관 별관에 소장돼 있던 골동품 처분을 관장하고 있었다.
이를 제 값에 매각해줄 신뢰할 만한 파트너를 찾던 중 장성택 라인에 박채서씨가 골동품 6점을 받아 서울로 반입해 비싼 값에 처분해주었다. 이 모든 과정이 안기부 협력 속에 이뤄졌다.

박채서씨의 특수공작 성과에 청와대와 안기부는 고무됐다.

북한 수뇌부에 정보기관의 공작이 접근한 첫 사례

1996, 1997년 연속 안기부가 공작원 최우수자로 선정.
각각 4000만원과 5000만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박씨는 1997년 6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접견했다.

남한 정보기관의 공작원이 북,위원장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박씨에게 30분에 걸쳐 세 가지 사항을 얘기했다.
광고사업, 묘향산 골동품 처분. 그리고 뜻밖에도 남한 대선 이야기였다.
“남조선의 12월 대선이 공화국을 위해 매우 중요하니 관계 사업일꾼들과 합심해서 열성적으로 공작해달라고 주문했다.”

북한은 예상과 달리 김대중 후보를 가장 껄끄러워했다.

첫째, 김 후보는 북한이 다루기 어려운 노련한 인물이고,
둘째, 당선하면 친북 이미지를 불식하려고 더 강한 반공정책을 펼 가능성.
셋째, 북한 인민들에게 김대중 후보를 민주투사로 선전해왔는데, 투사를 비방할 명분이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이회창 후보도 아버지가 골수 친일파였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강하게 보였다.
북한은 당시 이인제 후보를 가장 선호했다.

박씨는 귀국 후 안기부에 김정일 위원장 면담 결과와 대선 개입 의지를 보고했다.
권영해 안기부장은 이회창 후보를 밀었다.지지 배경에 미국이 있다는 첩보가
김영삼 청와대는 이인제 후보를 지원했다.

남북 수뇌부 양쪽에서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대선 공작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박씨는 “정동영씨한테 북한이 왜 김대중 후보를 싫어하는지, 그리고 김대중 낙선을 위한 첫 번째 공작으로 천도교 교령 오익제 월북사건부터 줄줄이 터지게 될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그해 8월 오익제 천도교 교령이 월북했다는 뉴스가 뜨자마자 그제서 정 의원이 박씨를 찾았다. 당시 박채서씨는 광고사업 협의차 평양에 있었다.

“김대중-정동영은 안기부의 기획 월북이라 하고, 권영해 부장은 정동영 의원을 고소한다고 하고 난리도 아니더라.”

선거가 임박할수록 박씨가 처음 제보한 안기부 발 북풍 공작 시나리오가 하나씩 실체를 드러냈다. 김대중 캠프는 다급해졌다.

1997년 11월5일 밤 김대중 후보가 직접 박씨를 만났다. 김 후보는 북풍 공작을 막아달라고 그에게 요청했다.

“김대중 후보가 탄 차에 오르자마자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박 선생, 대통령이 되고 싶소. 그런데 북풍을 못 막으면 난 안 되오. 박 선생이 도와주시오.’ 그 말만 김대중 후보가 하더라. 나는 ‘알았습니다’ 외에는 아무 말 안 했다.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본심 이상 솔직한 게 어디 있나.

얼마 후 북풍을 막으려면 권영해 안기부장을 막으라고 조언한다. 천요택의원이 그를 찾아가 ‘묘향산 골동품 건’때 뒷돈 먹은 것을 폭로하겠다고 담판. 결국 막아냈다. 장병들 목숨이 오가는 남북 충돌쇼가 요런 개인적 사정으로 출몰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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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당선 후 북풍공작 수사가 진행회면서 안기부는 해외 공작원 정보보고를 짜깁기해서 이른바 ‘이대성 파일’을 언론에 공개했다.
‘블랙요원’ 박채성씨의 신분이 안기부에 의해 ‘노출된 것이다.’

이정도면 영화는 거의 90%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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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서씨

1998년 위로금 받고 안기부에서 해직됩니다.
할 일 없어진 그는 중국 건너가 하던 사업 재추진했고, 노무현 정부시절 이효리와 북한무용수 광고에 관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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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권바뀌고

MB때인 2010년 갑자기 체포되어,

북한에 군의 작전교범 등을 전달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박채서씨는

2016년 6월 만기 출소했다. 그는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다.

“재심을 청구하겠다.”

“공작원인 내가 간첩질을 했다는 건 진실도 아니고 내 인생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공작원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으면 어떤 공작원이 사명감을 가지고 음지에서 일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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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팅소녀 이미지는@cheongpyeongyull 님이 그려주신 작품입니다.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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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teem 자기앞의 생] 에밀아자르 or 로맹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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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가리는 탁월한 지식인이다. 그의 삶을 보면 은근이 열등감이 밀려든다.
한번 밖에 탈수 없는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받은 사람.
로맹 가리(RomainGary, 1914~1980)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4세 때 프랑스로 이주. 법학을 공부한 후 공군에서 1940년 전투기조종사.
첫 소설 『유럽의 교육』이 1945년에 비평가상.
같은 외교관으로 불가리아, 볼리비아, 미국에 체류했다.
『하늘의 뿌리』로 1956년 공쿠르상을 받았다.영사 시절에 영화 감독을 하며 배우22살 연하 진 세버그를 만나 결혼.
『레이디 L』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1962), 『이 경계를 넘어서면 당신의 승차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1975), 『여자의 빛』(1977), 『연』(1980) 같은 소설을 남겼다.

  • 1980년 파리에서 권총 자살했다.

사후에 남은 기록을 통해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그로칼랭』(1974), 『가면의 생』(1976), 『솔로몬 왕의 고뇌』(1979), 그리고
1975년 공쿠르상을 받은 『자기 앞의 생』을 썼음을 밝혔다.

로맹가리는 편견과 제국주의 전쟁과 민족주의 판치던 20세기 한 복판을 살아가면서 그런 이념들을 너무도 역겨워하며 살았다. 그의 생각은 [인간의 문제]에 노골적으로 쏟아놓았다. 요 책은 다음에^^

그의 책들은 전쟁, 가난, 학살, 이념, 섹스 와 같은 것들이 이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저지르고 행해지는 행태를 스스로 직면하게 만든다. 항상 독특하고, 번쩍이며, 잔잔한 감동을 음미하게 하는 책들이다.
특히 이 책은 두껍지도 크지도 않고, [세들은 페루에..]는짧은 단편이다. -1독 추천드립니다. ^^

61세에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자기앞에 생

에밀 아자르

ISBN : 9788982816635
정말 웃픈 책이다. 9살 아이의 노인같은 천연덕스러움이 유쾌하다. 그러나 그런 완숙함은 그 짧은 삶에 절철된 비참함이 인생을 채우고도 남음으로 인함이므로 슬프다.

9살 어린 주인공은 웬만한 사람들이 평생 겪을만큼의 아픔을 겪어버렸다.
전쟁과, 가난, 이별 등 고통과 ‘차라리 모르는게 나았을 것’들로 가득한 생을 겪은 어린 주인공은 다가오는 생을 초탈한 시선으로 살아내면서 철이 들었다. 그의 글들을 읽으며 우리는 느낀다. 누구에게나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칠층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로자 아줌마는 육중한 몸뚱이를 오로지 두다리로 지탱하며 매일 오르내려야 했다. 그녀는 유태인이라서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불평할 처지가 못 되지만….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
아홉 살 아이의 입을 통해 세상 다 산 지성인 로맹가리가 말을 한다.

아홉 살 , ‘행복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사색이라는 걸 할 나이다.
나는 나의 내부에 넘칠 듯 쌓여가고 있던 그 무언가를 쉬페르(개)에게 쏟아 부었다. 녀석이 없었더라면 … 콩밥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녀석을 산책시킬 때는 내가 뭐라도 된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녀석에게는 내가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나는 녀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남에게 줘버리기 까지 했다. 나 자신이 살고 싶었던 멋진 삶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28

두려움은 늘 따라다니는 것.
삶은 늘 나와는 상관없이 굴러가기 마련이다.
여섯 살에 도둑질을 하면서 아주머니들속에서 엄마의 흔적을 느낀다.

나는 주인이 여자인 곳에서 훔치기를 좋아했는데 내 엄마는 여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보고 있을 때 달걀을 훔쳤지만 ….아주머니는 나를 바라보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참 예쁘구나’라고 말해 주었다. 심지어 뽀뽀를 해 주었다. 한순간 나는 희망 같은 것을 맛보았다. …나는 손에 달걀을 쥔 채 거기 서있었다. 여섯 살 때 쯤이었고 내 생애가 모두 거기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18
가난한 이들에게나 부유한 이들에게나 목숨이 뭐 그리 중하겠는가.
이제 목숨이 그녀에게 남아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볼 때 그건 참 우스운 일이다. 63

가난하고 처참한 환경에 살아온 9년은 행복과 거리두기를 한다.

마약주사를 맞는 놈들은 행복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끝장이다. 행복이란 부족할 때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행복이란 놈은 요물이기 때문에 그놈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어차피 녀석은 내 편이 아니니까 난 신경도 안 쓴다. 100

기가막힌 상황앞에 당황한….
곱게 큰 젊은 의사는 열 살짜리를 처음 보는 듯 주인공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여긴 뭐하는 데냐? 유치원같은데냐? …
도데체 어떻게….
누가 이 노부인에게 헤로인을 주사한거냐?

아이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의사를 바라보면서 말없이 미소를 보낸다.

>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 겨우 서른밖에 안된 그 젊은 친구는 아직 배워야할 게 너무 많은 풋내기인 것을….

열 살이 되자 아이는 사랑을 이야기 한다.

정말 끝내주게 예뻤다. …“어린애가 거리에서 혼자 돌아다니면 안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웃기는 얘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뭘 가르쳐 주려고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넌 내가 본 아이들 중 가장 예쁘구나” “당신도 멋져요” 그녀가 미소지었다. …
이유는 알수 없지만 아무튼 갑자기 내 속에서 희망 같은 게 솟았다.
….. 그녀는 내게 말을 건네고, 희망을 일깨우고, 친절한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한숨지으며 떠났다. 나쁜년. 109

그 아이의 주변은 죄다 창녀고 부랑배의 세계이다. 그게 정상이다.

그들의 일상은 처참하지만 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고 그게 삶이다.
행복과 신, 그런건 다 남의 이야기이다.

하루에도 사십번 씩 오르내리던 작은 호텔이 있는 거리를 지날 때 무척 감격했다. 자기가 몸을 팔아 벌어먹던 거리를 다시 보게 되어 무척 기쁘다고, 밀린 빚을 다 갚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녀는 오랜만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 지난시절 이야기를 했다. 그때가 자기 생애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169
신은 언제나 남들에 의해서만 존재하니까. 173

자기를 보살피던 로자 아줌마가 죽자 시체를 곁에 두고 향수를 뿌려가며 곁을 지킨다.

내가 수양엄마 시체 옆에서 삼주를 지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로자 아줌마는 내 수양엄마가 아니었으니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렇게 오래는 내가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향수가 다 떨어지고 없었으니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라몽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애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고 ,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한다. 307

아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손에 쥔 달걀하나 그게 인생이라는 것을 .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이 생이지만

그를 태어나게 한것도 경이로운 생리라는 깨달은.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은 어린 날들은 곧 지나가 버린다.
사랑뿐이다.

[로맹가리의 삶과 죽음.]
무서워하는데 꼭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자기앞의 생, 죄지은 자, 새들은 페루에…
나는 그것들을 무척 즐겼다. 안녕 그리고 감사한다. 1979 로맹가리

[슬픈결말로도 사람을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만들 것도, 말할 것도, 할 곳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의 작품은 완성되었고 그에게 진행 중인 작품은 없었다. 아들은 작년에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아들이 어른이 되었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그는 떠났다.

로맹가리의 짤막한 유서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

다낭과 하노이의 거리, 베트남 독립사와 한국
신무신론의 선두,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비판
[늙어감에 대하여-저항과 체념사이에서]장 아메리. [죽음이란 무엇인가]-셀리게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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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팅소녀 이미지는@cheongpyeongyull 님이 그려주신 작품입니다.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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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할 이야깃거리 가득한 작은 공간 -PhoMein 다낭-참배하고, 하노이- 즐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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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여는 첫 스킬,
첫 만남은,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 삼단계로 취향 저격할 수 있는 깔끔하고 조용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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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이어지는 곳

PhoMein포메인

주방이 중앙에 위치하고 ㄷ 자로 구부러지며 자리가 배치되어 있어요
일단 자리를 가까운 2인석이나 꼬부라지면 호젓한 구석자리도 있어요

1. 분짜 드셔보셨어요

숯불에 구운고기를 시원하게 Bun Cha
이 집 분짜(Bun Cha)는 한국인이면 거의 입맛에 안 맞기 힘든 감칠맛이 교차되는 맛입니다.
요즘같이 더울 땐 더더욱 딱인 음식입니다.

시원한 메밀냉면+ 양상추 샐러드 + 숯불산적

자 이 맛에대해 이야기 해 보세요
주로 베트남 북부, 특히 하노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분짜는 분이라고 하는 쌀국수를 새콤달콤하고 차가운 국물에 담갔다가 꺼내 먹는 음식으로 한국의 메밀국수와 먹는 방법이 비슷하다.

분짜의 국물은 느억맘으로 맛을 내어 새콤하므로 더위에 지쳐 입맛이 없을 때 제격이다.
더욱 신나는 것은 막 숯불에 구워낸 고기완자를 함께 먹는다는 점인데
숯불에 그슬린 고기맛이 국수의 맛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해준다.

또한 신선한 생야채를 취향에 따라 듬뿍 넣어 먹으면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 집에서는 자극적인 고수는 거의 없고 양상추위주의 상큼한 맛입니다.)

본래 분짜는 서민적인 음식이기 때문에 주로 노점상이나 간이식당에서 먹게 된다.
거리의 숯불구이 향기에 이끌려 허름한 식당에 앉으면 푸짐하게 차려진 기분 좋은 분짜와의 만남,
현지에서는 좀더 가깝게 느껴지는 베트남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음식이랍니다.

분짜는 조신하게 야채와 고기 위주로 드시면 스프링롤 추가


신선하고 건강한 맛입니다.

2. 하노이와 다낭의 차이를 아세요?

베트남 북부와 중부는 우리 한국과는 전혀다른 인연을 맺었답니다.

미국과 함께 베트남전에 참전한 8개국중 한국이 가장 많은 파병을 했지요
전투부대 까지 파명하여 실제 전투에 임했으니, 그때 나라를 위해 참전하신 분들은
아직도 미군이 사용한 제초제 부작용으로 고엽제라는 중병에 시달리고 계시죠.

그런데 그 희생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오명에 시달리고 있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인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사건은 약80건, 희생자 9,000명 정도 됩니다.
사건의 발생지역은 한국군 최고주둔 병력 5만명 주둔지인, 베트남 중부지방 이었고,
베트민의 주둔지였던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지역은 한국군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죠.
즉 북부지방에는 한국에대한 피해의식이나 미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어요. 아주 우호적이죠

물론,
베트남에서 한국군의 학살행위를 2차세계대전중 일본군의 잔학행위와
동일시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베트남 참전 한국군의 학살행위는 일부 지휘관이나 지휘관의 통제를 벗어난
일부 군인들의 의한 것입니다.

베트남 전중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었고,
민간인 학살사실이 밝혀질 경우 엄중하게 처벌된 사례도 많습니다.
2차세계 대전중, 일본은 국가차원에서 민간인 학살을 적극 장려하고 찬양했지만,
베트남전에서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밝혀질 경우 엄중 처벌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극우 성향의 정치인이나 보수단체는 베트남전에서 있었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부인하거나 정당화 하는 경우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일부 베트남 참전 군인들은 베트남에서의 학살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물론 그분 주위부대에서는 그랬을 수 있지만 객관적인 자료로 볼때, 학살사실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일부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봐야겠죠. ㅠㅠ

민간인 위령비를참배하는 분들도많죠

베트남 중부지방의 유명한 관광지중의 하나인 호이안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이 부근에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자 위령비가 4군데 있습니다.( 껌안, 하미, 하꽝, 퐁니퐁넛)
이 하미마을 위령비는 한국군 참전단체에서 모은 성금으로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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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김대중대통령, 노무현대통령도 사과의 뜻을 표시했고,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등 한국의 대통령도 베트남 방문시 분명한 사과의 뜻을 표시했습니다.
많은 민간단체들이 자원봉사활동을 지속하고 있답니다.

  • 예기가 좀 통한다 싶으면 쌀국수나 볶음 국수를
    해물볶음 국수
    제가 제일 자주 시켜먹는 메뉴죠

    얼큰한 맛인데 요런 쭈꾸미가 두 마리

    통통한 새우가 대, 여섯마리에 각종 해물이 숙주와 함께 들어 있어요

3.베트남 역사는 눈물겨워요. 우리역사를 능가하죠

2차대전중 일본에 수탈당하고
전쟁 후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 한국과 베트남이죠

19세기 나폴레옹3세는 유럽선교사 7명을 사형시킨것을 빌미로 1858사이공, 1873년하노이를 점령

프랑스는 이후 100년동안 베트남의 쌀과 고무, 노동력을 착취하여 아프리카의 식민 제국이 되었죠
~~영국이 인도에서 한 짓이죠. ~~

사회주의자 호치민의 독립운동이 국민들의 호응을 받고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시도합니다.

2차대전중에는 1939년 일본군이 베트남을 점령하여 엄청나게 수탈합니다.

1941 호치민의 독립동맹, ‘베트민’은 반제국주의, 반일 투쟁으로 1945년 단 2주만에 전 베트남 지역을 해방합니다.

2차대전 종전후 승전국 프랑스가 다시 베트남을 침공.

프랑스를 상대로 디엔비엔 푸 전투에서 승히한 베트남은 (남 프랑스, 북 호치민)총선을 통해 정부를 세우기로 프랑스와 제네바 합의.

이때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설것을 염려한 미국이 남베트남을 차지해 버리죠.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월남전이 치러지게 됩니다. 세계최대 강국 미국과 작은 나라 베트민은 국토를 초토화해가며 전쟁을 하고 한국군을 비롯한 동맹국들도 이 잔인한 전투에 참여하게되죠.

지난하고도 슬픈 역사죠.
결국, 민주시민세력의 강화, 여성들의 투표권확대, 제국주의의 후퇴, 전쟁혐오증 등의 다양한 변화로

미국도 부도덕한 전쟁을 지속할 수 없게 되자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로 독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이미 폐기된 실패한 실험이었죠, 경제가 파탄에 이르자
재빨리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베트남은 지곳적으로 미국에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 결국 수교하고
오늘에 이릅니다.

베트남이 얼마나 가까운 나라인줄 아세요?

얼마전 하노이를 다녀왔는데 ‘박감독의 나라 한국인은 무조건 환영’이었어요

우리는 아직도 일본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지만, 베트남은 거의 없어요
한국이 2002년 월드컵 때 히동구 아저씨를 좋아했잖아요. 영웅이죠. 히딩크.

베트남에서는 한국은 영웅, 박항서의 나라랍니다. ㅎㅎ
베트남 축구를 아시안 결승까지 보냈죠. 중국을 상대로 아쉽게 졌지만, 여전히 회자되는 이야기죠.

한국과 베트남간의 불행했던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입니다.

베트남은 대한민국의 3대 교역대상국입니다. ( 1위 중국, 2위 미국 3위 베트남 )
대한민국은 베트남의 2대 교역대상국 입니다. ( 1위 중국, 2위 한국 )
베트남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베트남 쌀국수

양을 조심스레 드셨다면 쌀국수 국물로 시원하게 마무리할수 있습니다.

앞접시도 예뻐요

고수향은 없고 깔끔한 맛입니다.

베트남은 현재 개방을 염두해둔,

북한의 제1 희망모델입니다. ^^




이제 차 마시러 갈까요 ^^
주소: 강원 원주시 반곡동 18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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