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사태에 대한
올드스톤님 포스팅을 보고
앞으로 잘 모르는 건에데해 의견 개진을 하는데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나라 기자들….역시.
뭔가를 발표할때 팩트체크를
못하는 지 안하는지
답답합니다.
정의연 회계비리에 대한 전문가의 팩트체그를 좀 보니
논란이 많은 이슈들은 주장을 하기전에
역시 팩트체크를 해야합니다.
이 인간 싫어하는 분 많은 건 알지만
….
정의연 문제에 어디든 댓글 남기실 분은
한 번만 참고하셔도 좋을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4-p3c_ezaGE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보이는 것과 진실의 거리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차이퉁]이 카타리나 볼룸의 명예를 짓밟는 방식이 너무나도 리얼해서 숨이 막혔다. 그것은 오늘날 현재에 목격하는 언론 형태와 정말로 똑 같았다.
27세의 성실한 가사관리인 카타리나 블룸. 그녀는 지인의 댄스파티에 참석했다가 처음 만난 괴텐이라는 남자와 춤을 추고, 자기 아파트로 함께 갔다. 괴텐이 자신이 어떤 이유 때문에 경찰에 쫓기는 중이라고 하자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느낀 블룸은 괴텐이 몰래 아파트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하 통로를 가르쳐주었다. 다음날 아침 아파트에 경찰이 들이닥쳐 괴텐의 도주를 도왔다는 이유로 블룸을 체포하고, <차이퉁>이라는 신문은 ‘수배 중인 은행 강도의 정부가 흉악 범죄에 가담했다’며 블룸의 아주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왜곡하여 보도하는 일이 연일 신문을 장식한다.
검찰청 조사실의 대화를 악의적으로 왜곡 중계방송한다.
“카타리나가 과격하다면, 그녀는 과격하리만치 정직하고 계획적이며 지적입니다.”란 증언을 “모든 관계에서 과격한 한 사람이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군요.”라고 교묘하게 비틀어 보도하는 식이다. 병상에 있는 블룸의 어머니를 인터뷰하기 위해 병원까지 몰래 잠입충격을 주어 사망하자 “파렴치한 딸이 병상의 어머니도 외면한” 것으로 보도된다. 블룸을 아끼는 고용주 변호사를 찾아 휴가를 망치고, 그 변호사가 “블룸은 내가 아는 한 이성적인 여자다”라는 말을 기사에다 “블룸은 내가 아는 한 계산적인 여자다”라고 쓴다.
주변 사람은 <차이퉁>지의 왜곡된 보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불법적 ‘피의사실 유포’로 범죄행위다. 그러나 국가기관과 언론이 한 통속이되어 저지르는 이 범죄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결코 원치 않았던 S의 아파트 방문, 값도 모르는 반지등 내밀한 개인정보를 왜곡 보도해 자신을 모욕하는데 대해 그런 일을 바로잡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사실에 대해 블룸은 절망감을 느낀다. p275
소위 동업자끼리 서로 비판을 자제하는 ‘침묵의 카르텔’이 있기 때문이다. ; 이 역시 사회적 친밀도와 상황의 발생 확률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피해자가 될 가능성보다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 가해자의 카르텔에 참여할 것이다.p278
이후 블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차이퉁>의 기자를 집으로 불러 총으로 쏘아 살해한다. 블룸의 인생을 송두리째 말살시킨 그 기자는 아무 죄책감이 없었다. 그를 죽인 블룸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며 스스로 자수하게 된다.
◼ 68혁명과 극우 언론
언론의 허위 보도로 음란 편지와 전화를 받고, 대중의 비난으로 집 밖을 나서지 못하는 등 개인의 명예를 잃어버린 카타리나 블룸의 이야기가 하인리히 뵐 작가 본인이 직접 겪은 일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소설 첫머리에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 낸 것이며,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 중에 <빌트> 지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라고 밝혀져 있다, <빌트> 지는 실제 독일 최대 언론이자 극우 황색신문이다. 1968년 경 독일에는 68혁명이 발생했는데, 나치 잔재를 청산하지 않은 전후 독일 사회와 기성세대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청년들의 격렬한 논쟁이자 사회운동이었다. 일부 청년들의 공공연한 폭력 행사에 대해 <빌트> 지는 아무 관련 없는 은행 강도 사건까지 이들의 소행이라며 증거도 없는 허위 보도를 했다. 뵐은 <빌트>의 이 같은 보도방식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고, <빌트> 지는 뵐이 테러리스트를 옹호한다는 보도로 반격했다. 뵐의 가족은 극우파의 살해 협박 때문에 외출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실제로 반향을 일으켰다.
◼ 언론의 자유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40년전 독일에는 빌트가 하나뿐이었지만 우리나라는 여러개의 빌트가 있다. 거의 모든 신문이 빌트라고 생각해보라. 35년전 블름은 기자를 죽였지만,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은 자신을 죽이는 길을 선택했다.
청춘의 독서(유시민)발췌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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