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teem]김명호 교수의 진짜 [중국인 이야기1]-위안스카이 VS 차이어

강산을 사랑했지만 미인을 더 사랑한 사람-차이어

김명호교수의 [중국인 이야기1]

< 차이어가 좀더 오래 살았더라면 중국은 더 시끄러웠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중국의 전통 도덕으로 무장된 현대적인 군인의 표본이었다. > 제1권 p495

실패하면 죽음이 있을 뿐 망명은 하지 않겠다. -차이어

차이어(蔡鍔)는 16세 때 2원을 들고 고향을 떠났다. 위안스카이(遠世凱)에게 1000원을 빌려 일본 유학을 떠났다. 어떻게 이 만남이 이루어 졌는지는 추측조차 불가능하다. …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6년간 여러 곳을 전전하며 신군을 훈련시켰다. 1911년 7월 윈난(雲南) 총독의 초청으로 서남지역에 첫발을 디딘 후 신군 훈련을 일임 받다가 신해혁명이 폭발하자 독립을 선언한 윈난의 관병들은 차이어를 군정부 도독(都督)에 추대했다. 이때 그의 나이 29세였다.

쑨원은 공화제를 지지한 위안스카이 안을 수용해 임시 대총통직에서 물러났다. 차이어도 이를 지지했다.

첫 선거에서 국민당이 승리해 총리는 쑹자오런의 몫이었지만 암살당한다. 쑨원은 2차 무장혁명을 선언한다.

1913년 위안스카이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쑨원은 망명한다. …

위안스카이는 차이를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 지방세력의 확장을 우려한 나머지 병권을 탈취하기 위해서였다고들 하지만 위안은 군사가들을 중요시했고 사람사람 보는 눈이 비범했다. 차이를 무서워하면서도 편애했다. 참모총장이건 육군총장이건 뭐든지 시키려 했다. 북양 원로들이 반대했지만 가장 높은 계급을 수여했다.

친구가 위안이 황제가 되려할테니 두고보라고 하자 “그럼 나도 서남에서 황제를 칭하겠다”며 웃었다. 1915 위안을 황제에 추대하려는 모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위안스카이에 의해 베이징에 와 있던 차이어는 “중국의 국체는 군주제가 됨이 마땅하다”며 성명서 첫머리에 서명했다.
위안이 황제즉위하려하자 전국이 요동쳤고 차이어도 찬성했다는 소문이 돌자 물가가 요동했다. 차이는 어떤 정견도 발표하지 않았다. 환락가를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창기들과 어울렸다. 위장 지지 서명을 한 후 차이어는 백주에 기녀들과 공원을 산책하며 자신을 노출했다. 단정했던 차이어의 행동에 위안은 긴장했다.

“황제가 되건 말건 네 멋대로 해라 . 나는 관여치 않겠다.”는 의미로 단정했다.

차이어는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치병에 전념한다며 병가를 신청했다.
차이어가 떠난 후 위안은 “명석함과 예민함이 당대에 차아어를 따를 자가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 차이어는 일본 요양을 명분으로 11월 11일 베이징을 떠났다.

혁명! “위안 너 목숨은 살려주마.”

상하이에 도착한 차이어는 윈난의 지휘관들에게 “선혈을 뿌려 이룩한 공화제가 군제제로 돌아가는 것은 4억 중국인의 수준과 인격의 문제”라는 서신을 발송했다. 칭치차오는 차이어의 편지를 받았다.

“실패하면 죽음이 있을 뿐 망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성공하면 은퇴하고 어떤 관직에도 나가지 않겠습니다.” 간단하지만 무서운 내용이었다.

차이어가 돌아오고 나서야 물가가 안정되었다. 한 달 여 만에 일본, 타이완, 홍콩을 경유 쿤밍에 도착한 차이어는 “군주제 복귀는 국체에 대한 반역이다, 12월 25일 독립을 선포하고 동시에 기병하자”며 호국군을 결성했다.

1916년 1월1일 위안스카이는 황제에 즉위했다. 차이어는 쓰촨(四川), 충칭(重慶)을 거쳐 청두(成都)에 진입했고 위안스카이도 대황군(大皇軍) 10만을 편성했지만 호국군은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고 전국에 반제운동(反帝運動)을 불러일으켰다.

차이어는 윈난 전역의 지휘관들을 소집해 “권력을 놓고 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선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위안 스카이는 1916.1.1 황제에 즉위했고 차이어는 쓰촨으로 진군햇다. “목숨을 살려준다. 당장 퇴위하고 출국해라. 황제 즉위에 공모한 회원들은 처형해라. 등극대전과 용병비용, 회원들 재산은 국가에 환급해라. 증손까지 공민권을 박탈한다”는 내용의 최후 통첩을 보냈다. …위안도 대황군 10만을 편성했다. 대황군 지휘관은 “차이어 말고삐 잡는 게 소원이었던 내가 어찌 이렇게 되었는지…”라고 했다고 한다.

3.22 위안스카이는 퇴위를 선언했다. 6월6일 울화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차이어는 호국군을 해체하고 은퇴했다. 차이어도 34세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장례는 민국 최초 국장이었다.
장례기간 중 화류계 여성들이 저녁 6시에 일제히 그를 기리는 노래를 불렀다.

“강산을 사랑했지만 미인을 더 사랑한 사람” (pp493 –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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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잘생긴 사람이 차이어^^

by: 김명호 교수님기사

김명호 교수의 진짜 [중국인 이야기1] 소개합니다.

ISBN : 978-89-88404-00-3 (07860)

‘중국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의구심이 든다. 중국인이 아니고서야 이토록 심도 있게 중국의 내면을 파헤치는 작업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뛰어 넘었다는 평이 나오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중국인 이야기’는 일기나 편지, 회고록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연대기가 아닌 인물열전 형식으로 중국 근현대사를 재구성한다. 중국 역사를 이끈 인물들의 목소리는 물론 이들의 얽히고설킨 인간관계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1권에서는 류와 마오,린뱌오, 장제스 등을 중심으로 그리지만, 최근 나온 ‘중국인 이야기 3권’은 장제스의 아들이자 대만의 총통을 지낸 장징궈(蔣經國), 중국 공산당주의운동의 창시자인 천두슈(陳獨秀), 대만 국민당의 원로이자 사랑받는 청백리였던 위유런(于右任), 중국 교육부장관이자 베이징대 총장이었던 장멍린(蔣夢麟) 등을 다룬다. 또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 삼형제의 숨겨진 불화도 그려진다.

“대륙 지식인들이 시진핑에게 대만의 장징궈와 같은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할 정도도 대륙도 그를 높이 평가했다. 장징궈가 대륙에 있었다면 총서기가 됐을 것이라고도 한다”며 “그를 장제스의 아들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부인이자 문화대혁명을 이끌었던 장칭(江靑)을 그릴때도 흥미진진하다. “장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제각각입니다. 장칭만큼 겸손한 사람은 없었다고도 하고, 아주 표독스럽고 변덕스러웠다는 평도 있지요. 그녀는 베이징도서관에서 책을 가장 많이 빌린 여성인 동시에 예능적으로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장칭, 린뱌오(林彪), 장쉐량(張學良) 같이 비극적 생애를 산 인물들에게 흥미가 가요. 이 사람들의 삶은 정의를 내리기 어렵거든요.”

중국 역사의 순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은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놀랍게도 책에 실린 모든 사진은 김명호가 중국, 홍콩, 대만 등의 골동품 가게를 돌며 직접 모은 것들이다. 그 수만 1만점이 넘어간다. 팩트(fact)에 기반한 객관적 서술은 ‘중국인 이야기’의 가장 큰 힘이다.

[연합뉴스 2014-05-12‘저자와의 만남’을 요약 편집.]

특히 장쉐량의 서안사건은 (장학량) 한 사람의 영웅이 중국역사를 바꾼 멋진 history 라 생각합니다.
@snsha88님이 삼주 전 포스팅 했었죠
장학량의 9월22일<==

이 사건은 [중국인 이야기2]에 잘 나와 있었던것 같습니다.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는 중국 땅에 산 인민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혁명의 주체들이 어떻게 일어나서 인민들에게 다가갔는지, 홍군이 어떻게 오늘날의 중국 공산당이 되어, 어떻게 중국의 정치체제가 정립되고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어떤 사건들이 있었고 거기에 누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중국 근 현대사를 살아온 생생한 삶의 모습들을 소개하며 수많은 중국인들의 삶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제 이 책을 읽으면 중국의 근 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고 로마를 이해한 독자라면 이제 [중국인 이야기]를 읽으면 로마보다도 중국이 더 생생해 질 것이다. 더구나 [중국인 이야기]는 재미있기까지 하다. 로마인 이야기처럼 시대를 따라 긴장되었다 늘어지거나 하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서 펄떡거리는 사람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저는 3권까지 봤는데 1독 권합니다.

@raah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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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working] 오~래 쓸 가구 만들기. 집진기 사용기

레일톱으로 홈을 내서 참죽9mm로 45도 보강

두께와 깊이가 조절 가능한 레일톱으로
젓가락재료인 참죽을 끼워 넣었어요




오~래 쓸   책꽂이 만들기  

레일톱  ,집진기  사용후기



By @raah

원래 오크로 만들생각이었는데 건재소에 마땅한 재료가 없어

멀바우 집성목 18MM ,24MM 두 장을 세로로 절단하니

꽤 무겁고, 재료비만 30만냥 ㅠㅠ

막상 베란다에 놓고 보니 두 장이 길이가 다르네요 ㅠㅠ

케각기나 직각자도 없어서 A4지를 이용

듀얼도웰로 양쪽라인 기준으로구멍 두씩 뚫고

가로대 옆면에도 똑같이 뚫어서 끼워넣어 기본 틀을 고정합니다.

파이프 크램프가 너무 묵직해서 목수샘의 조언대로 고무튜브바 라는 것으로 조임을 했습니다.
하지만 큰 구조물엔 힘이 너무부족해서 부분적으로 1mm 틈이 벌어졌습니다. ㅠㅠ
풀어보고 실망해서 망치로 때려넣었죠.

중앙 가로대와 세로 두께 사이에 1.3mm 오차로

목심이 안들어 가는 사태가 발생하여
급히 잘라내고 붙인 후 외부에서 드릴로 나사못을 박았습니다. ㅠㅠ

구석구석 요 삼종세트로 드릴,이중기리로 구멍내고 나사 밖고 목심 마무리

각재 끼워넣기

기본결합에 1mm오차 생긴게 찜찜해서 네 모서리에 멀바우 각재를 건너 질렀습니다.
레일톱으로 깊이 조절해서 1mm간격으로 톱질 후 끌로 정리하면 홈파기가 좀 쉽습니다.

대문사진처럼,
중간에 한 곳만 색이다른 참죽을 끼워넣기 했습니다.

집진기와 전동 사포로 폭풍 사포질 후

완성했습니다.

집진기 사용후기

목송실에 디월 , 페스 두종류 집진기를 사용하는데

이녀석 너무 맘에 듭니다.
소음도 적고 장비들과 거의 100% 연동됩니다.
승용차 트렁크에 쏙 들어가고 호스 수납도 잘되어, 가지고 다니기도 편해요

[Video] 전에 소개한 듀얼 도웰

깊이와 높이등 간단하게 조절 가능합니다.
판재두께가 24mm면 도웰의 날을 12mm로 , 깊이 적당히 정하면 그대로 중앙에 뚤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EUkOA-MsyI

레일톱, 마*의 MF 55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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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삼종세트 싣고 와서 아파트에서 책장을 만들어 봤습니다.
며칠 고생했습니다. ^^

요즘은 목공때문에 그림 그릴 시간이 없네요 ㅎㅎ

@raah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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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봇.jpg
보팅소녀 이미지는@cheongpyeongyull 님이 그려주신 작품입니다.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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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설악 단풍과 암벽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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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속초 나무장난감축제에서 체험부스를 하나 맡는바람에 겸사겸사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 구석구석에 가을이 머물러 있습니다.
설악단풍과 암벽체험

by:@raah

단풍은 울산바위 중턱쯤에 머물러 있습니다.
비선대 산책로를 오르고 싶어 설악동으로 갑니다.

한계령 구도로쪽으로 내려오시다 계곡을 들어가시는게 가을을 만끽하기엔 더 낫겠습니다.

아래쪽은 아직 군데군데만 단풍이 들었고 푸른 잎의 나무도 많습니다
금요일 저녁인데 마지막 주차창을 50m 남기고 켈싱턴 호텔부터 살짝 막힘니다.

주말에 이쪽으로 차를 끌고 오려면 용기가 필요할듯 합니다.

이정도가 올해 이번주 설악의 모습입니다.

며칠전 간 오대산 선재길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암벽클라이밍 체험

국립산악박물관

속초에는 산악박물관이 있습니다.

옥상에 하늘위로 멋진 조형물이 있고요
내부에도 박물관과 이런 모형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올라갈 수 있는 놀이기구도 있고

직접 암벽체험교실을 등록하셔도 좋습니다.

아바이마을 신다신 가리국밥

현지인 추천, 속초 맛집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아바이마을가서 아바이 순대를 빼 놓을 수는 없지요

인터넷 검색해 보시면


이 가리국밥의 시원한 맛을 인생국밥이라는 분도 많습니다.
주소: 강원도 속초시 아바이마을길 22
☎ 033-633-3871

음료는 분위기 있는화암사 or 쏠비치에서 …

한달전 소개해드린 화암사의 작설차나 호박식혜를 드셔도 좋고

화암사 란야원 클릭!!

  • 쏠비치
    이 멋진 풍경은 럭셔리한 양양 솔비치 호텔 내에 까페에서 커피한잔하면서 즐길수 있는 풍경입니다.
    까페 앞에 물이 넘치는인공연못(?)이 있는데 늘 하늘을 담고 있습니다.


이가을 추억가득한 설악을 다녀온 @raah 였습니다.




가을# 설악 단풍과 암벽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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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나무장난감 축제에 오세요

오늘 속초인근에 계신 분들은 진로교육원에 오세요20181013_094942.jpg
이게 고등학생 작품이라니
글자모양을 빼서 조립하면 자전거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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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나무장난감 수상작들이 전시되어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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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피리. 스피너.우드펜 등 18가지 장난감 체험하시고 만들어가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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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teem]대한민국에서 중국인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김명호. 중국인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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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나 초한지 수준을 넘어 근 현대사에 우리 역사에 끼어들었던 중국 공산당과 중국인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적어도 노태우 정권까지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이념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세우고 둘로 나뉘어 서로를 백안시 했다. 때문에 폐쇄적인 국사정권하의 한국에서 장벽 저쪽에 있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알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았다.

70년대 군사독재정권하에서 중국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까지 했다. 중국과 국교가 수립되고 최대 무역 상대국이 된 지금까지도 우리는 중국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함부로 탐구하기가 껄끄러운 것이 현실이다.

  • 몇 권의 문학 서적과 한 권의 르뽀 문학 [중국의 붉은별]이 그 목마름을 해결해 줄 뿐이었다.

    1930년대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별]이 거의 유일하게 중국 홍군을 취재한 르뽀라고 할 수 있었다.

펄벅의 『대지』가 1900년대 중국 농민의 삶의 애환을 처음으로 그렸다면,

장 융의 자전소설 『대륙의 딸들』은 군벌시대로부터 문화혁명까지의 3대에 걸친 역사를 보여준다. 1900년부터 100년간에 근현대사를 다룬 이 책은 가히 금세기 최고의 중국 논픽션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기억난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붉은 별] 보다 대장정과 문화혁명의 디테일한 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권의 책은 사건의 소용돌이 안에서 함께 휘둘리며 살아간 사람들의 보고서일 뿐이다. 중국사회에 일어난 사건들을 원인과 결과를 맞춰가며 입체적으로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함부로 중국이야기를 다룰 수 없었던 군사정권 하의 우리나라에서는 리영희의 [5억인과의 대화]등과 같이 기 출판 사료들을 엮어 중국을 설명하는 정도의 책들 밖에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드디어 한국에서도 중국의 군벌시대부터 홍군의 혁명을 거쳐 대장정과 국공합작, 공산당정권의 수립과 문화혁명은 물론, 국민당의 타이완행과 마오쩌뚱 이후 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수용까지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 등장했다. [중국인 이야기]이다.

이 책의 사실성과 정확성은 이전의 책들이 보여주던 부분 부분들이 하나의 줄로 엮이게 된다. 예를 들어 중국의 붉은별에서 에드가 스노우가 시안을 거쳐 홍구가 잠입하는 과정은 한편의 스릴러를 방불하지만, 저우언라이와 첫 대면하는 장면을 <중국인 이야기2>와 <중국의 붉은 별>에서 각각 발췌하여 나란히 병치해 보면 그 때의 장면이 살아나는 듯하다.

“7월 9일, 소련 구역의 첫 번째 초소에 도착하자 말 위에 앉아 있던 사람이 악수를 청했다. 얼굴이 수염투성이었다. “현상금 8만 원에 지명수배된 저우언라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중국인 이야기2>, 431쪽)

“곧 몸이 가냘프고 중국인으로서는 유별나게 검은 수염이 많은 젊은 장교가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부드럽고 세련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안녕하시오, 누군가를 찾고 계시다구요?” 그는 다름아닌 영어로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내 그가 그 유명한 주은래임을 알았다. ……주은래의 숙소 앞에는 장개석이 그의 목에 8만 원의 현상금을 걸어놓았음에도 한 사람의 보초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중국의 붉은 별>, 57~59쪽)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는 중국 땅에 산 인민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혁명의 주체들이 어떻게 일어나서 인민들에게 다가갔는지, 홍군이 어떻게 오늘날의 중국 공산당이 되어, 어떻게 중국의 정치체제가 정립되고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어떤 사건들이 있었고 거기에 누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중국 근 현대사를 살아온 생생한 삶의 모습들을 소개하며 수많은 중국인들의 삶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제 이 책을 읽으면 중국의 근 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고 로마를 이해한 독자라면 이제 [중국인 이야기]를 읽으면 로마보다도 중국이 더 생생해 질 것이다. 더구나 [중국인 이야기]는 재미있기까지 하다. 로마인 이야기처럼 시대를 따라 긴장되었다 늘어지거나 하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서 펄떡거리는 사람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1 여성 혁명가들의 행로
017 옌안의 홍색공주 쑨웨이스
027 손자도 극형에 처한 여장부 캉커칭
031 최후의 정통파 자객 스구란
037 중국 최초 할리우드 스타의 비극적 생애
047 루쉰 이후에 장아이링이다
2 펑더화이와 마오쩌둥의 애증
057 펑더화이, 마오쩌둥을 비판하다
105 중공의 한국전쟁 출병, 펑더화이와 김일성
3 학력보다 학력이다
141 소박한 국학대사 나라의 품격을 높이다
155 ‘자본론’마이푸, ‘셰익스피어’ 번역한 량스치우
163 재녀들 속에 방황하는 서정시인 쉬즈모
4 국부 쑨원의 경호원
195 나에겐 혁명정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217 바람둥이 쑨원 쑹칭링이게 청혼하다
227 수완좋고 대범한 혁명의 후원자 쑹자수
247 국부 쑨원의 경호원
265 중국의 마키아벨리 량스이
273 돈으로 총통이 된 군벌 차오쿤
5 사랑과 혁명
289 사랑이 전쟁보다 힘들다
325 시안사변과 좡쉐량의 반세기 연금생활
339 매국노로 전락한 혁명영웅, 그를 사랑한 여자
353 연애도 혁명처럼 1: 뤼이눙 네 연인
367 연애도 혁명처럼 2: 선동가 리리싼의 좌절
6 매화를 사랑한 정보총책 다이리
405 장제스의 머리 양융타이, 마오의 눈 우스
427 에드거 스노, 홍군을 전 세계에 알리다
439 밤새워 중국의 미래 논한 량수밍과 마오쩌둥
447 한 번도 실각한 적 없는 리셴넨의 행보
ISBN: 9788935662197

  • 우리에게 익숙한 쑨원과 마오 팩덕회와 김일성관련내용 일부만 소개합니다

나에겐 혁명정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 “ 나라의 환부를 도려내는 국의(國醫)를 하겠다.” >

쑨원에게 좋아하는 것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가 혁명이었다. 쑨원에게서 혁명은 그 시대에 태어나 서양 문물을 접하고 부패된 청말시기 왕정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갈망하는 한족들의 염원을 등에 업은 사명이기도 했다. “사람 치료하는 인의(人醫)로 평생을 지내느니 나라의 환부를 도려내는 국의(國醫)”를 하겠다는 그의 결단에서도 엿볼수 있다. 둘째는 여자였다.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는 세상천지에 없다…”(p198) 쑨원의 대답을 들은 이누카이는 무릎을 치며 화답했다. ‘열 여자 싫어하는 남자 있겠느냐’
셋째는 독서였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돈이 없어 끼니는 걸러도 책은 구입해 읽었다. 간암의 고통 중에서도 그랬다. “혁명은 부단히 진화한다. 현상만 갖고는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없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길은 독서밖에 없다” 고(p199) 밥 보다 책을 소중히 여겼다. 제 2권 p198 (pp195 – 215)

바람둥이 쑨원 쑹칭링이게 청혼하다

구습을 타파코자 민의를 움직인 혁명가들이 질풍노도의 청춘처럼 감정이 끌리는 대로 여인들을 취했다. 마오쩌둥, 장제스도 그랬고 국부(國父)라 불리 움을 받던 쑨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쑨원에게는 조강지처인 루무전(盧慕貞)이 있었고 이십 년간 실질적인 ‘쑨원의 부인’ 으로 대접받던 홍콩 여인 천추이펀(陳粹芬)이 있었다. 그럼에도 쑹자수의 큰 딸 아이링(靄齡)에 눈독을 들이다 실패하자 동생 칭링(慶齡)을 끌어들여 27세의 나이 차를 개의치 않고 쑹칭링 22세 쑨원 49세 때인 1915년 10월 25일 도쿄의 우메야 쇼키치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조강지처를 불러다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게 했고 천추이펀과도 결별했다.
어처구니없는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쑹칭링과 결혼만 할 수 있다면 다음 날 새벽에 죽어도 후회하지 않겠다”(p222)

천하대사를 함께 논하는 동지들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분명 아니었다. 27세 연하의 딸 같은 쑹칭링에게 온 마음을 빼앗겼다. 곱지 않는 시선을 보내는 동지들에게

“나는 혁명가다 수천 년간 내려오는 악습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p225)

에드거 스노, 홍군을 전 세계에 알리다

< 여름이기도 했지만 방 안에는 온갖 벌레들이 들끓었다. 마오는 간간이 옷을 벗어 들고 나가 한바탕 훌훌 털곤 했다. 평생 목욕을 해본 사람 같지 않았지만 정교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중국의 미래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칠지 잘 알고 있었다.> 제2권 p434

1935년 10월, 마오가 인솔하는 홍군이 산시(陝西)성 북쪽 바오안(保安)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국민당은 물샐틈없이 봉쇄했다. 홍군은 고사 직전이었다. 2만 5,000리의 장정으로 기력을 상실한데다 산베이(陝北)의 빈곤은 상상을 초월했다. 마오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자신과 전우들이 걸어온 길을 후세에 전설로 남기고 당의 기본방침이 “항일 근거지와 통일전선의 구축” 이라는 것을 외부에 알리고 싶었다. 상하이의 지하조직을 통해 쑹칭링에게 “믿을 만한 외국기자와 외국인 의사 한 명이 바오안을 방문할 수 있게 해달라” 는 부탁을 했다. 쑹은 항일을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를 적극 지지했던 미국 기자 에드거 스노와 외과의사 조지 하템을 접촉했다. 1936년 7월 11일 밤 9시, 스노와 하템은 저우의 안내로 마오쩌둥을 만났다.

첫 번째 만남에서 마오는 스노우에게 말을 아끼며 먼저 서부전선에 있는 홍군을 만나보라는 권유를 했다. “조사를 하지 않은 사람은 발언할 권리가 없다”는 천하의 명언을 남긴 사람다웠다. 홍군의 주력부대는 바오안에서 200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스노와 하렘은 간쑤(甘肅), 닝샤(寧夏) 일대를 다니며 홍군을 접촉했다. 장정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이들은 떼지어 다니는 토비들이 아니었다. “예정보다 더 머물지 않았다면, 마오만 만나고 돌아왔다면, 홍국의 승리가 어디서 왔는지 나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홍군은 패할 리 없다. 정치적으로 잘 다듬어진 군대였다.”. 스노가 바오안으로 돌아오자 마오는 본격적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소련 정부의 정책과 항일전쟁의 형세, 민족통일전선의 형성에 관한 것 외에 누구에게도 해본 적이 없었던 성장 과정과 결혼에 얽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1936년 10월 중순, 베이핑으로 돌아온 에드거 스노는 미국 영사관 강당에서 서북기행(西北紀行)을 발표했다. 2개월 후 시안사변으로 마오쩌둥과 홍군은 기사회생했고 마오는 옌안에 정착했다. 이듬해 여름(7월 7일), 중.일 양국이 전면전에 돌입한 직후 스노는 런던에서 중국의 붉은 별을 출간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외국의 의사와 기자, 작작가들이 몰려들었고 의료지원단, 성금들이 답지했다. 국내에서는 이상을 축구하는 청소년들과 대학생, 문화인들, 연예인들, 홍군 지원군들이 항일성지(抗日聖地) 옌안으로 몰려들었다. 마오쩌둥은 중국식 공공외교의 창시자였다. [중국의 붉은 별]은 대전략과 마오쩌둥이 자신과 홍군을 중국과 전 세계에 선전하기 위한 공공외교의 산물이었다.(pp427-437)

펑더화이, 마오쩌둥을 비판하다

< 진리는 하녀의 속성이 있다. 권위에 의존해야 빛을 발한다. 권위가 약한 진리는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둔갑한다. 대다수가 진리를 숭상하는 것 같아도 실상은 권위를 숭배하기 때문이다. 펑더화이는 이 점을 간과했다. > 제 2권 p72

1535년 7월 초,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꿈꾸다 단두대 앞에서 사라져 갔다. 1824년 로버트 오웬의 뉴하모니타운 공산주의 실험장은 5년을 견디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카를 마르크스는 토마스 모어의 이상과 인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길을 과학적으로 천명했다. 마오쩌둥은 유아원과 양로원, 상점, 학교, 농장, 등이 공동으로 운영되는 표준형 유토피아를 구상했다. 1958년 대약진 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인민공사를 통해 하루 세 끼를 공공식당에서 무료로 먹었다. 일을 열심히 한 사람과 빈둥거리며 눈치만 보던 사람의 배당량이 똑 같았다. 이성적인 미몽(美夢)이 하루아침에 비이성적인 악몽으로 둔갑했고 아사자가 속출하고 연료가 바닥났다. 이러한 상황을 펑더화이는 “주석의 심리를 살피느라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며 거침없이 소신껏 맹렬한 비판을 통한 재고를 요청했다. 마오쩌둥은 대약진 운동에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부정당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펑더화이는 그것을 간과했다. (pp57 – 104)

중공의 한국전쟁 출병

< “많은 동지들이 출병을 반대한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항일전쟁과 해방전쟁을 치르는 동안 조선 인민과 당의 동지들은 우리의 혁명을 위해 피를 흘렸다. 조선은 수백, 수천 가지 이유를 들이대도 바뀔 수 없는 혈맹이다.” > 제 2권 p111

하지만 중공은 서울까지 밀고 내려온 후에 철수를 경정하면서 김일성과 사이가 벌어집니다.
이하 김명호 교수의 한겨례레 기고문 발췌입니다.

펑더화이는 김일성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서울을 점령한 중국인민지원군이 더 이상 남하를 거부하고 철수를 결정했을 때는 펑더화이의 집무실에 달려와 멱살 잡고 집기를 때려부수며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다. 서로 권총을 빼들기 일보 직전에 참모들이 달려와 말리지 않았더라면 무슨 해괴한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정도였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김일성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평양에 전쟁전람관을 만들면서 중국지원군에 관한 내용은 거의 무시해버렸다.
중국 정부도 북한의 행동에 불만이 많았다. 외부에 발표는 않았지만 평양 주재 대사직을 3년간 공석으로 내버려뒀다. 저우언라이도 섭섭함을 드러냈다.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이 초대한 만찬에 참석은 해도 북한 주재원들과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귀갓길에 불편을 토로했다. “그간 우리는 정말 하느라고 했다. 조선의 산수와 초목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마오 주석의 지시에 따라 조국과 매한가지로 파괴된 조선의 회복에 열정을 다했다. 그래도 저 사람들은 우리를 믿지 않고 감격해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저우언라이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중국은 정전 3개월 뒤부터 북한의 전후 복구와 건설에 집중했다. 철도를 복구시키고 크고 작은 교량 1300여개를 새로 만들거나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했다. 평양은 물론이고 함흥, 원산 등에 대규모 공병대를 투입해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를 새롭게 변모시켰다. 58년 철수 때까지 북한 재건에 참여한 연인원만 1000만명이 넘는다고 중국 쪽은 기록했다. 펑더화이의 후임으로 지원군 사령관을 역임한 양융(楊勇)의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참전 이후 8년간 조선 인민들을 위해 공공건물 881개와 주택 4만5000여채를 우리 손으로 직접 지었다. 제방 4000여개와 댐 건설도 지원군이 나서서 추진했다. 심은 나무가 3600여만그루에 달하고 인분 1300여만톤을 우리가 직접 밭에 뿌리는 바람에 지원군 병사들 근처에만 가도 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원군 병사들은 조선 형제들을 위해 의식주도 절약했다. 양식 2100여만근(斤)과 의류 59만점을 주둔지 인근 주민들에게 제공해 이들을 재난에서 구했다. 전투가 치열했던 지역의 주민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살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인근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느라 우리 병사들은 하루도 쉴 틈이 없었다.”

1956년 소련 공산당이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한 다음부터 김일성 비판은 하루가 다를 정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낀 김일성은 고위층 간부들에게 칼날을 세웠다. 중국과 가까운 연안파부터 손을 댔다.
마오쩌둥도 북한의 옛 동지들이 체포되거나 당에서 쫓겨나자 “스탈린과 다를 게 없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단 한마디도 듣기 싫어한다. 상대가 누구건 반대만 하면 무조건 죽여 없애려 한다”고 직접 김일성을 비난했다. 이어서 펑더화이를 평양에 파견했다.

펑더화이는 “마오쩌둥의 뜻”이라며 연안파를 숙청한 조선노동당의 결의안을 취소하라고 김일성을 압박했다. 김일성은 조건을 달았다. “지원군을 철수해라. 수십만 군대가 우리 땅에 머무는 것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마오는 김일성의 철군 요구에 동의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라며 김일성을 몰아붙였다. 베이징 주재 소련대사를 만난 자리에서도 김일성을 티토와 히틀러에 비유하며 호되게 매도했다.

6·25 전쟁 정전 이후 중국지원군은 철수를 주저했다. 1954년 7개 사단이 철수하고, 55년 3월에 6개 사단이 북한을 떠났다. 1956년 4월 북-중 관계가 심각해졌을 때도 44만의 지원군이 북한에 주둔하고 있었다. 완전히 철수하기까지는 2년이 더 걸렸다.
출처

감사합니다. @ra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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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팅소녀 이미지는@cheongpyeongyull 님이 그려주신 작품입니다.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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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제공되는 부페가 ^^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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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있어 또 청주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주는 청주를 자주 가게 되네요
신부를 만나보고 가볍게 아점하고 올라와서 식 보려고

부페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와인을 제공하다니….ㅎㅎ

갓 구운 스테이크와 와인
파라다이스-photo by @raah





요리사가 참치도 썰고 있고 와인도 있고 즉석요리코너에선 스테이크도 굽네요
스테이크는 얇고 와인이 맛있지는 않았지만
##### 구색 맞춰 몇가지 먹다보니
식 시작을 놓쳐버릴 정도는 됩니다. ^^

연어에 와인 깐풍새우


토마토 모짜렐라

### 어느새 식이 끝나가네요 ㅠㅠ



### 돌아오는 길엔 또 하는 수 없이
이번 주는 야동을 여섯번이나 봤습니다.

왠지는 아시죠? ㅋㅋ 그걸 봐야 보리굴비를<==



어제 멋진 탄금대를 둘러볼 때
### 전투기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
근처에 비행훈련장이 있나 봅니다.

이 땅의 전쟁의 포성이 멎은지 언제인데
전투기는 여전히 매일 굉음을 내며 유원지와 결혼식장 위를 날아다니네요 ㅠㅠ
충주를 세번 다녀온 @raah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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