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수채화 인물화그려드리기 이벤트, @raah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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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o님은 주말에 그림 그리시지만,
저는 쉬어요ㆍ
오늘은 서평입니다.
시오노나나미는 제가 오~래 전부터 거의 모든 책을 찾아읽을 만큼
열열한 빠인데요.
알고보면 재미있게 쓰기는 하지만 좀 더 통찰있는 책들과 비교하면
균형있는 역사인식은 좀 부족한것 같아요..
[로마인 이야기] ~ 5권까지
한니발의 포에니 전쟁과 카이사르 이야기들은 정말 독자를 빨아먹어 버리죠.
그러다가 6권부터 로마제국쇠망사를 참고서로 한 교과서가 되어버리죠.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음ㅠㅠ
나름 존경한 작가지만 오늘 여기는 스팀잇이니까…
커뮤니티 수준을 고려해서 한 번 비판적으로 풀어 보겠습니다. ^^
[남자들에게] 같은 책은 편견이 더덕더덕 묻어나지만
오늘 선택한 책은 나름 볼만한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이고.
명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최근 작 아자가트의 [문화와 전쟁 ]을 참조하겠습니다.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줄거리요약 분석 및 비판
서평: 프란체스코의 정신, 콜롬버스의 행운
원래 만든 자료의 차례인데요…너무 길다는 지적이 있어서 내용 스포는1~4 중 뒷부분
하나만하겠습니다.
□ 시오노 나나미의 르네상스
- 탈 권위, 프란체스코
- 언론, 베네치아
- 로마, 수도원, 십자군
- 모험, 대항해 시대
- 순진한 시오노, 그녀의 한계
□참고문헌: 제럴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아자가트의 [문명과 전쟁] [십자군 이야기] [만들어진 신]
□ 시오노 나나미의 르네상스란.
이 분을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시므로…살짝 전체 책 줄거리 소개.
[바다의 도시이야기], [르네상스 여인들]은 내가 처음 책에 흥미를 붙이게 한 최초의 책들이다.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은 이 같은 흥미진진한, 시오노 나나미의 “르네상스 저작집” 첫 번째 책이다. 책의 구성은 크게 르네상스 중심지의 이동을 따라 피렌체 → 로마 → 키안티 → 베네치아를 다루는 각각의 챕터가 이어진다.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를 시작한 사람으로서 ‘단테’나 ‘조토’가 아니라, ‘성 프란체스코’와 독일의 ‘프리드리히 2세’를 이야기 한다. ‘예술 부흥으로서의 르네상스’를 본다면 단테나 조토가 시작이 맞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 역사의 변화는 어떤 성과가 나타나기 전, 사람들의 마음과 머릿속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보고 싶고, 알고 싶고, 탐구하고 싶어 하는 본성의 분출을 르네상스의 핵심으로 본다면 그 정신의 시작이 성 프란체스코와 프리드리히 2세에서 시작한다고 본 것입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창립자로서 ‘공포’와 ‘억압’ 중심의 기독교 가치관을 ‘사랑’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라틴어가 아닌 자신의 이탈리아어를 통한 미사나 찬송들을 퍼트린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한 인물이다. 당시로서는 정말 혁명적인 일이었다. 이후 기독교에 몸 담는 사람들은 성직자와 수도사, 두 갈래 길로 나뉘게 된다.
[십자군 이야기]를 읽으면서 잔혹한 학살과 어리석은 몰살로 점철된 지난한 십자군원정 기간에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하여 술탄과 평화로운 교섭을 이끌어낸 프리드리히 2세의 이야기는 정말 다루어 볼만한 소재라고 느꼈었다.
이 멋진 확열린 군주의 뛰어난 성품을 만든 바탕은 무엇일까.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군주의 모습임을 조명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로마 → 베네치아로 이어지는 길에 키안티를 둠으로써 같은 시기 사회경제적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던 대항해시대에 대해서도 짚어본다.
역사는 변하고 흘러간다. 하지만 그 역사를 이루는 것은 인간이며 어떤 한 인간의 생각의 변화와 도전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 지면서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게 된다. 모든 것은 한 두사람의 ‘각성’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 책은 독자들을 르네상스가 무엇인지, 그 중요성과 사상의 본질을 생각하고, 르네상스가 어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인도한다.
프란체스코와 프리드리히의 열린 마음은 중세의 닫힌 문들에 빛을 비추었다. 그러나 이어 십자군을 일으킨 교황과 체사레 보르자, 대양을 건너간 바다의 사나이들에게 까지 영광스런 자유와 부흥의 관을 씌워 주려는 시오노 나나미의 시도는 편협함을 드러낸다. 르네상스 자유사상이 꽃핀 이후에는 많은 열매들이 열렸는데 그 열매중에는 이미 벌래 먹고 썩은, 악취가 풍기는 부분이 많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 남자들의 숨은 면목을 애써 외면한다. 흥겨운 소설만을 쓰기 위함인지.
…..중략….
…..
사실 신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신이 뭔가 말했다는 것은 단지 신자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십자군은 애초 유럽의 인구증가가 발단이다. 늘어난 인구가 유럽에서 먹고 살 여지가 남지 않자 무기를 들고 팔레스타인으로 몰려간 것이 원인이지만 이런 경우 반드시 이론무장이 필요하다.
단순 난민은 기세가 오르지 않는다. 종교야말로 이런 데 안성맞춤이다. 성지탈환의 명분을 ‘신이 원한다’고만 하면 그리스도인의 도리가 된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십자군 전쟁은 교황 우르바노2세의 작품이다. 당시 교황권은 민족국가 왕권에 밀려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교황청은 조직이 허술했다. 교황은 둘로 나누어져 있었고
[십자군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즉, 곤궁에 몰린 우르바노2세가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방법을 찾을 때 찾는 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다.
신앙, 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가. 신앙은 전쟁기술 연감에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
4. 모험, 대항해 시대
-1488 바르톨로메우 디아스(포)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에 들어간다.
-1492 콜럼버스(이-제노바)가 에스파냐 여왕 후원으로 아시아를 찾아 서쪽으로 가서 대서양을 횡단한다. 1504까지 네 번 8년동안 쿠바,파나마, 온두라스 등을 발견한다.
-1497 바스코 다 가마(포)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이른다.
-1499 아메리고 베스푸치(이탈리아-제노바)는 남아메리카 북해안과 동해안을 답파한다. 그는 -메디치 상사 에스파냐지점에서 근무했다. 에스파냐 왕이 후원했다.
-1519~ 마젤란(포)이 남아메리카를 돌아 넓은 바다에 이르러 ‘태평양’이라 이름 붙인다.
-1524,1528 베라차노(이탈리아 그레베)가 프랑스 왕의 후원으로 뉴욕 등 북아메리카 동해안을 답파한다.
이들이 감행한 대 항해의 후원자는 포르투갈 왕이 두 번, 에스파냐 왕이 세 번, 프랑스 왕이 한번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탐험을 기획하고 자금제공자를 찾았지만 이미 인도 교역로를 잘 활용하고 있던 베네치아는 관심이 없었고, 제노바는 에스파냐왕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에스파냐인이 생각하는 새로운 시장이란 거기 사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었고 , 베네치아 사람들의 시장이란 ‘교역기지’를 의미했다. 때문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은 대항해 시대를 기획했지만, 식민제국시대의 물결을 타지는 못했다. 항해의 기획자들은 대부분 항해를 계속하다가 죽거나 불우한 생을 마친다. 그들은 일급 선원인 동시에 일급 천문학자 수학자, 지리학자였다. 콜롬버스가 배를 몰고 서쪽으로 갈수 있었던 것도 14세기 프랑스 신학자 피에르 다이의 지리학서 [세계의 형상]을 연구한 탓이다. 황금에 이끌려 바다로 나갔다는 평가에는 문제가 있다.. 288
5. 순진한 시오노, 그녀의 한계
시오노 나나미의 한계는 그녀가 순진하다는 것이다.
첫째, 그녀의 대표작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로마의 공화정을 이끈 사람들은 남성적이고, 헌신적이며, 명예를 존중하고, 국가에 헌신한다. 그리고 그들은 무적이었고 합리적이었다.
모두 이탈리아인들의 기록을 그대로 믿고 옮긴 것 뿐이다.
그러나. 로마제국 쇠망사를 비롯,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조금만 들여다 보면, 초기의 로마가 성공적으로 도시국가 연합에 성공하고 세력을 키워간 것은 어느정도 행운이 따르는 장점이었다 칠 수 있지만 살아남으려는 본질은 끈질긴 욕망일 것이다.
이자가트는 로마의 성공원인을 그저 로마 부유층의 끈질긴 투자가 성공한 것이라 말한다. 이후 로마인들의 욕심과 탐욕, 잔인함, 그리고 제국을 이룬 후 즉시 보이는 냐약함과 나태, 몰락은 다른 문명이나 국가들의 쇠락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사실 로마 공화정에 민의가 포함되고 호민관이 생긴 것은 그들이 합리적어서라는 말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 때는 징집된 시민보병이(다시말해 동원된 대군이) 소수의 기마 전사를 밀어내던 시기였다. (마게도니아의7.5M 장창 중무장 보병, 팔랑크스를 생각하라)
전쟁에는 일반서민병의 역할이 강조되었고 귀족, 원로원들은 도시국가들간의 투쟁에서 시민병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로마 평민들은 농성을 통해 부유한 귀족들을 대신해서 누리는 것도 없는 본인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거부했다. ( 그래서 민회도 생기고 호민관도 생겼다.)
로마의 제도는 이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참주-독재정 역시 민중들의 인기를 의존하여 만든 팔랑크스 대형으로 귀족들의 기마전사를 대체하며 귀족들의 불만을 통제했다. 로마 왕 세르비우스 톨리우스는 막강한 귀족들의 친족기반을 약화시키고 군단에 시민 팔랑크스를 만들고 시민 중장보병 민회를 설립했다. (시민보병들은 대체로 약간의 무장을 할 정도의 재산이 있는 시민들이었고 무겁고 비싼 흉갑이나 투구는 필수 장비는 아니었다.)
*이런 현상은 모든 국가에 시민병의 필요를 불러왔고 모든 맹아적 도시국가는 민중과 화합할 필요가 생겼다. 기원전 510년 로마도 왕이 쫒겨났을 때, 귀족은 민중과 긴 타협 후에 귀족-민중 공화정이 되었다. - 아자가트의 [문명과 전쟁]
둘째, 그녀는 이 책에서 대양항해 시기의 모험이 ‘돈’이 아니라 르네상스인들의 모험정신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보고 싶은 매력에 잘 빠진다. 모험가들이 황금에 눈이 멀어 모험에 나섰다는 말을 부정하는 것은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항해 시대의 열쇠는 모험정신, 나침반이 아니라 재정 혁명이었다.
- 제해권과 상업을 통해 1500년 등장한 지구적 무역체계가 ‘유럽의 기적’의 진짜 엔진이라고 아자가트는 설명한다.
바다무역을 통해 시장을 열어버린 세계무역시장은 유럽 일부국가에 더 많은 자원을 주고 권력을 주었다. 부를 통해 산업화가 가능하게 했고 부와 권력이 비약적으로 증대하게 했다,
저자가 볼 때 전쟁의 성패는 결국 돈과 인력이다.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는 몇 회의 대 회전에서 승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수개월 수년을 이어지는 포위전의 병창을 유지하는 것으로 승리를 거머 쥐었다. 로마의 부유층들은 적극적으로 이 전쟁에 투자했다.- 이자가트 문명과 전쟁 중에서
바야흐로 민족국가들이 나타나고 그 민족국가들이 큰 자본으로 새 새장을 개척하는 시기, 쇠락해가는 도시국가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도전이 무엇이겠는가? 그녀의 말대로 모험가들이 ‘황금’을 찾아 떠난 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떠나도록 한 것은 더 큰 황금인 ‘시장’을 찾는 대 자본가들이었다. 모험정신이 필요하면 모험가가 출연하기 마련일 뿐이다.
셋째, 에스파냐와 같은 구세계는 처음부터 신세계를 지배하기 원했을까? 아닐 것이다.
지중해 연안을 싹쓸이한 베네치아와 같은 교역국의 성공을 보면서 후발주자인 거대 민족국가들은 교역과 상품을 팔아버릴 시장을 원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뜻밖에 일들이 일어난다.
인류 역사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 세균들
1519년 코르테스는 지독하게 군사중심적인 인구 수천만의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600명의 스페인인을 이끌고 멕시코 해안에 상륙하여 아즈텍 수도까지 입성했다가 병력의 2/3만을 잃고 무사히 탈출하여 겨우 해안까지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코르테스가 다시 쳐들어 왔을 때…1520년 쿠바에서 한 노예와 더불어 멕시코에 도착한 유행병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아즈텍 족을 몰살 시켰다, 그 속에는 쿠이틀라우악 아즈텍 황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페인인은 내버려 두고 인디언만 골라 죽이는 이 수수께끼의 질병 때문에 아즈텍의 생존자들은 사기가 크게 저하되었고 2000만에 달했던 멕시코 인구가 1618년에는 160만으로 곤두박질 쳤다, 1531년 피사로가 168명을 거느리고 수천만의 잉카를 정복하기위해 페루해안에 도착했을 때도 그와같은 무시무시한 행운이 따랐다, 1562년경 들어온 천연두가 우아이나 카파크와 그의 후계자를 포함하여 잉카족 인구의 대부분을 몰살시켰던 것이다, 제위문제로 두 아들이 내전을 벌이는 틈을 타서 피사로는 분열된 잉카족을 쉽게 정복할 수 있었다, p308
잉카족은 이 때 말과 철기무기를 처음 접한다.
*……1540년 에르난도 데 소토는 미국 동남부에 진출한 최초의 유럽인 정복자가 되었다, 당시 그가 지나간 인디언 마을들은 이미 2년 전부터 텅 비어 있었다, 해안에 찾아온 스페인인들에게서 전염된 유행병들이 해안 인디언으로부터 퍼진 것이었다,…..1492년에서 유럽인들이 체계적으로 미시시피강 유역을 답사하기 전 까지의 기간동안 (아마도 질병으로 인해) 그 사회들이 붕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북 아메리카에는 탐험가의 기록을 검토한 결과 인디언들은 약 2000만에 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컬럼버스 이후 한 두 세기에 걸쳐 인디언의 인구는 최대 95%가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디언을 죽인 주된 요인은 구세계의 병원균이었다,
-총균쇠 p309
역사가들은 서양의 식민제국주의를 이렇게 평한다. 이 평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제국주의는 다른 어떤 요인들이 작용했든 간에 어느 정도는 단지 그것이 아주 쉬워졌기 때문에 진행되었다”-[제국의 도구들] 대니얼 헤드릭
모험에 몸을 던지는 강건한 사나이들이 새 세상을 개척하여 새 시대를 열어젖히는 멋진 판타지를 그리는 것은 그녀의 취향이다. 그리고 그녀의 글들은 여전히 잘 읽힌다. 하지만 세계역사의 우연속에서 우연히 유리한 입장에 선 사내들이 기회를 놓지지 않고 악행과 착취로 약탈을 일삼은 사건의 이면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은 역사를 서술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다층적 문제의식이 결여된 것이 아닐까. 아니, 혹은 전혀 무지했거나.
하지만 [로마인 이야기] 중 후반부 책들을 제외한다면, 여전히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은 첫 장을 열면 가볍고 기분 좋게 읽어나가게 되는 흡입력 있는 매력적인 책이다. 사실 처음 나를 독서의 길로 이끌어 무지의 늪에서 건져준 책들이 바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이다. 내가 역사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녀의 유려한 필치에 힘입은 결과였다. 어차피 나는 그녀의 새 책이 나오면 아마도 읽을 것이다.
[자본의 탐욕과 노동자의 소외]- “경제는 이론이 아니다. ‘의지와 결정’의 문제다.”- 장하준 [경제학 강의]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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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탐욕스런 가해자의 기만적 경제이론과 그 피해자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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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인구수 비례 세계 최강 올림픽 메달 국가는? [사회주의 100년]요약
https://steemit.com/kr-event/@raah/100
*봄이 다가오고 있어요…소심하고 성질 더러운 뉴비가 상처받고 포기하지 않도록
오늘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 뉴비가 붇혀버리지 않도록 ..리스팀 을..~~ 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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