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단 1분도 행복한 적 없었어”
“ 난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더니 코메디였어…..ㅠㅠ”
늦었지만 조커를 봤습니다.
올해 각종 영화상은 호아킨 피닉스가 휩쓸 것이라고 예상해 봅니다. [스포는 별로 없음]
photo by @raah
어쩌면 [기생충]의 유럽식 혹은 미국식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이죠.
기괴한 웃음소리, 뭔가를 상징하는 듯 말라비틀어진 몸, 느릿하고 소름돋는 춤선은 기괴하고 비호감적이지만, 측은지심인지 근원적인 슬픔은
결국 분노와 테러, 폭력으로 해소됩니다.
<조커, Joker, 2019> 토드 필립스 감독, 호아킨 피닉스 주연,
폭력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예술과 문학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통념상 비난의 대상이되는 간통녀, 살인자, 루저, 범죄자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하는것이 예술이죠
[마담보바리]저자 플로베르가 ‘보바리가 바로 나다.’ 라고 했을 때 그 의미는 보바리 부인이 부르주아적인 근성과 저급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을과 자신의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망에 가득 차 있음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의미이죠.
소설 [웃는 남자]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는 실제 사실을 배경으로한 소설입니다.
17세기 부자들은 난쟁이 처럼 특이한 신체를 가진 아이들을 조커로 고용하는 경향이 있었죠
그래서 가난한 이들이 자기 자식을 팔기위해 일부러 입을 찢어
웃는 얼굴을 만들어 팔아버리는 일이 많았다고…
이 게
실화라는 점에서,
당시에 이러한 일이 많이 행해졌다고 하니 웃고 지날 일이 아니지요.
[웃는남자]라는 영화의 포스터에 [조커의 탄생]이라는 문구가 있는것도 이 때문입니다.
영화[웃는남자]의 평점은 높지 않습니다.
소설 [웃는 남자]는
[파리의 노트르담][레 미제라블] 1800년대 소설 문학계를 이끌었던 거장, 빅토르 위고의 작품입니다
바로 [배트맨] ‘조커’ 캐릭터 탄생에 모티브가 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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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웃으며 살아 갈 수 밖에 없었던 어느 남자의 이야기이죠.
[배트맨 다크나이트]에 처음 등장한 조커가 폭력을 불러일으켰듯이 이번 [조커]도 그런 범죄자와 루저들을 자책감에서 끌어내어 분노의 표출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입이 찢어진 [배트맨]의 ‘조커’가 폭력적 존재 자체로서 ‘저항자’의 실존적 의미를 지니지만
하는 짓이 너무 폭력적이라 공감을 얻기 쉽지 않았다면
영화 [조커]에서의 조커는 실제로 입이 찢어지지는 않았지만
더 인간의 모습을 하고있고 더 설득력있는 배경설명이 이어지므로 사람들은 쉽게 공감합니다.
“엄마는 항상 저에게 웃으라고 했지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라고”
주인공의 정체성이 망상증 환자에 의해 강제된 “조커”임을 의미하는 대사입니다.
이런 사람이 21세기에 입까지 찢는 건 어울리지 않죠.
그의 불안증, 정신 질환, 그의 마른 몸, 낙후된 환경은 모두 그가 사회 극빈층의 삶을 대변함을 의미합니다.
그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나쁜일이 일어나고, 더 나쁜일이 생기고, 더 , 더, 더 불행한 상황에 몰려갑니다.
그게 그런 사람들의 일상이 되죠…
그런 불행이 게으름이나 더 노력하지 않음에서 왔다는 주장은
‘재수없는 세 명의 주류직장인이나 시장의’ 언론, 사장의 주장이지만
바로 그들의 재수없음,
예의 없음이 이들의 불행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는 벼랑에 몰렸을 때 조커는 폭력을 사용하고
- 처음엔 부득불,,, 그 다음엔 그냥, …그 다음엔 어느정도 의도적으로
(관람객의 거부감을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하죠, 그래서 명작들은 대부분 책이 두껍죠 ^^)
그리고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점점
카타르시스를 경험합니다.
죄책감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 더 잃을게 없으니까”
영화 속의 조커가 말했던 것처럼, 그들의 존재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다가 이렇게 충격적이고 폭발적인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이 알아채기 시작한다.
<조커>는 광기의 역사 속에서 짓밟힌, 한 광인으로 대표되는 약자들의 절망감을 보여주는 영화다.
아서 플렉은 처음부터 정신병자이긴 했지만, 처음부터 조커였던 것은 아니다.
자신을 버린 부모에게 어린 아이가 사랑을 갈구하는 것처럼, 아서는 사회에 속하기 위해 애처로울만큼 발버둥친다. 일반적인 웃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하고,
TV 속 머레이와 만나 인정받는 상상을 하는 것
, 그리고 토마스 웨인에게 찾아가 자신을 아들로 인정하라고 소리지르는 장면 등은 그가 얼마나 이 사회에 속하고 싶어했는지를 보여준다.
유머는 주관적인 거예요.” 그는 말한다. “당신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정하지. 무엇이 웃기고 그렇지 않은지를 정하는 것처럼.” 사회는 그를 부적응자, 옳지 못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를 비웃고 조롱하지만 그 코드화, 사회화 자체가 정의는 아니고 주관적인 거라 말합니다. 그러니 범죄자를 나쁘게 보는것도 일종의 사회적 편견이죠.
법이란 것, 원래 우리 허락받고 만들었어요?
- 로마법은 왕으로부터 시민귀족을 보호하는 기능을 했고
*프랑스 혁명 후 만들어진 나폴레옹법도 대부분 부루주아지의 재산권을 지켜주는 내용위주로 만들어 졌습니다.
농민, 노동자는 여전히 이름만 자유민인 피 지배 노예의 비참한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조커는 정치 따위에는 관심없다. 그저 못되게 군 이들에게 처음으로 복수했을 뿐이다. 영화 자체도 사회고발적이기는 하나, 정치적 색을 감추고 문학적이다. 영화에서도 좌파 정치인이나 이슈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회에 대한 개인의 순수한 분노다 .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하자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사회에 대한 분노가 쌓이고 쌓이다가 고담의 광기어린 시위대가 됐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은 조커를 예수처럼 모신다.
양극화의 끝을 그린 사회적 디스토피아물이다.
다 보시고 나서도 혹 이해 못하실 부분이 있을 수 도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스포를 조금 하면
이 남자는 엄마의 ‘그 질병’을
어느정도 물려받은 듯 합니다. 그래서 좀 위로받기도 하고요. ..^^ 그게 정신병의 증세이자 순기능이죠.
정신질병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견딜수 현실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죠
어디까지를 병리현상에 의한 사건으로 보는가에 따라 영화의 구조는 완전히 뒤바뀔 수 있습니다.
https://www.themoviedb.org/movie/475557-joker
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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