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 여보.
어제 갑자기 황석영 [오래된 정원]의 마지막 문장이 생각 났습니다.
우리 근, 현대사에 만주에서 독립운동하시던 분들의 알려지지 않은 인생사들을 제외하면 70년대 민주화운동하다 흩어지고 찢어진 인연들이 얼마나 절절할까요….오래된 정원은 그런 인생을 가장 문학적으로 잘 표현한 가슴쓸어내리는 이야기입니다. 두 주인공은 민주화운동 중 잠깐 만났다가 찢어진 사이입니다…. 조만간 소개하겠습니다만,5.18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오현우는 18년간 감옥에 갇혀 수인생활을 합니다. 그동안 그와 같은 헌신을 통해 조금이나마 밝아진 세상에서 그는 가까이하기 위험해 보이는 그저 시커먼 존재일 뿐입니다. 그의 동료들은 바로 그들의 당연한 권리를 위해 몸에 불붙이고 아스팔트에 떨어졌는데 말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종이와 풀의 역사]라 비판받는 역사가의 ‘주관’을 제거한 공정한 역사서술…..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우리 역사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라는게 있다고?
지금은 득세하고있는 좌파가 문제라고?
프랑스에 비해 우리의 민주주의가 너무 더디게 발전한다고?
그 모든걸 떠나서 역사에 정의가 있나요?
과거에 일어난 일들과 사건들을 감추지 않고 다 드러내야 할까요?
카는 그런 질문을 반박하며 우리 각 개인들이 나름의 정의에 기초한
‘역사인식’을 갖출 필요에 대해 서술합니다. …
- 역사가와 그의 사실-현재와 과거의 대화
- 사회와 개인-오늘과 과거사회와의 대화
- 3.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역사. 왜? 라는 질문
-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역사는 어디로?
- 진보로서의 역사- 역사관과 사회관
- 지평선의 확대- 움직이는 세계
2. 사회와 개인 까지만 소개합니다.
1. 역사가와 그의 사실-현재와 과거의 대화
19세기는 사실들을 숭배한 시대였다. 역사가들은 ‘인생에서 사실만이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했다.
1830년대 랑체는 역사의 도덕주의 화에 항의했다. 역사의 의무는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주장하는 실증주의자들은 로크, 러셀 등 경험주의적 전통과 일치했다.
경험주의 인식론은 주체와 객체의 완전한 분리를 전제한다.
역사가는 생선장수의 좌판의 생선처럼 ‘사실’들을 집어들 수 있다.
카는 이런 입장을 비판한다. 그의 노트를 살펴보면 더욱 노골적인 비판이 적혀있다. 단지 당대의 사실을 빈틈없이 정확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수집하여 기록하는 것을 임무로 생각하는 역사가는 보르헤스의 [기억의 천재 후네스]와 같다고 말한다. 후네스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내 기억 속에 있는 것은 쓰레기더미’라고 자백한다.
역사가 사실의 기록이긴 하지만 ‘사실’은 ‘역사가’가 허락할 때만 이야기를 한다. 어떤 사실에게 발언권을 줄 것인가 서열을 매기는 것은 역사가다.
즉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초기 기독교 관점에서, 티유몽은 17c프랑스인의 관점에서, 기번은 18세기 영국인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다. 어느 관점이 옳은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콜링우드는 ‘가위와 풀의 역사’에 역사를 ‘단순한 사실들의 편찬 ’으로 보는 견해에 반대한 나머지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결국 어떤 의미든 거의 똑같고, 무의미해 지는 이론에 이르게 된다.
역사가의 곤경은 인간의 본성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그의 환경에서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고 그것의 무조건적 지배자일 수 없다.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역사가와 그의 연구주제의 관계와 같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2. 사회와 개인-오늘과 과거사회와의 대화
어느 누구도 그 자체만으로 전체를 이루는 섬이 아니다. -던.
사회와 개인은 분리될 수 없다. 개인주의자 밀이라 하더라도 인간을 ‘함께 모이기’이전에도 존재한 실체로 전제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세계는 우리에게 작용하기 시작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도 사회적 취득물이다.
‘인간성’도 나라마다 세기마다 무척 달랐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명-부르크하르트]에서 개인숭배는 르네상스와 더불어 시작되었고 그 이전에는 오직 어느 한종족, 주민, 집단, 가족의 구성원으로서만 자신을 의식해왔던 인간은 비로소 그 시기에 ‘정신적 개인’이 되었다. 이후 프로테스탄티즘, 산업혁명, 자유방임, 프랑스혁명 등도 개인숭배와 연관이 있었다.
역사가는 역사의 일부이다. 그 행렬 속에서, 그가 있는 그 지점이 과거에 대한 그의 시각을 결정한다. 그로트(1794-1871 영국)가 [그리스사]에서 아테네의 노예제 문제를 무시한 것은 그가 속했던 집단이 영국의 새로운 공장노동자 계급 문제에 대처할 수 없었음을 반영한다.
하지만 카는 역사적 사건이 개인들의 의식적 행동이 아니라 무의식적 의지를 이끄는 외부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도 터무니없다고 본다. 신의섭리, 세계정신, 명백한 운명을 History를 이끄는 힘으로 보는 견해에 반대한다.
“‘역사’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재산을 소유하지도 전투를 벌이지도 않는다.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인간, 현실에 살아있는 ‘인간’이다.” - 마르크스.
카가 볼 때 역사는 대중사회의 결과물이다. 그는 대중의 숫자에 주목한다.
역사란 상당한 정도까지 ‘수數’의 문제다.
역사가 위인들의 전기라는 유감스런 주장을 한 칼라일도 말한다. ‘2500만명의 가슴을 짓누른 굶주림과 헐벗음의 억압. 이것이 프랑스혁명의 동인이었다. 어떤 혁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프랑스혁명의 역사
정치는 대중, 수백만 명이 모인 그것에서 시작된다. -레닌. - 비인격적인 것은 없다. 비인격성과 익명성을 혼동해서 안 된다.
18세기 러시아 예카리나 대제와 농민반란을 이끈 푸가초프, 군주와 반역자를 특정한 개인으로 상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은 똑같이 그 시대의 특정조건의 산물이다. 그들이 역사속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추종한 대중 덕분이다. 자기 시대와 국가, 사회에 대해 니체만큼 철저하게 반항한 인물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니체도 중국이나 페루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독일사회의 산물이었다. 역사 위인설, -좋은 여왕 베스학설 같은- 은 유럽근대사를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레닌을 중심으로 쓴다. 하지만 그들도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다.
‘그 시대에 어울리는 비범한 인물, 크롬웰 같은 천재도 오늘날이라면 눈에 띄지 않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다.’ -기번
그는 톨스토이처럼 위인을 ‘사건에 이름 붙여주는 꼬리표’에 불과한 존재로 취급할 것까지는 없다고 하면서, 히틀러의 경우처럼 ‘위인은 대부분 악인’이라는 명제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고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두 가지 의미에서 –역사가와 연구주제인 사실, 그리고 그것이 과거의 사실이라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며, 개인은 그 과정에 사회적 존재로서 참여한다. 그래서 그이 답은,
“역사란 오늘의 사회와 과거의 사회와의 대화이다.”
역사란 ‘한 사회가 과거의 사회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다.’-부르크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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