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시맨> (The Irishman)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알 파치노, 하비 케이텔
<대부>쯤 이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조합이죠. 무려 3시간 3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영화매니아 미국친구의 소개로 보게 되었는데 명작입니다. “원스어펀어 타임인 어메리카” 급입니다. 물론 살인 장면이 많기는 하지만 그리 잔인하지는 않습니다..
긴 러닝타임을 순전히 배우들의 힘으로 꽉 채웁니다.
9시쯤 영화한편 보고 잘까 했는데 지루한 줄도 모르고 보다가 보니 “뭐지 좀 긴데?” 하고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었더군요ㅠㅠ
로버트 드 니로와 조 페시, 알 파치노
등을 중심에 배치하고는 조연과 카메오 사이의 배우들을 촘촘히 배열해 폭발력을 키웠죠. 감정의 격앙 없이도, 양복 빼입고 몇 마디 없는 대사만으로 프레임을 휘어잡는 노장과 대가들의 오케스트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국 역사상 유명한 노조 위원장이었던 지미 호파 실종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이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샤론 테이트 사건처럼 하나의 재료에 불과합니다. 정확히는
프랭크 시런, 러셀 버팔리노, 안소니 프로벤자노 등 지미 호파만큼이나 중요하게 묘사되는 인물들이 벌이는 크고 작은 대화와 사건들을 일대기처럼 따라가는 구성입니다.
영화는 마피아 조직 킬러로 일했던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니로)의 삶과 사건을 담담하게 그리는 줄거리입니다.
줄거리 미리니름 세 줄 만 ^^
식당에 고기를 납품하던 트럭 운전수였던 프랭크는 우연한 기회로 지역 유지이자 권력자 중의 권력자인 러셀과 안면을 트게 됩니다. 러셀은 목적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개의치 않을 프랭크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렇게 프랭크의 새로운 “페인트공”의 삶이 시작되죠.
페인트공이라는 직업의 섬짓한 뜻은 영화를 시작하면서 바로 알게 됩니다. 조직의 행동대원들이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장면들이 전체 영화 구석구석에 배치되어 영화가 그리는 지미호퍼 실종사건의 결말을 증언합니다. .
액션이라고 해 봐야 권총 몇 방 쏘고 주차된 차 몇 대 터뜨리는 것이 전부지만, 그 길고 긴 러닝타임 내내 배우들의 얼굴을 젊게 만드는 CG로 막대한 제작비를 사용했습니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인물과 사건 어디에도 집중하지 않습니다. 분명 프랭크 시런을 화자로 두어 그의 목소리와 시선에서 사건을 전개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건들에서 그는 철저한 관찰자이자 중개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주인공의 성장 혹은 변화, 격동하는 역사 중 딱히 어느 것도 강조하지 않습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전자는
프랭크 시런의 목소리와 시선에서 사건을 전개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건들에서 그는 철저한 관찰자이자 중개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물을 통해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이야기하죠.
그 이름만으로도 모두를 벌벌 떨었던 이름들과 사건들은 그저 한사람의 맡은 ‘일’을 처리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이름과 사건들은 모두 잊혀져 갑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바쳐 지켰던 무언가는 어느새 자신도 무엇인지 말하지 못할, 말 그대로의 지나가버린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사람,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열하듯 보여주죠.
3시간 반 중 의외로 낭비하는 시간은 없습니다. 롱테이크로 야심을 드러내거나 사족으로 관객들을 괴롭히지도 않죠. 그저 그만큼 하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방대했을 뿐입니다.
지미 호파의 양아들 처기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무슨 생선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 수가 있어?” “생선이 날 기다리고 있었어.”
‘지미 호파’ 실종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 중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 역할만 합니다.
총평
원스어펀어 타임 어메리카보다 폭력성은 높지 않지만 잔인한 세계를 이끌고 가는 세 명의 주인공들이 그저 평범하고 다정한 이웃 관계로 그려진다는 점이 이영화의 사실성이라 높게 평하고 싶습니다. 가짜 간첩을 고문으로 만들어 내던 남산 대공 분실의 잔인한 수사관(남영동1985)홀로코스트의 유대인을 학살하던 나치 관리(책읽어주는 남자)도 그저 평범한 직장인인 것이 사실이죠.
그러므로…
프랭크도 딸 패기를 극진히 사랑했지만 딸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거친 해결 방법은 다정한 지미 호퍼아저씨가 프랭크 시런의 딸 패시와 잘 지낸는 방식과 대비됩니다.
지미호파는 제 멋 대로 살다가 인간으로서 살해된 ,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사람입니다.
페기가 호퍼아저씨와 잘 지내면서 프랭크에게는 마음을 닫고 만다는 슬픈 결말 이 영화의 감추어진 한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시대의 거침에 밀려 정신없이 살다보니 한 때 사회를 좌지우지 하며 살았지만,쓸쓸하게 감옥에서 자기들끼리만 어울려야하는 실패한 노인들의 종말.
주변에 사람이 깃들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아저씨들의 외로운 종말이죠.
요즘
뭣이 중한지 모르고
막말을 쏟아내는 어떤 정치인들이 보면 어떤 감상에 젖을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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