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의 적이 더 무섭다.


조국을 장관으로 임명했는데도 여전히 시끄럽다. 피로감을 느낀다. 어제는 법무부에서 윤석렬을 배제한 조국관련 수사를 제의했다고 한다. 조국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말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조국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고 하는 말이 무슨결과와 의미를 초래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럼 법무부 차관과 검찰국장이 스스로 알아서 그런 제의를 했다는 말인가? 만일 조국이 모른다면 그것은 청와대에서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 추측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조국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함으로써 법무부의 윤석렬 배제 요구에 대한 책임의 범위를 청와대로 넓혀버렸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국정감사와 특검이 열리면 당연히 청와대 참모진도 대상이 될 것이다.

아마 야당은 국정조사뿐만 아니라 특검을 요구할 것이다. 법무부는 스스로 자승자박하는 일을 저질렀다. 움직이지 않아야 할때 움직인 것이다. 법무부가 분탕질을 저질렀으니 누가 검찰수사를 믿겠는가?

조국을 장관으로 임명하고 나서 상황이 조용해지길 바랐다. 대통령이 말한 것 처럼 검찰은 검찰의 일을하고 법무부는 법무부의 일을 하면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무부가 검철의 일을 간섭해버렸으니 이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조국을 장관으로 임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주변안보 상황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장관은 검찰개혁을 제1의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일본과의 경제전쟁과 북핵문제 그리고 미국의 방위비 분담요구와 같은 외부의 위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외부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힘을 결집시켜야 한다. 외부의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시기에 내부의 문제로 힘을 빼버리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우리는 역사교과서에서 그런 예를 많이 본다. 대부분 왕조의 멸망은 내부의 분열로 시작된다. 정쟁에 절제가 있어야 하는 것은 잘못하다가 밥그릇을 통채로 깨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조국을 비난하는 집단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자한당 무리요. 또다른 하나는 개혁적 성향을 가진 세력이다. 자한당 무리가 조국을 비난하는 것은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 그들은 조국과 비교할 수 없는 더한 적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같은 개혁진영내에서 조국을 비판하는 것이다.

같은 개혁진영내에서 왜 조국을 비판할까? 그것은 조국과 같은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개혁진영을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적은 항상 내안에 있는 법이다. 조국을 준열하게 비난하는 것은 자한당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개혁적 세력이라고 해서 집권을 했는데 가만보니 그들이 부패했다는 것이 사람들을 실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한당이 그런 짓을 하면 실망을 덜 한다. 원래 그런 놈들이니까? 그런데 개혁세력이 집권했는데 그런 짓을 하면 타격이 더 크다.

사람들을 화나게 만드는 것은 엄청나게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입만떼면 정의과 공정 그리고 평등, 공평을 주장하던 사람이 실제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고 기회주의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서울대에 복직해서 강의도 안하고 한달봉급받고 추석상여금 받는 그 멘탈이 사람을 열받게 하는 것이다. 서울대 복직해서 한달동안 봉급받고 다시 휴직하는 것 법적으로 문제없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는 문제있다. 법을 공부해서 법만 피해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법보다 도덕이 훨씬 중요하다. 법은 범죄인과 법죄인 아닌사람을 가르는 기준이지만 도덕은 훌륭한 사람과 흘륭하지 못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청문회를 통해서 조국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국 자신도 법을 이야기 했다. 우리는 법죄인을 간신히 면한 사람이 장관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훌륭한 인간이 장관이 되기를 바란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나보다 못한 인간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조국 사태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못한놈이 나를 지배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외부에 있는 적은 무섭지 않다. 자한당 무리는 전혀 무섭지 않다.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자들이다. 진영의 논리로 조국을 옹호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적을 내안에 있는 법이다. 개혁세력이 개혁세력의 적이 되는 상황이다.

누가 누구의 친구이며 적인가는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그래야 노선이 분명해지고 방향이 정해진다. 조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진영논리로 가야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말도 안된다. 지금 우리는 좀더 세밀한 부분에 들어가서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따져야 한다. 개혁세력들이 스스로 옳고 그르고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세우지 못하면 대중들은 떠난다. 지금 떠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지금 우리의 적은 자한당 무리가 아니다. 국민들의 비난에도 눈을 감는 오만함이다.

적이 누군가를 정확하게 정리할 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제는 개혁진영과 보수진영으로 구분하는 것이 무망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노선투쟁은 치열해야 한다. 그래야 선명해지고 떨어져 나갈 것과 지켜야 할 것이 분명해진다. 개혁진영이라는 말로 모두 뭉뚱그려 나갈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 갈라야 한다. 혁신적 개혁세력과 부패적 개혁세력으로.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 외부의 적은 대응하기 쉽지만 내부의 적은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한당은 무섭지 않다. 그러나 개혁진영의 부패한 세력이 무서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Posted from my blog with SteemPress : http://oldstone.dothome.co.kr/2019/09/12/enemy-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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