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심각한 이야기만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한번 사는 것인데 항상 심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유를 가지기는 쉽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제가 여행다니면서 느낀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자 합니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이켜 보게하는 좋은 기회인 듯 합니다. 퇴직을 하고나서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퇴직하기 이전과 이후의 여행은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여행은 눈으로 보는데 주안이 주어져 있었다면 지금의 여행은 생각하는데 비중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데로 여행중에 제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한번씩 포스팅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올릴 글은 소쇄원 입니다. 소쇄원에 여러번 갔습니다. 소쇄원이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정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갔습니다만 그때마다 뭐가 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왔습니다. 소쇄원은 사진빨도 잘 안받는 곳입니다. 카메라를 이리저리 대어보아도 제대로 멋있는 장면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녀올 때마다 뭐가 대단하다고 하는 거지 하는 의구심을 품고 왔습니다.
남들이 대단하다고 하는 곳에서 나만 뭔가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를 당해보셨나요 ? 제가 그랬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소쇄원에 있는 정자들보다 더 멋있는 건물이 많습니다. 그리고 계곡도 뭐 대단하다고 하기 어렵지요. 무엇인가 산만한 분위기의 소쇄원이 어떤 멋을 가지고 있기에 한국의 대표적인 정원이라고 하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머리가 띵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쇄원의 모습을 보고 말이지요. 저는 소쇄원의 담이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소쇄원의 담을 보셨는지요 ?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올라가면서 저는 소쇄원의 담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갑자기 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통 담은 외부에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거나 이편과 저편의 경계를 나누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저를 멍하게 만든 것은 소쇄원의 담은 그런 역할을 하나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올라가다보면 소쇄원은 대문도 없고 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저 대나무 숲만 우거져 있지요.
비로소 소쇄원 초입에 있는 조그만 연못을 지나면 담이 보입니다. 여간 신경쓰지 않으면 담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담은 기역자를 그리며 소쇄원 가운데를 지나는 계곡의 윗쪽 부분으로 연결됩니다.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초가정자를 지나서 담은 계곡을 지납니다. 계곡을 지나면서 담 밑에는 넓게 구멍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곡물이 지나가도록 물구멍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곳에 있는 담에 오곡문이라고 씌여있습니다.
그리고 물구멍이 끝나는 곳에서 담은 끝이 납니다. 한사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지나 다시 담이 산밑으로 연결됩니다. 여기서 왜 공간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냥 사람이 다닐 정도의 공간이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문이라면 대문이라도 달텐데 그것도 아닙니다. 눈치 빠르신 분들은 느끼셨을 듯 합니다. 네 그 문은 사람이 다니는 문이 아니라 바람이 다니는 문입니다. 바람이 지나가려면 대문이 있으면 안되겠지요. 바로 옆에 물을 위한 길을 만들어주었으니 바람을 위한 길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소쇄원은 물과 바람에게도 길을 내준 것이지요.
산바로 밑에서 다시 시작된 담은 소쇄원 뒤를 돌아서 연결됩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 담이 어디서 끝나는지 잘 눈치채지 못하게 없어집니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정자 뒤에 담이 부지불식간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 저는 그것을 소쇄원을 만드신 분이 소쇄원을 뒤의 산으로 연결하려고 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쇄원을 인공이 건물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지요.
정자에 앉아서 보면 담은 또 다른 역할을 합니다. 소쇄원의 담은 외부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자에 앉아 있을때 시야를 정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소쇄원에는 세개의 정자가 있습니다. 차례로 한번 앉아 보십시요. 그럼 각각의 정자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잘 정리가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소쇄원의 가장 대표적인 아름다움은 담이 만들어주는 여유라고 생각합니다. 소쇄원은 자연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그런 역할을 담이 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사람뿐만 아니라 바람과 물에게도 길을 열어주고 대우을 해주는 것이지요. 아마 소쇄원을 만들었던 분은 그런 넉넉한 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소쇄원이 도교적 분위기를 많이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당연하지 않을까요. 소쇄원을 만든 양산보는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처형되는 것을 보고 낙향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어떻게 보았으며 어떻게 살았는가를 가장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소쇄원의 담이 아닐까요.
여행 다니면서 보고 느끼는 것은 다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여행지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결국 문화유산도 생각하는 만큼의 의미가 더 덧붙여지면서 해석의 여지가 커지는 것이 아닐까요 ?
소쇄원에 가시면 담과 이야기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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