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예멘 난민, 당신의 입장은 ?

예멘 난민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갑자기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명이 집단으로 들어왔다. 무비자로 들어올 수 있는 제주도로 들어와서 난민 신청을 했다. 난민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주장과 받아 들여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혼란스럽게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난민 대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배우 정우성이 예멘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주장에 대해 갑론을박이다. 어떤 사람들은 난민 수용하자고 하려면 먼저 너네 집에서 데리고 살아라 하는 주장도 있고 우리도 한국전쟁때 난민이 많이 발생했던 국가니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유시민은 썰전에서 예멘 난민에 대해서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했다. 전적으로 수용하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평소 어떤 사안에 대해 일도양단하던 그의 태도와 많은 차이가 있다. 어떤 한 입장에서 섰다가 상당한 비판이 있을 수 있다는 타산 때문일 것이다. 평상시의 그 답지 않다. 어정쩡한 입장에 서는 유시민이 우습게 보인다.

예멘 난민의 수용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보편적 인도주의 정신을 근거로 제시한다. 전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수용하는 것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옳다는 것이다. 게다가 위에서도 언급한 것 처럼 우리나라도 한국전쟁이후 난민을 많이 배출(?)한 나라니 그에 대한 응분의 보답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 같다.

예멘 난민의 수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슬람인들이 대거 들어간 유럽에서 보여준 그들의 부작용을 든다. 이슬람의 난민들이 서구의 전통적 삶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으며 집단강간 같은 일들도 서슴치 않고 저지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형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슬람 국가들도 수용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왜 우리가 수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오기전에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지아에 갔다가 다시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제주도로 들어왔다.

여기에서 제주도의 무비자는 이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관광객들을 편하게 수용하기 위해 무비자를 도입했다. 그런데 이제 제주도는 본국 사람들이 가기를 꺼리는 곳으로 점차 변하는 것 같다. 작은 이익을 위해 큰 손실을 초래하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그래도 당장 수익을 조금 더 얻는 것이 좋다면 나중에 제주도 사람들의 자식들이 더 많은 피해를 보아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예멘 난민 수용문제는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문제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를 관통하는 주의 주장으로 볼 때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가는 문재인 정부가 또 다른 곤경에 처할 위험이 많다. 마치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한다고 하다가 된통 혼난 것 처럼 말이다.

오늘날 모든 국가는 국민국가다. 국민국가란 구성원인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이익에는 안보, 경제, 치안 등과 같은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국민들은 국가가 안보와 경제 그리고 치안을 책임져주기 때문에 세금을 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금 낼 필요가 없다. 만일 나의 이익을 보호해주지 않고 세금을 거두어 가면 그것은 조폭보다도 못하다.

서구유럽국가들이 이슬람 사람들을 받아들인 것을 무슨 대단한 인류애적인 고상한 주의주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완전 오산이다. 그들은 1970년대 이후 줄어드는 인구로 인해 고민하다가 이민정책의 일환으로 이슬람 사람들을 받아 들였다. 하층 노동자로 사용해야 했지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인구의 약 20%가 터키 인들이다. 대부분 잡일과 단순노동에 종사한다.

경제적인 성과는 있었다. 그러나 부작용은 상당히 심각했다. 경제적으로 이익을 본 계층은 상층 자본가들이었다. 싼 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서구의 중하계층은 이슬람 사람들과 대립하였다. 갑자기 들어온 이슬람인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가니 당연히 이슬람사람들에게 적대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종주의는 바로 이슬람 사람들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유럽의 경쟁력이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값싼 노동력에 취한 유럽의 기업들이 미국과 일본보다 뒤쳐지기 시작했다. 고급인력들은 끊임없이 미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유럽은 혁신의 정신을 상실했다. 인구가 줄어들면 생산성을 높이거나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가장 안일한 길을 택한 것이 이민을 수용한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유럽 사회주의가 기반하고 있었다. 인도주의적인 정책이 사회주의의 근간인 것 같지만 길게 보면 그것이 오히려 유렵의 약화를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럽의 전통노동자계층이 사라지면서 유럽의 사회주의도 그 힘을 잃어 버렸다. 역설적으로 사회주의 이론에 가장 근접한 인도주의적 조치가 결국은 자본가들의 이익에만 기여하게 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앞으로 몇십년 이후면 유럽의 이슬람 인구가 지금보다 매우 많이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인구학자들은 유럽은 이슬람 국가로 변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이제까지 한 이야기는 유럽에서 난민을 수용했던 것은 단순히 고상한 이념과 인도주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복잡한 인구학적 문제와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고상한 이념의 주의 주장에도 그 뒤에는 추악한 계산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의 이념과 주의주장은 그런 계산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에서 제기되고 있는 난민 수용 찬성은 그런 복잡한 계산과 타산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순수하다. 그러나 순수함은 간혹 이상한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인의 이념적 순수성은 마치 고질병과 같다.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유럽이 이슬람 인들로 인해 겪은 부작용을 우려한다.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현실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사회에 절대로 동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파괴한다. 이런 우려는 이유없는 것이 아니다. 결국 유럽에서 더 이상 난민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유가 그런 결과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슬람 난민을 수용하려면 그런 우려에 대해서 분명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만일 그런 우려에 대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인도주의적이라는 말만을 한다면 상당한 후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인도주의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그런 국민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슬람 난민과 다른 난민은 매우 다르다. 아마 베트남 난민들이 보트를 타고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면 지금과 같은 소란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일본에서 땅이 가라앉아서 난민이 발생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다면 지금과 같은 소란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소란은 이슬람 난민들이 그동안 유럽에서 보여준 사회, 정치, 문화적 우려와 부작용의 결과다.

아마 우리나라 정부는 난민 심사를 길게 끌 것이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소란을 더 이상 키우지 않으려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이런 난민들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주도 무비자 정책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신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

대책없는 주의주장은 반대다. 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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