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비정상적인 권력을 참고 있는가?

문재인독재.jpeg

아무리 보아도 지금 정권은 정상적이지 않다. 서슬퍼런 3공화국부터 군부독재의 전두환, 노태우를 지나 지금까지 살았다. IMF 사태로 살기 어려워진 김영삼 정권이나 전라도 정권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김대중 정권때에도 국민들이 이렇게 분열되지는 않았다.

국론이 분열되고 오로지 진영논리가 모든 도덕적 가치를 앞서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권때 부터였다. 지금은 노무현이 마치 대단하게 위대한 인물인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태평양에 손목아지가 둥둥 떠다닌다고 했다. 노무현의 무능력과 쌍소리에 질린 사람들이 스스로 노무현을 찍은 자신의 손목을 짤라내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노무현이 뿌려놓은 분열의 씨앗을 이명박과 박근혜는 그대로 이용하고자 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비난받아야할 이유가 많다. 그러나 정말로 그 두사람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국민의 분열을 치유하지 않고 그대로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 문재인 시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분열은 노무현이 만들어 놓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증폭시킨 결과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분열을 문재인은 극대화 시켰다.

우리가 겪고 있는 분열은 가치와 도덕의 분열이다. 혹자들은 진보와 보수의 분열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우리나라에 진보와 보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정당도 제대로된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참칭 진보이자 참칭 보수일 뿐이다.

지금 국민들이 분열된 것은 가치가 아니라 태도문제다. 어떤 가치가 옳으냐 하는 것으로 싸우면 그것은 건전한 진영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가치로 인해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도덕적 기준이 붕괴를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로 싸우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수준의 저질적인 분열적 현상을 우리는 겪고 있는 것이다.

조국에 대한 수사가 예외없이 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수사가 아무리 길고 오래되더라도 그의 범죄를 무위로 돌리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비록 수사가 지연되더라도 범죄는 여전히 범죄다. 수사가 지연되면 범죄가 범죄 아닌 것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가 저지른 짓거리는 길거리의 양아치들도 비열하다고 할 정도의 수준이다.

범죄와 잘못도 수준이 있다. 어떤 잘못은 아무리 그 잘못이 크더라도 그냥 보아넘겨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잘못은 아무리 작더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조국이 저지른 범죄는 죄질이 나쁘다. 특히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용납받기 어려운 일들이다. 비열하며, 야비하고, 저열하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그런 조국의 범죄를 옹호했다. 그리고 그런 수사를 하는 검찰을 공중분해시켰다. 대통령과 직접 관계된 수사를 하는 부서를 거의 예외없이 제거했다. 신라젠은 희대의 사기사건이라는 항간의 소문이 많았다. 이번 검찰의 조직개편에서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금융관련 수사를 할 수 있는 남부지검이 초토화되었다.

이번에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은 정치와 경제의 거악을 징벌할 수 있는 기능을 모두 제거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결국 문재인 권력은 그들이 거악을 저질러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그렇게 해놓고 문재인이 검찰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하라고 하는 것이다.

아마 문재인 정권은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을 동원한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나라 경찰은 유일하게 국내정보를 다루는 경찰, 수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찰이 되었다. 경찰은 거의 견제받지 않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보던지 문재인 정권은 이번의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찰조직의 공중분해를 통해 이정도에서 자신을 향해 오고 있는 검찰을 무력화시키고 총선에서 승리해서 수사망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독재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서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전두환도 장인을 사법처리했다. 김영삼과 김대중도 아들이 사법처리 당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았다. 그들이 문재인보다 권력의 힘이나 정치적 정당성이 약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악이 평범의 얼굴을 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궤변이 합리성과 보편타당함을 억누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나찌 당시 그 수준높은 독일의 지식인들이 히틀러를 지지한 것을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진단했다. 독일 시민들이 자유를 누릴 능력이 되지 않아 자발적으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지금 조국의 비열함을 옹호하고 유재수의 부패를 아무일도 아닌 것 처럼 받아 들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부정을 감추기에 급급한 자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태일까? 그들은 무엇 때문에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과 부패에 눈을 감고 있는가 ?

그들 586이라고 하는 작자들이 전두환의 군부독재에서도 하지 않았던 작태를 옹호하고 있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

지금 우리는 가장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에 서 있다.

작성일자2020년 1월 14일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왜 비정상적인 권력을 참고 있는가?’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