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일본의 무역침략, 마침내 한국국민을 만들어 내다.

한때 우리는 스스로를 엽전이라고 불렀다. 한국인들의 나쁜 점을 모아서 스스로 비아냥거리는 말이 엽전이었다. 엽전근성이라고도 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이 스스로 식민통치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심어 놓은 것이었다. 최근 들어 엽전근성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는 해방이 되었고 국가를 건설했으나 국민다운 국민이 되지 못했다. 국민국가의 국민은 스스로 국가를 만들었을 때 형성된다. 우리 힘으로 국가를 만들지도 못했고, 전쟁에서 스스로를 지키지도 못했으니, 그동안 우리는 형식으로는 국민이었으되 내용으로는 국민이 아니었다.

프랑스 인민들이 국민이 된 것은 프랑스 혁명이었다. 프랑스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오스트리아-프로이센 군대가 처들어왔을때, 프랑스 인민들이 스스로 전쟁에 나가 싸워 이기면서 비로소 국민이 되었다. ‘발미전투’가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를 어긴다는 이유로 스페인에 처들어갔다. 스페인 군대는 추풍낙엽이었다. 그러나 나폴에옹은 승리하지 못했다. 스페인 인민들이 당시 유럽 최강의 나폴레옹 군대에 끝까지 대항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군대는 패배했으나 인민들은 끝까지 저항했다. 스페인 인민들은 게릴라전을 전개하면서 프랑스 정규군에 대응했다. 게릴라전은 인민이 싸우는 전쟁이다. 스페인 인민들도 나폴레옹군과 싸우면서 국민이 되었다.

국민국가의 국민이란 내가 국가의 주인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만들어졌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적 대결 구도하에서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만들어졌다. 거기에 국민이 설 자리는 없었다.

일제부역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반민특위가 해산된 것은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전쟁도 미국이 와서 싸워주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바로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전쟁은 인민을 국민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한국전쟁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에서 인민이 본격적으로 국민이 되는 과정에 들어 선 것은 1980년대 들어서라고 할 것이다. 광주민주화 운동이 벌어졌고 1987년 6월항쟁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이번에 일본이 우리에게 무역침략을 하면서 우리 국민들은 본격적으로 국가의 주인이 되는 과정에 들어섰다.

처음 일본이 경제침략을 실시하자 마자, 곧바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거세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포스팅을 했다. 제가 그렇게 포스팅을 한 것은 전술적인 대응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벌어지고 있는 과정을 보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단순한 전술적인 단계를 넘어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민들의 일본상품 불매운동와 여행안가기 운동은 과거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정부나 사회단체가 주도한 것도 아니다. 그냥 국민개개인이 SNS에서 스스로 참가하면서 퍼져나갔다. 이런 현상을 보면 그것이 마치 게릴라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유럽최강의 나폴레옹 군대에게 스페인 인민들은 총도 없이 쇠스랑과 낫으로 대항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전개하고 있는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느낀다면 지나친 것인가 ?

이제까지 우리 국민들은 진정한 국민들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는 자들이 대한민국을 다스렸고 주도했다. 우리사회에서 아직까지 친일파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소위 사회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작자들이 우리 국민들에게 ‘엽전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당연히 그들은 국민들을 개 돼지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국민국가의 국민으로서 정체성은 외부의 도전과 위협을 극복하면서 구체화된다. 우리에게 일본은 타인이다. 한편, 자한당은 이런 과정에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여론을 이끌어 가고자 한다. 한국전쟁에서 그렇게 많은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우리국민들은 북한에 대해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 조금 그 답을 알 것 같기도 하다. 비록 북한과 전쟁을 했지만 북한사람들은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형제들과 싸우면서 정체성을 만들어 가지 않는다. 마치 1980년의 광주사람들이 항쟁을 했지만 그로 인해 광주인들의 정체성을 만들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일본과의 항쟁은 그와 다르다. 우리에게 일본은 타인이다. 자한당의 주도세력들은 일본과의 항쟁을 통해서 정체성을 형성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들안에는 일본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에게 엽전근성이 있다고 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특히 조선일보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엽전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입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은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안에 있는 남이었다.

아베는 한국정부를 압박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는 한국정부가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도전을 한것이다. 한국인들은 지금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어떤 군대도 인민을 상대로해서 이긴적은 없다. 아베는 무모하게도 한국국민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일본 국민들이 메이지 유신이후 국민국가의 국민이 되었지만 그 역할과 기능이 매우 소극적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시민사회와 우리의 시민사회는 크게 다르다. 일본은 위로부터의 변화를 통해 국민들이 수동적 성향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아직도 일본은 국민들이 주인이 아니다. 맥아더가 일본을 점령하고 나서 일본인들이 자신의 통치에 순종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그들이 진정으로 국민이 되는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이 되기 위한 국민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진정한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본이라는 타인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내안에 있는 타인을 제거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일본의 경제전쟁 도발, 그 원인은 한미일 안보구도에 있다. 제2부

이제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 바로 직전이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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