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게 투자, 또는 투기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주저없이 이 책을 첫번째로 추천할 것이다. (두번째는 코스톨라니의 ‘투자는 심리게임이다’ 일듯)
이 책은, 생생하게 당대 최고의 트레이더였던 제시 리버모어의 일화들과 관점을 잘 소개해준다. 1922년에 당시 최고 인기였던 Saturday evening post (100년 전쯤인 그 당시에 발행부수가 300만부에 달하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잡지라고 함) 에 실렸던 글을 그대로 옮긴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본 책 중 가장 트레이딩에 도움이 되었다.
- “트레이딩” 이란 중립적인 단어를 쓴 이유는, 투자/투기/거래에 다 적용되기 때문이다. 투자는 무엇이고, 투기는 무엇이다, 이런 말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했지만 (벤자민 그레이엄 등), 내가 지금까지 들은 것 중 가장 명쾌한 정의는 이것이다: 내가 하면 투자고, 남이 하면 투기다.
누구도 주식시장을 이길 수 없다
이 소제목을 가장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트레이더가 이렇게 말하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지 않은가.
“누구든 특정 시점에 한 종목 혹은 여러 종목에서 돈을 벌 수는 있지만,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주식시장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제시 리버모어는 트레이딩으로 돈을 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 다만 자잘한 거래로는 돈을 벌 수 없으며, 시장의 추세가 움직일 때 그 추세에 올라타는 것이 트레이딩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시장의 흐름에 저항하지 말고, 시장을 따라가는 추세 추종 전략이 그의 최종 전략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큰돈은 개별적인 주가 등락이 아니라 시장의 기본적인 주가 흐름을 알아야 벌 수 있습니다.”
“투기자가 매달려야 할 관심사는 시장에서 돈을 버는 것이지, 주가 움직임이 자기 생각과 맞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니까요. 주가 움직임과 절대 다투지 마세요. 주가 움직임에 어떤 이유나 설명을 요구하지도 마세요. 일이 끝난 뒤에 주식시장을 헤집어 봐야 돈 한 푼 나오지 않습니다.”
“시장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혹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게 움직이는 바람에 손실을 입었다고 해서 시장을 향해 화를 낸다면 그건 당신이 폐렴에 걸렸다고 해서 허파한테 신경질을 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Buy High, Sell Higher
주식 등의 거래를 하기 시작하면서 맨 처음 듣는 말은 buy low and sell high, 즉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라 이다. 직관적으로도 이익이 당연히 날 것 같은 맞는 말인데, 제시 리버모어는 반대로 말한다.
비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팔아라. 싸게 팔아서 더 싸게 사라.
제시 리버모어에 따르면, 상승할 때 매수하면서 기꺼이 최고의 가격을 지불하고, 매도할 때는 낮은 가격에서 팔아야 한다. 그리고 매수 물량은 주가가 올라갈 때 늘려가야 한다 - 전체 매수 물량 가운데 소량을 매수해 본 후, 여기서 수익이 나지 않으면 절대 물량을 늘리지 말고 정리해야 한다. 수익이 나는 포지션을 잡으면, 내가 맞았다는 것이므로 계속 포지션을 늘려가야 한다 (이걸 피라미딩 방식이라고 합니다).
내가 이 말을 이해하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의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 떨어졌을 때 싸게 사서 다시 오르면 팔아야 아닌가? 라는 생각이었는데, 거래를 좀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저 말은 반등 타이밍을 잡을 수 있다고 가정해야 이익이 나는 구조인데, 그걸 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하는지는 .. 의문이다.
제시 리버모어의 방식을 따르면, 내가 틀렸을 때는 작은 손실을 보게 되며, 맞을 때는 큰 이익을 보게 된다. 작은 손실을 보는 횟수가 더 많긴 하지만, 이익을 볼 때 크게 벌게 되므로 총 합계는 이익이 나게 된다.
진짜 내 돈을 갖고 내 의견이 맞는지 확인한다
제시 리버모어는 고독한 승부사였다. 그는 자신의 감이나 생각에 따라서만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남의 의견이나 정보에 의존하면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많은 장점이 있었겠지만, 이 점이야말로 제시가 트레이더로서 대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그는 깔끔하게 자신이 틀렸을 때는 빠져나올 줄 알았으며,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면 남들이 뭐라고 하건 그걸 고수하고 자신의 돈을 걸 수 있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나는 딱 한가지밖에 알지 못했지요. 바로 내 돈으로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틀렸을 때 나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 한 가지, 돈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최소 저항선, 그리고 차트나 기술적 분석에 쓰이는 개념들
제시 리버모어의 기술의 핵심은 “최소 저항선” (the line of least resistance) 인데, 이게 정확히 뭔지 몰라도 책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 이것을 쉽게 풀어 말하면, “가격 역시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최소 저항선을 따라서 움직인다 - 즉 어느 방향이 되었든 가장 쉬운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라는 것이다.
- 다시 말해 내려가는 쪽보다 올라가는 쪽의 저항이 더 적다면 올라갈 것이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
- 주가가 예전의 등락 한계이기도 했던 장벽을 돌파하면 계속 그 방향으로 갈 것이다. (이 개념은 차트에서 저항선, 지지선 등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제시 리버모어의 시대에는 컴퓨터는 커녕 제대로 된 계산기도 없었고 주가 정보의 전달도 늦었기에, 오늘날처럼 거래가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는 때와는 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제시 리버모어가 즐겨 썼던 추세 추종이나 저항선, 지지선 등의 개념이 트레이딩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전략의 우수성은 증명된 것이 아닐까.
특히 이런 기술들은 주식시장보다 코인시장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주식시장에는 적어도 기업의 각종 정보들을 구할 수라도 있는데, 코인시장은 깜깜이 수준이라 기술적 분석 외의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투자에 관심이 없어도,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이 책은 물흐르듯 잘 읽힌다. 내용 자체가 인터뷰를 그대로 글로 옮긴데다, 생생한 사례 중심이어서 마치 한 사람의 생애를 그린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심지어 투자와 나는 거리가 멀어, 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버전을 고를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 정리하고자 한다. 이 책은 여러 이름으로, 여러 번역가들에 의해서 현재 시중에 나와 있다. 내가 모든 버전을 다 체크한 것은 아니기에 어떤 것이 가장 낫다 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교보문고에서 짧게 훑어본 것과 각종 리뷰를 종합하면 이 글에서 참고한 버전이 가장 나은 것 같다. 원문으로 읽으실 분들은 상관없겠지만, 번역본으로 읽으실 분들은 이 버전을 읽으시기를 추천한다.
- 이 글은, @promisteem이 주최하는 <주1권 독서하고 서평쓰기 #1 : 7/23~29> 참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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