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후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에, 태어날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은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돈에 관한 교육, 이라 하면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돈이 필요한 이유를 느끼게 하는 동기 부여, 둘째는 돈을 버는 방법 (각종 투자 기법 및 정보), 마지막으로는 돈을 관리하는, 또는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는 학업이나 기술, 실전 경험의 영역이고, 셋째는 가치 판단이나 주관, 개성의 영역이지요.
돈을 버는 방법이나 관리하는 방법보다 먼저 와야 할 것은 첫째, 동기 부여 부분입니다. 제가 부모님께 받은 교육 중 가장 와닿았던 것은, 이론이나 숫자가 아닌, 같은 공간이나 상황에서도 돈을 더 지불한 사람은 얼마나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편하게 지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제가 소개하려는 것은, 처음으로 잠시나마 비즈니스석에 앉아 본 경험입니다. (편의상 이후부터는 평어체를 사용하겠습니다)
공항(과 비행기) 은 돈의 중요성, 또는 힘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공항 카운터에서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매우 간단한 기준으로 구별한다 - 탑승 항공사 로열티 프로그램의 등급이 무엇이며, 이번 비행기에서 무슨 등급에 탑승하는가. 탑승자의 성별, 나이, 인종, 재산, 거주지, 학력 등등 공항 밖에서는 그 자체만으로 대우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들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다.
첫 비행기 탑승 때는, 모든 것이 너무 신기했고 마음 자체가 들떠 있었기에, 이코노미 카운터에서 한 시간이 넘게 기다리면서도 마냥 즐거웠었다. 지금은 좁아 보이는 이코노미석도 어린 내게는 충분히 넓었고, 긴 비행 시간 중에도 지겨울 틈이 없었다.
다음번 비행에서는 달랐다. 그동안 모아온 마일리지를 쓰신 부모님은 비즈니스석 통로로 들어가셨고, 나는 일반석 통로로 안내되어 내 자리를 찾아갔다. 이륙을 기다릴 때부터, 일반석과 비즈니스석을 가리는 저 커튼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전에는 그냥 저런 게 있구나, 남극에는 펭귄이 사는구나, 이런 정도로 나와는 상관없는 곳이며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부모님이 저 커튼 너머에 계신다니 뭔가 기분이 달랐다.
예전같으면 신기해하며 맛있게 싹싹 비웠을 기내식도, 왠지 달라 보였다. 뭔가 고기는 어설프게 익은 것 같고, 소스는 물에 탄 것 같고, 샐러드는 시든 채소에 물을 뿌린 것 같고.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수저를 내려놓고,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를 골라서 탑승 때 나눠준, 일회용으로 보이는 싸구려 이어폰을 끼고 소리가 명확하게 잘 들리지 않아서 집중하면서 화면을 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어깨를 툭 쳤다. 지나가는 사람인가보다, 하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톡톡 어깨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버지가 서 계셨고, 옆에 승무원이 어색한 표정으로 같이 있었다.
“잠시 따라와보렴.”
조금 후, 나는 커튼 너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비행 시간이 이미 여섯 시간이 넘었는데도 소파에 기대서 야구 중계를 보는 것 같은 편안한 승객들의 표정은, 지쳐가며 불편함을 참고 견디는 사람들이 많았던 내가 조금 전까지 있던 곳의 분위기와는 매우 달랐다.
“ 두 시간 후에 다시 원래 자리로 와라.”
라는 말씀을 남기고 아버지는 사라지셨다. 다리를 쭉 펴도 닿지 않을 정도로 자리는 넓었고, 스크린 화면도 내가 있던 자리보다 훨씬 컸다.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자리 주변을 살펴보다가, 내가 받았던 것보다 더 크고 고급스럽게 인쇄된 “메뉴” 를 발견했다. 뭐가 이렇게 많지? 나는 비빔밥이냐 닭고기냐의 간단한 선택이었는데, 여긴 세트 메뉴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라면” 이라는 단어였다. 진짜 라면을 언제든지 원하면 주는 건가?
부끄러워하며 손을 들고 있으니, 승무원이 지나가다가 무슨 일이세요,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혹시 라면 되나요, 라고 물어보자, 귀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론입니다, 다음부터는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호출 버튼을 눌러주세요, 라고 말해주었다.
조금 후, 학교 책상만한 크기의 테이블에 하얀 테이블보가 깔리고, 향긋한 라면과 김치가 놓였다. 라면 한 젓가락을 들었을 때, 마치 왕이 된 기분이었다.
(* 라면 사진은, 어릴 때 사진이 없어서, 최근에 찍은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는 부분은 가렸습니다.)
체감상으로는 20분 정도 후, 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가 이렇게 좁고 불편했었나? 남은 비행 시간은 두어 시간 정도였지만,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비즈니스석을 몰랐을 때는 여기도 좋았는데..
비행기에서 내린 후, 현금 구매시 비즈니스 티켓은 일반석의 약 3배 정도 가격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야 그 엄청났던 환경의 차이가 이해가 갔다. 그 이후, 비행기를 많이 탔고 비즈니스석이나 일등석도 탈 기회가 있었지만, 아직도 그날 비즈니스석 라면의 기억만큼 강렬한 것은 없다.
돈이 왜 필요한지,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에 대해 미래의 아이가 물으면, 웃으며 같이 장거리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같은 비행기에 탄 모두가 동일한 목적지로 동일한 시각에 출발해서 동일한 시각에 도착하지만, 돈 (또는 돈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마일리지) 을 더 지불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느끼게 해 주고 싶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아이가 돈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면, 이제 어떻게 벌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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